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9-03 15:09
20230903 이사야 강해 9강 사 3:1-12 예루살렘이 의지하는 것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91  
https://www.youtube.com/live/2FNa6bP9rIc?feature=shared

관리자 23-09-04 01:08
답변 삭제  
20230903 이사야 강해 9강 예루살렘이 의지하는 것

하나님 말씀 이사야 3장 1절에서 12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3:1~12)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 하실 것이며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혹시 사람이 그 아비의 집에서 그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어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할 것이면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말라 하리라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찐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예루살렘과 유다에 관한 말씀인데 온 세상은 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운명과 함께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죠.
유다는 다윗의 등불이 꺼지지 아니할 것이라는 약속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무엇을 의뢰하는가?
‘그들이 무엇을 의뢰하는가?’를 묻지 마시고
지금 여기 말씀을 듣는 내가 무엇을 의뢰하는가를 보면 똑같습니다.
무엇을 믿느냐? 믿을 구석이 무엇이냐? 라는 거죠.

복음을 실컷 듣고 우리가 현장에 살게 되면 우리의 이 현실 속에 살게 되면
복음은 어떠한 위력도,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기대감을 품고 있잖아요.
‘복음이 있다면 이러한 부조리한 세상에 공의가 가득한 나라가 되고...’
대통령 자기는 개판이면서
돈 좀 벌려고 우리 집사님이 좀 나서려고 하는데 감사라는 감사는 다 때리고...
‘아니 복음 아는 나를 왜 건드려’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우리가 의뢰하는 게 뭔지가 드러나는데

지금 이 예루살렘과 유다가 우리 같으면 뭘 의뢰할 것 같아요?
1번 하나님, 2번 우상. 몇 번일까요? 이제 답하기 겁나죠.
3번입니다. 하나님 우상을 의뢰하죠.
힘만 된다면 하나님이고 뭐 바알이고 다 끌어모아요. 다 끌어모아.

여기에 보면 최종적으로 의지하는 게 무엇이냐? 가 이 구약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데
이사야 3장에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은 지금도 정통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외웁니다.
이사야 1장부터 66장까지 달달 외우거든요.
그러면 물어야 돼요. 왜 외우느냐? 이거죠. 소망이 있다는 겁니다.

이 이사야 속에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자기 죄를 몰라요.
모르고 이 복역의 때가 끝나면 메시야 왕국이 건설될 것이라는 거예요.

우리 고등학생들이 고등학생은 없지만, 대학만 가면 좋겠다라고 얼마나 바라고 바랬습니까? 맞죠?
대학 가니까 그다음 뭐예요? 지금 들어가자마자 취직 공부하는 애들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요즘 공무원 안 한다 하잖아요. 좋은 기회입니다. 공무원 되세요.
마음만 낮추면요. 60. 이제 정년이 여러분이 정년 될 때는 65세까지 갈 거예요.
그때까지 그냥 쉬면 되고.

선생도 안 하려고 그러잖아요. 선생 하세요. 때마다 방학이고요.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요 방학 어제 끝났거든요. 근데 병가를 3주를 내버렸어요.
제가 선생을 욕하는 게 아니라 그런 선생도 있어요. 선생님은.
얼마나 좋아요. 선생님. 방학에 있죠. 선생 안 해보니까 이런 소리 하는 거예요.
그럼 목사 하세요. 목사.

지금 이들이 뭘 의지하는가? 한번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 의지하는 것을 제거한다 하거든요.
이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의지하는 것을 제거하면 그다음 그들이 뭘 의지하겠느냐? 는 거예요.
이런 것들이 말씀의 묘미인데 봅시다.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을 제거한다”라는 거예요. 양식
주님이 나타나셔서 양식을 제거한다 하면 여러분 가만히 있겠습니까?
지금 이 말씀은 십자가로 완성이 되거든요.
양식을 제거한다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유 그래도 복음을 들으려면 양식부터 먹어야죠.’
그게 베드로거든요. 십자가 진다고 하니까 멱살 잡고 ‘당신은 십자가 지면 안 된다’라는 거예요.

