작성일 : 24-06-11 18:32
어떤 분의 '성경에서 인간 구원을 뺀 것이 무슨 성경이고 하나님 이야기입니까?'라는 댓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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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6-11 18:34
답변  
어떤 분의 '성경에서 인간 구원을 뺀 것이 무슨 성경이고 하나님 이야기입니까?'라는 댓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요한복음 11:47-53절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읍니다. 48절입니다.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이 때 그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물론 이 말은 중의적입니다. 양자얽힘 현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도무지 대제사장 가야바는 이해 못하겠지요. 이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들 공회 결정이 그러합니다.

성경을 인간구원용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 본문을 이해 못합니다.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즉 노아 언약으로부 출발한 언약의 성취는 새언약으로 성취가 되는데, 새언약은 옛언약을 박살내는 방식으로 성취가 됩니다.

이들 공회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남은 자들입니다.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지고, 예루살렘 성벽이 느헤미야의 주도로 완공 되었지만 여전히 조금 돌아온 자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있을 때만 율법으로 돌아옵니다. 이후 사백년 이상을 지나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십니다. 중간기는 사실 다니엘이 본 예언의 기간입니다.

세례요한의 등장은 종말입니다.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보낸 엘리야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친 겁니다. 물론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이 기다리든, 예수님을 따르든 제자들이 기다리든 천국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시고, 심판을 하시는 일임을 알지 못한 겁니다. 문제는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이 당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을 중심으로 한 공회가 위협을 느낍니다.

이 공회가 누굴까요? 우린 그냥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예수님을 모르는 대제사장들의 정치적 결정으로 볼지 모릅니다. 대부분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하지만 이 공회는 모세와 아론, 칠십인의 장로를 그대로 카피한 겁니다. 아론이 대제사장이요 칠십인의 장로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대제사장, 사두개인, 바리새인, 백성의 장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회라는 말은 구약에서 총회를 말합니다. 신명기 23:1,2,3,8절에 나옵니다. 신명기 31:30절에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게 이 노래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 들리니라.” 산헤드린 공회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최종판결을 공회입니다. 이것이 확장되면 남은자 유대인이 됩니다. 이들 판결에 합류하지 않은 자 없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 홀로 지셨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 말에 대해 요한복음 11:51-52절에서 “이 말은 스스로 한 말이 아니요 그 해애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할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돈을 주고 대제사장이 된 자의 입에서 예수님이 하실 일을 예언했다는 겁니다. 이것은 도피성에 피한 자들이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귀향할 것이라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중앙 성소가 있고 제사법도 있지만, 그것조차 부지중에 살해할 자를 속죄 못합니다.

대제사장의 기능을 갖고 있기에 대제사장의 기능을 하는 겁니다.

공회, 즉 이스라엘 총회가 왜 이런 결정을 내립니까? 한 사람만 죽이면 우리 민족이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이 누굽니까? 남은 자 유대인,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면 그 나라의 중심을 차지할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하나님 나라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다윗 왕,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 성취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니 백성이 없는 왕은 왕이 아닌 겁니다. 여기에서 다윗언약을 살짝 언급하면, 사울 왕은 여호와의 왕되심을 부정하는 자들이 왕을 달라고 해서 여호와께서 분노하시므로 세우셨고, 다윗 왕은 여호와께서 친히 세우셨습니다. 다윗 왕을 먼저 세우시고 다윗 왕을 중심으로 백성이 합류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이후에 여호와께서 분노하심으로 왕을 폐하셨습니다(호 13:11).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메시야 왕국을 기다린 세례요한이나,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이나 바리새인은 자신들이 왕을 알아 볼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왕으로 오실 분을 기다리는데, 마치 사울 왕을 세워달라는 시대와 동일합니다. 메시아 됨의 판결을 기다리는, 율법대로 살아가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신들이 직접 하겠다는 겁니다(요 6장).

공회의 결정은 자신들을 망하게 하는 메시아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남은 자 유대민족을 주후 70년에 진멸합니다.

종말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분 앞에 등장한 남은 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소망했기에 남은 자를 구원하지 않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겁니다. 즉 선악과를 먹은 자의 최종 모습은 마귀의 행실을 하는데, 나를 구원하지 못하는, 나를 에덴으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는, 나를 망하게 하는 예수는 죽입니다.

구원파들은 이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문제 은행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전처럼 성경을 보기 때문이지요. 필요한 것을 옳은 말씀을 주섬주섬 모아 만들어 믿으면 구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1:51절에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흩으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한 예언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그 민족은, 흩으진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인가라는 겁니다.

출애굽을 보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만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 뿐입니다.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함이니라(마 2:15).”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 뿐이며, 출애굽한 예수님은 예수님 뿐이라는 겁니다. 지형적으로 애굽도 애굽이요, 약속의 땅도 애굽이 된 겁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 지시는 예수님밖에 없음을 보여주십니다. 그 과정이 예수님의 공생애입니다. 공회의 결정에 모든 유대인들이 합류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뿐입니다. 놀랍게도 본래 아들인 이스라엘이 이방을 심판했는데, 그들은 아들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참 아들이신 예수님이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십니다.

노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모세, 다윗 언약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 아들만이 유일한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언약이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새언약은, 하나님의 아들은, 심판 주는 예수님뿐임을 증거하기 위해 세우신 언약입니다. 새언약으로, 십자가의 피로 만들어진 자들이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려지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다시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대신 죽은 자를 위해 삽니다. 주님의 증인으로 살지요. 구원파들은 이런 말씀조차 자기 구원을 위한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말씀을 자신들이 믿고 지킬 수 있다고 설치는 겁니다.

예수님의 증인인 사도바울과 모세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놀랍게도 사도바울은 로마서 9:3절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로마서는 9장에서는 출애굽기 32장 이하의 사건을 고스란히 가져옵니다. 출애굽기 32:32절입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자기 구원을 챙기는 자들은 예수님을 닮지 않아요.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하지요. 그래서 로마서 9장 본문도 자기 구원은 챙겨놓고 해석을 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자고 그렇게 주장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만 하겠다는 심보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성도가 받았기에 사도바울이 주님의 기도를 반복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나를 위한 세상이 아니요 천국이 나를 위한 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고.” 여기에 나오는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님입니다.

여기 어디에 나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가 있습니까? 참 아들, 곧 심판 주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님뿐이심을 증거하기 위한 구원이 있습니다. 이 구원은 나의 구원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을 증거하는 구원입니다. 천국은 나는 죽고 그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자만 들어갑니다. 이 말도 이해 못하는 목사나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내가 가는 천국은 없다고 하는데. 그러니 오늘날 기독교는 유대교의 아류라는 겁니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은 아들의 죽으심을 이용하고 폐기 처분합니다. 십자가만 자랑한다는 것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는 말씀이 몸에 그대로 임했다는 겁니다. 구원파들은 내백성 아닌 자를 십자가로 내 백성이라 하셨으니 나는 구원 받았다로 해석하는 겁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빨리 제거하는 겁니다. 십자가만 자랑한다는 겁니다.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죄라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해도 죄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 본 유대인들이 성경을 연구하여 영생을 얻을 비법을 찾았듯이, 예수님의 말씀 곧 성경은 내게 대하여 증거하고, 영생이 자신에게 있다는 말씀을, 인간의 말로 이해하는 자들이 성경을 영생 얻는 비법이 있는 책으로 보는 겁니다. 인간 구원은 없고 하나님 아들, 곧 하나님의 양자 구원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