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1-12 19:56
20231112 이사야 강해 19강 사 7:1-2 두려움에 떠는 왕과 백성의 마음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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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11-1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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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2 이사야 강해 19강 사 7:1-2 두려움에 떠는 왕과 백성의 마음

하나님 말씀, 이사야 7장 1절에서 2절까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사7:1~2)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혹이 다윗집에 고하여 가로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지만 이기지 못했다. 이렇게 말씀을 하면서
“어떤 사람이 다윗집에 고하여 가로되”
다윗집이라고 하는 것은 다윗의 등불이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다윗 언약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 다윗집, 왕이죠. 왕이 누구냐? 이 당시에 아하스 왕입니다.
그 왕에게 이 사태를 알렸다라고 하는데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북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 이렇게 표현하는데

연합군을 결성해서 이렇게 예루살렘을 치러 왔다라고 하니까
“백성의 마음이 왕의 마음과 함께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더라”
산에 올라가서 강풍이 불 때 그 나무가 흔들리는 그러한 것들을 본 사람들은
이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죠.
두려움 속에 휩싸이는 겁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겠느냐?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당연한 것이 당연한 거냐? 라는 거예요.

열왕기하 16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15장에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는 그 시기를 말씀하는 웃시야 왕, 그리고 웃시야의 아들 요담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 왕, 아하스 왕은 16장에 등장하고요.
15장에서는 웃시야 왕과 요담 왕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15장에서부터 이미 어떤 말씀이 나오는가 하면 15장 32절부터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이년에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이런 말씀들이 이 열왕기 상하를 읽으면 이상하지 않나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는데 산당은 없애지 않았더라”
이 두 가지를 동시성으로 볼 수 있느냐? 이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본다는 거예요.
정직히 행하는 것도 보고 악한 것도 보고.

그러면 인간들은 어느 박자에 춤을 출까요? 자기 편한 대로 하겠죠.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을 우리가 갖고 있는 사고방식으로 읽으면 말씀 자체가 해석이 안 돼요.
정직히 행했으면 산당을 없애야 되죠. 우리의 논리는 그렇잖아요.

한편으로는 정직히 행하고 한편으로는 산당을 없애지 않았다.
산당을 없애지 않았다는 것은 우상숭배를 하겠다는 건데
우상숭배를 행한 것이 정직히 행한 겁니까? 이것이 그 요담 왕이 한 행적이고요. 35절.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
성전 중심의 제사가 되어야 되는데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요담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더라 요담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조상 다윗성에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 말씀을 보게 되면 르말랴의 아들 베가, 아람 왕 르신과
이것은 르신은 아람 왕이고요. 르말랴의 아들 베가는 북이스라엘입니다.
그 연합군을 결성하여서 남 유다를 친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여호수아를 알고 있고 사사기를 알고 있고 모세 오경을 알고 있다면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지금 유다가 어떠한 상태라는 거예요?
말씀에 순종한다는 겁니까? 불순종한다는 겁니까? 불순종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비로소”, ‘비로소’라는 이런 표현을 쓰는 이유는 참고 기다렸다라는 거죠.
그때그때 하나님이 쳐버리면 살아남을 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왜 기다리시느냐? 하면 언약 때문에 그래요.
말씀이 육신이 되시는 그 때를 위하여서 이스라엘을 만들었지.
하나님이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니까 그때그때 다 죽여버리지 왜 남겨두느냐?
이건 누구 중심으로 해석하는 거예요? 인간 중심으로, 자기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요담이 죽은 이후에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오늘 이사야 7장에 나오는 아하스 왕, 유명하죠.
아하스 왕의 아들 왕에 대해서 나오는데
“르말랴의 아들 베가 십 칠년에 유다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앞서서는 나름대로 이 다윗의 길을 행하였다. 이렇게 언급을 했는데.
이 아하스 왕은 아예 전면적으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이스라엘의 열왕이라는 것은 여로보암 왕을,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왕이 있잖아요.
단과 벧엘에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성전을 건립하여서
북이스라엘 전체를 우상숭배의 전당으로 만든, 그들의 길로 행한 왕이 아하스 왕입니다.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아무튼 제대로 된 우상을 섬기죠.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할 정도라면 그 신앙심이 어느 정도일까요?
이것을 보면 이 우리가 볼 때는 왕이 어리석다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 이전에 다윗 왕을 이들이 알고 있잖아요.

다윗 왕도 알고 있고 솔로몬도 알고 있고
그 이후에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이 한 그 모든 짓들을 다 알고 있잖아요.
그 아는 것과 현실이 부딪히면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신뢰하고 말씀대로 살아야지’
그거 누가 모릅니까?