믿음의 요소인, 이 없는 요소. 없잖아요.
부재하신 분이 등장하는 그 요소가 빠져버린 겁니다.
지금 이들은 양식을 의지하고 있고 그다음 물, 물 없이 어떻게 삽니까?
양식은 없어도 조금 오래 버틸 수 있지만 물 없이는 그 버티는 기간이 짧죠.
하나님께서 해도 너무하죠.
인간에 있어서는 메슬로우라는 과학자가 이 생존의 욕구가 가장 일차적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됩니까?’ 지금. 지금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화가 나야 되거든요.
‘아니 물도 제거하고 먹는 것도 제거한다면 어쩌란 말입니까?’

그런데 그 학자가 재밌잖아요.
이렇게 피라미드로 해가지고 마지막에 올라가면 ‘자아실현의 욕구’라는 게 있거든요.
그전에는 소속의 욕구도 있고 어떤 욕구들이 있는데.
그 자아 실현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면 자기가 신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모두가 다 그 욕구를 갖고 교육을 받고 있거든요.
그래서 부모들이 다 먹여주죠. 그죠? 은이 먹여주잖아요. 울면, 때만 되면.
시끄러워서 먹여주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하는데 뭘 아무것도 몰라요? 마귀 새낀데.
아버지가 마귀고 엄마가 마귀인데 뭘 아무것도 몰라요.
그 먹이면 마지막에 뭘 요구합니까? 아버지를 갖고 놀잖아요. 부모를 갖고 놀거든요.
부모 위에 있는 거거든요. 신이 되고자 하는 겁니다.

그다음 의지하는 게 뭔가? 하면 이건 가장 기초적인 건데 물과 양식을 의지한다.
그걸 제하여 버리겠다. 그다음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 하실 것이며”
지금 이 요소들은 어떤 요소들입니까?
용사, 전사, 재판관, 선지자, 복술자, 장로, 오십부장, 귀인, 귀족들, 모사, 공교한 장인, 능란한 요술자,
나를 어떻게 하는 자들입니까?
나를 돋보이게 하고 나를 살아갈 만하게 하는 그러한 자들을 다 제거하겠다는 겁니다.

이거 다 제거하면 어떻게 살아요? 물, 양식 제거하고
이 주변에 나를 보호해 주는, 나를 지지해 주는 그러한 것들을 다 제거해버리면 어떻게 살아요?
‘죽으란 말입니까?’
광야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았어요? 물이 없는 곳이었죠. 양식이 없는 곳이었죠.
거기에는 재판관도 없었어요. 사실은 원래는

재판관은 여호와 하나님뿐이잖아요.
인간의 재판관이 필요 없는, 용사도 필요 없는 곳이었잖아요.
그럼 어떻게 살았습니까? 어떻게 살았어요? 다 알잖아요.
왜 모르는 척합니까? 말씀으로 살았죠. 뭘 어떻게 살기는요.
‘주님이 이걸 다 제공해 줬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말씀으로 살았다는 의미를 전혀 몰라요.

그들이 의뢰할 만한 것들은 싹 다 제거해버립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이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 하면 4절에 보면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그런 자들로 지도자를 삼고 왕으로 삼는 거예요.
그러면 그 집안 꼴이 어떻게 될까요? 예.

아니 해산물 계속 이렇게 매일 먹는다고 그러는데
‘후쿠시마산’ 표기된 걸 사서 나는 매일 먹었으면 좋겠어요. 국민의힘 의원들이.
아니 청와대에 청와대가 아니죠. 지금 용산에 후쿠시마산을 대량으로 구매해서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술 먹는 자리까지 계속 제공했으면 좋겠어요.
자기는 맛있는 거, 자연산, 그것도 오염 안 된 걸 매일 먹으면서, 그걸 생쇼라 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의 의뢰하는 걸 제거하고 난 뒤에
왕을 어떤 왕으로 세우는가? 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갓난 아이와 같은 ‘은이’ 같은 애를 왕으로 세워버립니다.
그러면 나라를 누가 보호하고 누가 지킵니까?

얼마 전에 민방위 훈련을 했잖아요. 제가 그거 보면서 웃겼어요.
아니 대통령이 핵 전쟁을 계속 논하고 있는데 어디로 피하란 말입니까? 국민들은 바보예요. 바보.
어디 다 피해 있는가? 하면 백화점에 피해 있어요.
현대백화점 여기에 천호역 거기에. 거기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어요.
‘오펜 하이머’를 한번 봐야 돼요. 영화를.

