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9-17 23:22
20230917 이사야 강해 11강 사 4:2-6 그날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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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09-1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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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7 이사야 강해 11강 그날

하나님 말씀 이사야 4장 2절에서 6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4:2~6)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그날, 심판 날.
심판 날이냐? 구원 날이냐?
이사야 예언을 듣는 자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 사는데 바쁜데 선지자들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 언제 이 말씀이 떠오르고 기억이 나느냐?
포로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 남유다가 멸망을 당한 이후에 이 말씀이 떠오를 겁니다.
포로로 잡혀가게 되면 그때부터 꿈을 꾸잖아요.

마치 집 없는 사람들,(우리 성도님들은 다 집이... 없는 분도 있네요.)
월세로 사는 사람들의 그 서러움, 저는 잘 몰라요. 모르는데, 이사 갈 때 좀 서럽죠.
못질한 것까지도 돈 다 내놔라고 하니까 보증금 이렇게 걸어놓으면.
제가 사는 중국에서는 못질한 것까지도 다 보상해라.
허락 다 맡아야 되고, 허락 맡아도 소용없어요.
‘내가 언제 허락을 했냐’라고 하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집을 소유하고 싶잖아요.

지금도 뭐 이 언론에서는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고.
계속해서 이 뭐라 합니까? 영끌족이 아직까지도 지금 설친다라고 하거든요.
그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 뒤에 거기 보면 1년 전에 완공을 했거든요.
아파트는 아닌데 작은 건물인데, 그때 10억 하던 게 지금 9억 하거든요.
34평 정도 돼요. 복층을 이렇게 봤는데 11억 해요. 한 2억이 내렸어요.
사람들이 그건 중요하지 않고 사람들이 10억을 주더라도 집을 사고 싶어 하잖아요. 맞죠?
이제 애 3명이니까, 이제 이사 다닐 일 끔찍한데

사람들은 자기가 없는 것에 대해서, 상황에 처한 것에 대해서 거기에 대한 보복심을 갖고 있죠.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화목한 가정을 꿈꾸게 되고
남의 집에 자식이 말 잘 듣는 것 같이 보이잖아요. 여기에 우리 딸이 있는데.
그러면 우리 딸이나 아들도 말 잘 들었으면 좋겠다.
데리고 가서 한번 살아보세요.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시원찮다.

요즘 책 내는 게 굉장히 유행이거든요. 김미경 씨라는 분 알죠? 엄청 유명하잖아요.
그 사람이 대 히트를 쳐가지고 거기에 밑에 나온 아류들이 굉장히 많은데
거기에 이제 어떤 남자가 이렇게 리더하는 모임이 있어요.
한 몇백 명이 되는데 대부분 여자들입니다.
앞으로는 목사가 필요 없어요. 위로와 치유의 말만 하거든요.
희망을 심어주고 소망을 이렇게 계속해서,

부끄러운 소망이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소망을 계속해서 심어주는 거예요.
자기가 이제 엄마로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 아내로서 살아온 것이 원망스럽다는 거예요.
범사에 감사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도 내 꿈을 이뤄보겠다. 그래서 책을 내겠다는 겁니다.

자기 형편을 갖고 앞날에 대한 희망을 이렇게 품게 되는데
이러한 말씀들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는 이 말씀들이 간절하겠죠.
간절하기 때문에 그날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라고 그들은 꿈을 꿀 겁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여호와의 싹” 우리 성경에는 싹이라고 돼 있는데 싹이라고 해도 되고
움이라고도 이야기하고 가지라고도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어떤 이 말씀들 가지, 싹. 스가랴서에도 나오고 예레미야에서 나오는데
여호와의 싹은 무엇이냐? 라고 이렇게 질문을 하게 되면
유대인들에게 질문을 하게 되면 ‘메시야’라고 답변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형편이 말씀을 해석하는 형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래요.

