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2-04 00:04
20231203 이사야 강해 22강 사 7:18-25 심판 날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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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12-0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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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3 이사야 강해 22강 사 7:18-25 심판 날

하나님 말씀, 이사야 7장 18절에서 25절까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사7:18~25)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그 내는 젖이 많으므로 뻐터를 먹을 것이라 무릇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자는 뻐터와 꿀을 먹으리라 그 날에는 천 주에 은 일천 개의 가치 되는 포도나무 있던 곳마다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라 온 땅에 질려와 형극이 있으므로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보습으로 갈던 산에도 질려와 형극 까닭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의 밟는 곳이 되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아하스 왕에게 보내셔서 아하스 왕의 완악함을 드러내십니다.
징조를 구하라고 해도 구하지 않겠다고 하죠.
그 정도로 완악하다라는 겁니다.

그러한 그에게 징조를 알려주는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처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 바 되리라”

이 말씀에 대해서 우리는 곧장 마태복음 2장으로 넘어오고 싶지만
실제로 이 당시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건 아니고
이러한 사건이 역사적으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게 아니라 아이를 낳았겠죠.
이 처녀는 임마누엘과는 다릅니다.
마리아에게서 난, 마리아와는 다른 부류인데.

역사적 사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역사적으로 반드시 일어나요.
역사적으로 일어난 그 사건이 이제 묵시로 바뀌는 겁니다.
말씀이 항상 그렇게 구성되어 있어요.

이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닐 때 이 말씀에 대해서 이런 설교는 거의 못 들어봤잖아요.
그 당시에 앗수르가 쳐들어올 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

그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르말리아들, 베가죠.
이 두 나라가 폐할 것이라는 그 말씀대로 되어지는데,
오늘 본문은 그 날에, 앗수르가 이렇게 쳐들어오는 날에
이스라엘이 어느 정도로 황폐하게 될 것인가 거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18절에 보면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
파리떼가 빼곡히 앉아 있는 걸 상상해 보시면 돼요.
혹시 그런 걸 보셨나요? 우리 장로님은 끄덕끄덕하시는데.
우리 어릴 때 보면 이 소 마구간이나 아니면 이 돼지를 칠 때
저 어릴 때는 돼지가 이렇게 저희 집에도 키웠는데
그 파리떼가 많을 때는 정말 새카맣게 그냥 치면 이만큼 파리를 잡죠.
요즘도 그 돼지의 우물들이 있는 곳들은 뉴스에 보면 파리떼가 덮친다는데
그 정도로 대적들을 통해서 이 남유다를 치신다라는 그러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북이스라엘도 포함되고 있고요.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수치스럽게 만든다는 겁니다. 부끄럽게 만든다는 겁니다.
오죽 말을 안 들으니까 세를 내와 가지고 돈 주고 사 오는 겁니다.
사와서 이 심판의 몽둥이로 사용하는 거고요.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그 내는 젖이 많으므로 뻐터를 먹을 것이라 무릇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자는 뻐터와 꿀을 먹으리라”
반어법이죠. 반어법.
보통 한 가정이 그 가족 수가 많아요.
그런데 여기에 보면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는데” 먹고도 나와요.
그 정도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멸을 당한다 그 내용이고요.

그다음 23절에
“그 날에는 천 주에 은 일천 개의 가치 되는 포도나무 있던 곳마다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라”
쑥대밭이 된다는 거죠.
전쟁이 지나가고 나면 농사를 지을 수 없잖아요.
엄청난 그 상품을 쏟아내던 포도밭이 질려와 형극이 나는 풀밭, 잡초밭이 된다라는 겁니다.
이 잡초밭 되는 걸 우리 어릴 때는 많이 봤거든요. 순식간입니다.