하나님께서 의뢰라는 걸 제거했으면
그다음 뭔가를 더 좋은 걸 주실 거라고 예상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걸 제거한 자리에 완전히 이 사회 조직이죠. 이스라엘 조직 자체를 뭉개버립니다.
아이를 그런 식으로 지도자를 삼고 그다음 5절에 보면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서로서로 괴롭히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왜 이렇게 괴롭힙니까? 경찰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법질서 체제가 무너졌잖아요. 아이는 자기밖에 모르잖아요.
그 체제가 무너지니까 서로 공격하는 거예요.

그다음 하시는 말씀이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애가 노인 앞에 교만을 떠는 거예요.
꼭 어떤 시대 같습니까? 그 공산주의자들이 자기들이 나댈 때 있었잖아요.
새파란 한 17, 그것도 어떤 자들입니까? 종이죠.
하나도 못 배워먹은 애들이 나와가지고 사상 교육을 받아가지고 꼭 꼭 이 성경을 보는 것 같아요.

지금 유대나라를, 예루살렘을 이렇게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만든 적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해봐야 돼요.
의뢰하는 것을 제거를 했잖아요. 제거해서 이렇게 만든 게 있었습니까?

말씀이라는 것은 반드시 말씀대로 되어지거든요.
현실 이야기하니까 즐거워하는데, 성경 얘기로 들어가니까 또 당황스러워하는데
지금 이런 어떤 아이들이 교만하고 애들이 어른들 위에, 장로들 위에
그다음 이제 나오는 게 뭔가 하면 6절에

“혹시 사람이 그 아비의 집에서 그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어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할 것이면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말라 하리라”
이 내용은 어떤 내용인가? 하면 집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인데
이것을 이스라엘 가운데 확대시키면 사무엘상 8장 이야기입니다.

왕이 되라고 하는데 모든 인간은 왕이 되고 싶거든요.
그건 이미 확정적입니다. 왜?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악마의 자손이기 때문에 누구나가 다 왕이 되고 싶은데 그 왕의 자리는 굴림하는 자리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니까 없는 자들이 왕을 요구를 하는데
우리 같으면 왕이 되고 싶다 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이 사람이 자기가 왕이 안 되고 싶다는 거예요.
그 정도로 상황과 형편이 어려워졌다라는 겁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이 말씀을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부지런히 읽고 있거든요.
지금 그들이 어떻게 해석을 하고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잘 새겨둬야 됩니다.
지금 예수님 당시에 지도자들이 누굽니까? 지도자들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이죠.
랍비들이잖아요. 그죠?

과거의 왕들이 어땠습니까? 개판이었잖아요.
그래서 멸망을 당한 겁니다.
그들이 지금 이 말씀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멸망당해서, 예루살렘이 멸망당해서
지금까지 이런 사태가 되어 왔고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말과 행동입니다. 말도 행동이고 행동도 행동인데
그 언어 속에서 행위 속에서 철저하게 여호와를 대적하는,
지켜보시는 여호와의 분노를 사는 말과 행위를 했다는 거죠.
그 행위는 그들이 의지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 의지하는 것들을 다 제거한 거예요.
제거하고 이 사회 질서 자체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된 그 상태 속으로 내몰린 겁니다.

그다음 하시는 말씀이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죄를 숨기는 게 아니라 그 안색이 그들의 그 죄를 이렇게 보여주는 거예요.
얼굴만 봐도, 그들의 안색만 봐도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모습을 보인다는 거예요.
그만큼 뻔뻔스럽다는 겁니다.
놀라운 것은 내가 이런 죄를 지었다라고 발표를 해요. 이런 죄를 지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죠.

어느 정도의 모습이냐? “소돔과 같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소돔성의 모습을 보면 어른이나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천사들이 왔을 때
그것도 대낮에 대놓고 ‘내놔라’ 이야기하잖아요.
그 모습을 누가 보이는가? 하면 예루살렘과 유다가 보였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의뢰는 것을 제거를 하는 겁니다.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찐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스스로 재앙을 이렇게 끌고 왔다라는 거예요.
이런 말씀들이 어려운 겁니다.
본래 재앙을 받아야 되는데
그 재앙을 자취한 자의 모습을 누가 먼저 앞장서서 보여주느냐? 하면 예루살렘과 유다입니다.