돈이 없는 사람은 뭘 봐도 돈으로 보이잖아요.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건강이 약한 사람은 텔레비만 틀면 뭘 틉니까? 건강과 관련된 것만 틀잖아요.
특히 연세가 많은 분들은.
그 광고들이 얼마나 자극적입니까? 그것만 먹으면 다 나을 것 같잖아요.
제가 볼 때는 다 죽어요. 그렇게 먹어도.

자기의 형편이 지금 여호와의 싹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그다음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싹이 오면 땅의 소산이 풍성하게 된다라는 그 약속.
이걸 알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과 약속,
모세의 언약을 알아야 되고 다윗 언약을 알아야 되고
앞뒤 다 제껴버린다 치더라도 어쨌든 이 말씀을 갖고 꿈을 꾸게 되는 거죠.

꿈을 꾸는 것이 헛된 꿈이 아니라 약속에 근거한 꿈을 꾸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메시야가 오게 되면
여호와께서 이렇게 준비한 그 가지, 싹, 움이 이 땅에 오게 되면
땅의 소산이 영화롭고 아름답게 될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피난한 자를 위하여.

말씀이라는 것이 겹쳐져 있기 때문에
자기가 답을 갖고 말씀을 해석하게 되면 순차적으로 해석을 하게 되는데
지금 이사야 말씀은 순차적으로 해석이 안 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의 형편에서 이 말씀을 해석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과 말씀을 보고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라고 묻는 거예요.
아니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하는 겁니다.
아니면 엘리야,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여호와의 싹’이 나타난다면 이제 이 약속의 땅은 아름답고 영화로운 땅으로 변모될 것이다.
이것이 레위기나 신명기로 넘어가게 되면 ‘땅의 소산을 풍성하게 낸다’라는
그 시절을 지금 약속하고 있는 거예요.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쑥대밭이 된 상태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간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약속을 기다린 자들이 유대인들이고요. 3절에 보면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런 말씀이 왜 있느냐? 하면
이 성경에 보게 되면 에스라, 느헤미야에 보게 되면 녹명된 이름들이 나와요.
포로에서 돌아오는 자들.
그것을 그냥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말씀 때문에 기록을 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그렇게 녹명된 자들이 거룩하다 칭함을 얻는데
그 거룩하다 칭함을 얻는 것이 지속이 되느냐? 라고 하면 지속이 안 되거든요.
말라기로 가면 개판이 되잖아요. 엉망진창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 이사야의 예언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으로 예언이 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야가 와야 돼요.
그런데 메시야가 와야 된다는 생각은 우리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도 갖고 있는 겁니다.
메시야가 오게 되면 이 말씀의 참된 의미가 이루어질 거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4절에 보면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유대인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죠. 그러면 돌아올 때가 되잖아요.
돌아올 때가 된단 말입니다. 녹명한 자는 거룩하다 했으니까.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까 그들은 이미 심판을 지나가 버렸잖아요.
심판이 끝난 겁니다.

예수님 앞에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당당한 이유가 뭐냐? 하면
자신들은 이미 심판이 지나간 거예요.
심판받을 자들은 누구냐? 하면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들이 심판받는 거예요.
세리와 창기하고 왜 거리를 두느냐? 그들은 심판받을 자죠.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여기에 보면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자기들은 충분히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고,
더 이상 자기들은 하나님 앞에 이 심판을 받을 이유가 없는 자들로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뭐냐? 라고 할 때 “그날에는”
그날이 언제입니까?
‘남아 있는 자들이, 녹명된 자들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는다’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앞부분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언제? 그날에, 심판주가 오는 날인데.
그 심판주가 오는 날은 어떠냐? 라고 하면 저들에게는 심판을 가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 과정을 다 겪었기 때문에
더러움을 다 씻었기 때문에 우리는 심판이 없다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5절에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이렇게 말씀이 연결이 되는데 뒤에 보면)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천막이 초막이거든요. 초막.
천막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거는 갑바 천막, 가죽 천막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초막이에요. 풀로 지은 초막.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이제 이제 심판에서 돌아오게 되면 메시야가 돌아오게 되면
‘우리는 이미 깨끗이 씻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를 보호할 것이다’라고
이 본문을 해석할 겁니다.