그런데 지금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 연합군이 쳐들어오는 그러한 어떤 위태한 사태,
그 사태가 만들어진 원인이 뭐냐? 뭐 이런 일은 벌써 일어나도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겁니다.
신명기나 이런 데서 그런 걸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거든요.
누누이 말씀하셔도 안 듣죠. 왜 안 듣습니까? 이 질문을 해야 되죠.

오늘 로마서도 얘기했지만 죽을 육체잖아요. 그죠?
“몸의 사욕을 순종하지 말라” 하잖아요.
순종하지 말라는 거 누가 모릅니까? 순종하지 말라는 거 누가 몰라요?
근데 추우니까 어때요? 예배 시간에, 오전에 좀 추웠다면서요.
‘춥다’ 그게 뭐예요? 원망이죠.
누구를 향한 원망입니까? 목사님이 좀 사찰 집사처럼 한 1시간 일찍 와서 좀 빵빵하게 데워놓으시지.
옛날에는 그랬거든요. 요즘도 뭐 그런 교회도 있지만
환기도 해야 되잖아요. 아침에. 환기를 10시 10분까지 하고
10시 10분에 키니까 제가 좀 온도를 너무 낮춰놨는데 만만히 보고.

원망이 왜 나옵니까? 환경이거든요. 상황이에요.
그 환경 자체가 그러한 상황을 만드는 겁니다.
아니 지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셨으면
그냥 아하스 왕의 통치 시대 때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에요.
그 이전에 자기 아버지 요담 왕도 마찬가지였고 산당을 없애지 않았잖아요.
그것이 축적되어서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진 거잖아요.
그러면 여기에서 살 길은, 이 두려움 속에서 살 길은 무엇이냐?
그리고 왜 두려워하느냐? 왜 무서워하느냐? 그것은 이 왕이 왕이 된 거예요.
누구처럼? 사울 왕처럼.
이스라엘의 왕 노릇을 하면서 왕 행세를 하고 싶은 겁니다.
‘나는 왕이 아니요.’ 그러면 ‘하나님 마음대로 하세요.’ 이러면 되잖아요.
얼마나 간단한 문제입니까?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잖아요.
왜?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이게 예루살렘 성전 거기도 우상의 전당으로 만들지만
한 곳에서만 제사를 안 드리고 곳곳에서 제사를 드리는 이유가 뭐예요?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거죠.

그러면서 그 지성에 대한 가장 최고의 지성은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겁니다.
번제로 드리는 거예요.
이걸 이렇게 보니까 좀 이상하지는 않죠?
‘하나님, 이 정도 받으면......’ 그 하나님이 우상이 되었지만.
우리는 이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했으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고 우상에게 드렸더라. 몰록신에게 바쳤더라 그렇게 나오니까
그럴 거라 생각하는데,
이미 그들의 인식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자체가
자기들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좌지우지된다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할 정도로 드리고 모든 높은 산이, 조금만 볼록하면 다 산당이에요.
여러분 이거 상상이 됩니까?
이거는 왕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백성,
남 유다에 있는 모든 백성들도 우상을 섬기는데

전 국민 지금 5천만 명이 예를 들어 예수님을 믿는다 칩시다.
그럼 교회에 들어갈 장소가 다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죠.
안 되니까 사람이 모일 곳은 다 예배당으로 만드는 거예요.
지금 그겁니다. 지금, 이 남유다의 상황이.
그 정도로 위급하고 간절한 상황인 거예요.

특히 이 북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이 쳐들어온다고 하니까
이 시점이 그 전인지 후인지 여긴 성경에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이 순식간에 되는 게 아니잖아요.
모든 높은 곳을 산당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 과정들이 다 이렇게 깔려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버지 대에도 산당은 패하지 않았고
산당이 패하지 않았는데 이 결정적으로 정성이 부족하니까 아들까지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신이 도와주지 않겠느냐?’
지금 그 내용이 7장 3절 이후에 나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 아하스 왕에게 보낼 때는
아하스 왕의 마음을 바꾸려고 보냅니까? 아니면 마음을 더욱더 강퍅케 하기 위해서 보냅니까?
눈을 감기게 하기 위해서 보내잖아요.
이걸 뒤집어서 돌려보면 아하스 왕의 상황 자체가 선지자의 말이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라는 거예요.

우리 같으면 ‘징조를 보여라’까지 얘기했으면 그것쯤이야 보여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에요.
‘아들까지 불 가운데 지나게 했다’라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다’라는 거예요.
믿는 구석이 있으면 아예 듣지도 않습니다.
그게 이 구약의 복음이죠.

그 복음을 전하는 건데, 그 복음이 그에게는 복음으로 안 들리는 겁니다.
오히려 그 복음으로 인하여서 더욱더
‘내가 징조를 구할 것 같으면, 하나님을 믿을 것 같으면 아들을 불 가운데 지나게 했겠느냐?’
이 얘기예요.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하거든요. 믿는 구석이 있잖아요.