이 정도 되면 충격을 받아야 되거든요.
왜 충격을 받아야 되는가? 하면 예루살렘과 유다는 북이스라엘은 멸망하더라도
다윗의 등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약속을 했고
이들이 이렇게 멸망당해버리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어떻게 우리에게 이루어지느냐?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오전 설교를 들으셨죠? 그 약속은 그렇게 주어지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약속은 어떻게 해요?’
어떻기는요. 율법 외에 한 의가 이 땅에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역시나 이 말씀 전체를 보게 되면
악을 행한 자는 심판을 받고 선을 행한 자는 복을 받는다는 논리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십자가 증거하는 말씀이거든요.
십자가를 증거한다는 말씀은 이 말씀을 통하여서 모든 인간을 죄 아래 가두는 겁니다.

지금 이들은 남은 자가 유대인들이잖아요. 남유다잖아요.
북 이스라엘은 곧 멸망당할 것이고 이제 남유다가 되는데 이 남유다조차도 바벨론에 멸망당하지만
그 멸망당한 자들 이후에 돌아온 자들이 칠십 년을 지나서 칠십 이레를 소망하는 자들이
이 말씀을 해석을 할 때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는 거예요.

이게 왜 그러냐? 하면 말씀이 있으면 말씀이 덮쳐버리면
말씀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건데
말씀을 내가 받잖아요. 내가. 내가 읽고.
그러니까 내가 해석을 해야 될 거 아닙니까?

근데 예수님은 말씀 되신 분이 오셨어요.
말씀 자체가 되셔서 예수님 자신을 증거하신 거죠.
이런 방식들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되는 겁니다.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지도자가 왕인데 왕을 아이로 표현하고 부녀로, 여자로 표현해요.
그러니 그들이 어디로 끌고 가겠습니까? 심판받을 길로 끌고 갔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말씀을 이제 이사야 선지자가 외칠 때 그들이 들어요? 안 들어요? 안 듣죠.
6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보내달라고 할 때 갈 때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러 보냅니까?
눈을 감기게 하고 귀를 닫히게 하고 마음을 어둡게 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잖아요.

그러면 이 말씀을 이렇게 외칠 때 너희들이 의뢰하는 것을 제거한다고 할 때
우리 같으면 회개할 거라 예상을 하지만,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눈이 가려워지는 거고 귀가 닫히는 거고,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겁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 때가 되면 남은 자들이 발생하는데 남은 자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우리가 의뢰하는 걸 제거 한다 했으니까, 이들은 제거되지 않는 요소를 갖고 오죠.
그게 무엇인가? 하면 말씀이에요.
말씀을 갖고 오고 우상을 다 배제하고 성전에서 제사를 제대로 드리고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겁니다.

그렇게 섬길 때 ‘의인은 복이 있다’라는 이 말씀 속에 자기를 집어넣고
악인은 말씀대로 살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십일조를 행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그런 자들이기에 심판을 받을 것이다. 심판을 자취한다.
이 ‘자취한다’라는 이런 표현들이 누가 심판을 자취합니까?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통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죄 아래에 가둬져 있고 심판 아래 있고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말씀을 주신 건데, 이들은 이 모든 말씀을 누구 쪽부터 해석해요?
자기 쪽에서 해석하니까 심판을 자취한다 했으니까
우리는 지금 심판받을 일이 없다라고 주장을 한 겁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등장을 하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등장을 하셔서 등장하셨으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이사야 말씀이 성취가 돼야 되잖아요.
성취되는 방식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 그들이 누구를 제거해 버립니까? 예수님을 제거해버려요.
남은 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오신 것에 대해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말 재밌는 게 예수님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장정 오천 명을 먹이시니까
그들이 임금 삼으려 했잖아요.