그런데 머리가 조금 있는 사람들은 지금 갑자기 초막이 등장을 하잖아요.
그리고 무엇이 등장합니까?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무엇이 떠오릅니까? 광야 생활이 떠오르죠.

그런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 메시야를 기다리던 남은 자들이
이 말씀을 광야 생활을 생각할까요? 하지 않을까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의 입장에서 말씀을 해석하게 되죠.
자기들이 기다리는 그 메시야 왕국을 꿈꾸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실제로 요한계시록 보면 7장에 보면 7장 15절을 한번 볼까요?
지난주에도 살펴봤지만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여기에 장막을 친다라는 내용이 나오죠.
언제? 환란 가운데 나온 자들, 주님이 강림한 이후에 이 말씀을 하시는데

그러면 이 말씀이 주님의 강림한 이후에만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지금도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남은 자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자신들이 새 언약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요.
마치 우리들 같아요. 오늘날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 빨리 천국 가고 싶잖아요.

그런데 주님께서 “그날”, 그날이 언제인가? 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는 날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게 되면 그 완성의 세계 속으로 모든 것들이 함몰되고 빨려 들어가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이 여기에 나오는 “더러움을 씻는다”라는,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는다”라고 했을 때
그들이 누구냐? 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말씀을 기다리던 자신들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날’이라는 이 말씀을 제대로 예수님 안에서 해석을 하게 되면
거룩함을 칭함을 얻는 자들이 없어요.
거룩함을 칭함을 얻을 자들이 없는데,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자기 백성을 새롭게 만드신다라는 겁니다.

그 만들어진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라고 하면
주님이 주신 사명이 다할 때까지 이 땅에서 광야 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 말씀의 내용이 지금 여기에 예언이 되어 있고
요한계시록은 그 광야 생활을 하는 자만이
그들 위에 천막을 치시는 그 속에 들어가게 된다라는 말씀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천막 치는 게 좋아요? 주님이 동행하는 게 좋아요?
말씀 자체를 사람들이 오해를 하잖아요.
이미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우리와 동행을 하시잖아요.
동행을 하게 되면 성도의 삶은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계속해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는 죽을 때까지 히브리서에서 말씀하는 것 같이
주님이 찾아오신 이후에는 광야 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럼 광야 생활을 하면 누가 조롱하고 누가 비웃을까요?
이 약속을 붙들고 기다리는 자들이
‘아유 너희들이 꼴란 그 생활하려고 그것이 이 구약의 완성이냐?’ 비웃을 거 아니겠습니까?
유대인들만 비웃을까요?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었잖아요.
그럼 씻었으면, 오전의 설교에서 하나님과 평안을 누리게 되었잖아요.
그러면 다시 광야 생활로 돌리는 것을
과연 하나님과 이 화평을 누리는 그 세계 속에 살아가느냐? 라는 거예요.
이사야를 갖고, 그냥 구약 시대를 갖고 이야기를 하면 뭐 쉽지만, 쉬운 게 아니죠.
듣는 당사자가 지금 오늘날 우리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성도는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이렇게 덮침을 받은 자예요.
이 로마서 5장 5절에 보면 성령을 우리에게 부은바 되었기 때문에 그래요.
부은바 되니까 이사야 4장 2절에서 6절까지 말씀하시는 이 말씀의 세계로 성도는 들어가게 되고
이 말씀의 세계 속에서 살려지면서 십자가를 자랑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꿈꾸는 바가 무너지게 하시고
주의 성령이 우리들 가운데 부어졌기에
말씀의 성취자 되신,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만을 자랑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