우리가 언제 기도합니까? 돈 나올 구석이 있으면 기도 안 하잖아요.
너무 노골적입니까?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은 기도 안 해요.
여러분들이 기복주의가 아니라서 기도 안 하는 것 같아요? 예?
연금이 나오고 뭔가 은행 잔고가 가득하고 매달 수입이 짱짱하게 나오니까 기도 안 하지 무슨......
인간은 기복을 버린 적이 없어요.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은, 말씀을 안 보겠다라는 것은 자기를 높이는 태도예요.
‘나는 이 아하스 왕이나 이런 사람들처럼 수준 낮게 아들을 안 보내겠다.’
반대로 아들이 지금 죽었는데, 장로님께 전화 왔어요.
지금 갑자기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말씀 듣다가도 안 가겠습니까? 우리 장로님은 안 가시겠지만......
근데 갈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손자가 죽었다. 그럼 벌떡 일어나 가겠죠.
그런데 손자까지도 안 통한다. 그럼 또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그 사태를 유발시키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보면서 이 아하스 왕이 왜 이런, 이 되지도 않은 짓을 행했느냐? 라고 하면
그러면 다윗 왕은요? 다윗왕은 왜 여호와 전쟁에 앞장서 가지 않고
거의 끝났으니까 마무리 짓지 않고 왕궁에 앉아서 밤에 뒷짐지고 앉아서 거닐다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아를 살해합니까?

사무엘상 13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13장을 보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 사무엘 선지자가
자기가 올 때까지 칠일을 기다리라. 사울 왕에게 이렇게 지시를 내립니다.
왕이라 해봤자 선지자의 지시를 받아야 되는 왕이에요.
그게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런데 약속을 안 지켰어요.
지금 백성들은 다 떠나가고 곳곳에 숨을 곳을 찾아서 다 숨어버린 상태에서 자기는 왕이에요.
그리고 왕이니까 어떻게 해야 돼요? 백성들의 마음을 끌어모아야 되잖아요.
근데 그들이 또 본 구석은 있어가지고
선지자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 여호와께서 승리케 해주신다는
그런 어떤 경험들이 있으니까 사울 왕이 번제와 화목제를 딱 드립니다.
드리고나니까 이 사무엘 선지자가 온 거예요. (삼상13:12)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12절을 읽었습니다. 방금. 13장 12절

우리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떡하겠어요?
성경을 거꾸로 봐야 돼요.
주님은요 우리를 어떤 자리로 몰아가는가? 하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의 자리로 몰아가요.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사울 왕처럼 하지 않아야지’
그거야 시간이 남아돌 때 그런 거예요. 시간이 남아돌 때.

목사들이야. 시간이 남아도니까 성경을 보잖아요.
그런데 목사가 갑자기 돈을 벌어야 되는 현장으로 투입된다. 해 보세요.
성경은 시간 날 때, 짬 날 때 오죽하면 지하철에 광고하겠습니까?
‘어 내일 일요일이네. 설교 어떻게 준비하지?’ ‘나에게 물어봐.’
그럼 물으면요, 10분 내로 설교문을 써준답니다.

바보들이야 그 짓을 하지. 요즘은 한 달에 20달러 주면요. 쳇gpt, 유료... 거기 가 있어요.
거기 들어가면요, 조금만 더 들어가면 한 달에 한 10만 원을 투자하고요.
그 교회 설교하고 100만 원은 받을 수 있잖아요. 50만 원은 받을 수 있거든요.
별별 게 다 나오거든요.

그런 상황으로 몰리면 과연 말씀을 보겠느냐? 라는 거예요.
말씀을 보고 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육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육 자체가 피곤해서 찌들어버리면 아무것도 못해요.
그러니 모든 것이 은혜인 거예요.

그래서 지금 이 말씀을 통하여서 눈이 감기고 귀가 닫히고 마음이 강퍅한 자들은 더 강퍅해져요.
어떻게 하는가? 하면 ‘우리는 기다리자’라는 거예요.
주님의 때를 기다리고,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적이 오더라도 삼림이 흔들리는 것처럼 흔들리면 안 돼.’
주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이런 방식이에요.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하거든요.
두려움이 없다 하니까 ‘우리는 두려움 없어야 돼’라는 식으로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두려움이 없다라는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면
십자가를 경유시킵니다. 성도를.
두려움 속에서 십자가를 경유하게 되면 두려움 없는 세계 속으로 인도함을 받아요.

그래서 두려움이 없는 자는 십자가를 자랑하지, 두려움이 없음을 자랑하는 게 아니에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을 두려움과 떨림 속으로 몰아넣으셔서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자로 날마다 만들어 주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