기껏 메시야를 기다렸는데 그들이 의뢰하는 바를 줄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어요.
이사야 3장에서는 ‘양식을 제거한다’ 했잖아요. 그들이 의지하는 바를.
그러면 메시야가 오면 뭘 주실 거라고 예상을 할까요?
그들의 입장에서는 양식이에요. 희한하죠.

분명히 신명기에서
“너희들이 사십 년 광야 생활 동안 만나를 먹인 것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 모든 말씀으로 사는 방식이 어땠는가? 하면요 전염병 걸려 죽는 방식이에요.

그런데 그 말씀들을, 그들은 말씀으로 말씀 중심으로 해석을 못하고 나 중심으로 해석을 하는 겁니다.
그럼 메시야가 오게 되면 그들이 꿈꾸는 천국이 어떤 천국에 있다고요?
여호와를 잘 의뢰하니까 이제는 물도 제거하지 않고 양식도 제거하지 않고 건강도 제거하지 않고
무병 장수하며 시편 73편에 나오는 악인처럼 살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생이 없다”라고 해요.
이 언어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알아들어봤자 기껏 니고데모처럼 알아듣겠죠.
‘예수님의 살 먹고 피 마시자’ 이 논리밖에 안 되잖아요.

그러니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여전히 육적 자기들의 필요,
자기들이 꿈꾸는 그러한 천국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않습니까? 필요 없는 겁니다.

이사야에서 분명히 “너희들이 의뢰하는 바를 제거하겠다”라고 했거든요.
그거 의뢰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어디로 갑니까? 뭘 의뢰해요?
사무엘상 8장에 가면 왕을 달라고 했잖아요. 열왕 같이.
그 왕도 나중에 어디로 갑니까? 우상으로 가요. 우상.
누구? 우리가 필요한 왕은 느부갓네살 왕이에요.
금신상을 만든 그 왕과 같은 우상이 필요한 거예요.

단순히 물을 요청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그냥 너희에게 의뢰하는 바 물을, 양식을 제거한다는 게 아니라
인간은 메슬로우처럼 생존의 욕구에서 마칠 인간이 없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어야 돼요. 자기 이름을 하늘까지 높여야 돼요.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십자가 복음을 듣기 싫어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다고 하니까 자기의 모든 체계가 무너지잖아요.

그런데 베드로나 이 나머지 제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었거든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그 자신들은 무너진다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오히려 우리의 과거 선조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우리가 의리하는 것을 다 제거했지만
이제 우리는 여호와만을 섬기기 때문에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다 채워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런 거 아니에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할 때 ‘우리의 필요를 다 채워준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 진다라고 해버리면 자기들이 기대한 바가 다 무너지는 겁니다.
사실은 십자가조차도 우상화 되어버렸기 때문에
십자가를 믿으면 뭘 줄 거다? ‘내가 의뢰한 바를 줄 거라’고 생각해요.

주님은 십자가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들이 의뢰하는 모든 요소들을 십자가 피만을 증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버립니다.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요소로 사용하게 돼 있어요.

메시야가 오면 어린아이와 같은 지도자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메시야 맞죠? 왕이니까 왕의 모습이 어때요?
그들이 기다리던,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왕다운 모습입니까?
아니면 이런 왕은 우리 가운데 없어야 된다고 하는 왕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잖아요.
그 주님이라면 어떤 주여야 됩니까?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푸른 초장에 누여주시고
그런 곳으로 인도하는 왕이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인도하심이 꼭 어린아이같이 인도하는 것 같아요.
꼭 어떤 곳으로 인도합니까?

왕은 어떻습니까?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인도하죠. 그 왕을 내가 원했기 때문에 그죠?
근데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네가 젊어서는 띠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원치 않는 곳으로 다니게 될 것이라’는
그 말씀 속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꼭 예수님의 인도하심은 사춘기 애들처럼,
‘어떻게 이렇게 주님은 내 뜻과 정반대로 인도하시는지...’
그렇게 인도하셔서 십자가의 피 공로만을 자랑하는 자리로 우리를 이끄시는 겁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유다와 예루살렘이 자신들이 의뢰하는 것으로 인하여서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살해해버리는 그러한 사건을
저희들 앞에 목격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예상한 주님이 아니라
예상하지 않는 주님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원하는 것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기 위해서 날마다 우리를 원치 않는 곳으로 인도하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