어떤 분이 이제 마음을 굳게 먹고 이렇게 땅을 하나 이렇게 땅이 있는데
그 땅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농사를 짓는 게 꿈이잖아요.
그런데 거기는 매일 가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잡초로 뒤덮힙니다.
농사짓는 게 뭐 장난이 아니거든요. 그러면 그 잡소를 없애는 방법은 제초제를 치는 거예요.
제 어릴 때는 파라촌이라는 독촉이거든요. 몸에 해로운.
그 독초를 치면 풀이 안 자라는 게 아니라 또 얼마 안 가요.
그러면 순식간에 그렇게 되는데.
지금 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징조를 구하지 않는
이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렇게 이루어진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온 땅에 질려와 형극이 있으므로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왜 그렇습니까? 짐승들이 뛰어노는 세계가 돼요.
사람이 적으면 짐승이 놀잖아요. 얼마 전에 코로나 때 어느 지역입니까?
그 도시에 원숭이 데부터 시작해서 사람이 다니지 않으니까 짐승들이 뛰어노는...
사람 수가 적으면 그렇게 돼 있어요. 구조가.
농촌도 사람 수가 적으면 짐승들이 많아지잖아요.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뭐 도둑도 많아지겠지만.

그 정도로 지금 하나님의 심판에 임하고 25절에는
“보습으로 갈던 산에도 질려와 형극 까닭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의 밟는 곳이 되리라”
짐승들이 뛰어노는 곳이 돼버려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신다라는 겁니다.
이게 이제 앗수르에 의한 심판이고 이 심판은 두 번째 또 심판이 이루어지죠.
바벨론에 의한 심판이 또 이루어집니다.
바벨론에 의한 심판이 이루어지고 그 이후에 이제 칠십 년이 지나고 칠십 이레로 바뀌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는 거죠.
예수님이 오실 때는 어땠는가 한번 볼까요? 마태복음 2장입니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여전히 이 약속의 땅에는 왕이 세워져 있고
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예루살렘에는 서기관들도 있고 제사장도 있고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들이 이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어요. 믿고 있는데.

예수님이 오셨을 때 이 심판이 이루어질 때 그 심판을 받아야 할 그 상태는 어떤 상태냐? 라고 하면
오늘 이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보내고 나중에 바벨론을 보내고 심판을 하실 때
심판 주로 오시게 되면 이게 역전 현상이 일어나요.
우리 같으면 우리의 형편 자체가 심판을 인식하는 상황이 된다라고 생각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주님이 오실 때는 이게 내 쪽에서 이 심판을 알아볼 수 있는 심판이 아니에요.
반대로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주님이 친히 심판을 해버리면 성도는 그 심판 속에 합류를 당하죠.
합류를 당하게 되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느냐? 라고 할 때는
“우리가 어찌할꼬”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요.
심판이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자신이 심판받아 마땅한 상황을 알게 되는 거예요.
내가 심판받아 마땅함을 알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이사야를 읽을 거 아니에요.
이사야를 읽고 지금도 달달 외우고 있거든요.
외우고 있으면서 이것은 단순히 앗수르에 의한 멸망의 문제가 아니라 바벨론에 의한 멸망도 있고
그 이후에 이 메시야가 오시기까지의 어떤 상황을 말씀을 하고
계심까지도 눈치를 채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눈치를 채고 있지만 문제는 받는 자 외에는 알 길이 없다라는 거예요.
말씀을 대하는 방식은 항상 내 쪽에서 대하는 방식인 거예요.

지금 예수님께서 오셨잖아요.
오셨을 때 이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을 하고
그래서 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서 물어봅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나겠느냐”라고 물었을 때 이들이 어디서 날지를 다 알아요.
그거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라고 하면 그 그리스도라는 그 인물에 대한,
그들이 나름대로 만든 그 구약 성경을 바탕으로 한 메시야상이 따로 있다라는 거예요.
달리 말하면 자기들이 알아볼 거라는 겁니다.
알아본다라는 것은 자기들은 전혀 심판받을 상황이 아니라는 거죠.
심판받을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 예수님께서 나셨잖아요.
그 나신 그 상황 자체가 지금 심판 속으로 내몰리는 상황인데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쪽으로 안 내몰린다라는 겁니다.
다 알아요. 아는데 왜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지 않느냐? 라고 하면
자기들이 기다리는 메시야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우리에게,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주시게 되니까
이 모든 상황이 전복이 되죠. 완전히 역전이 일어나는 겁니다.
제자들도 성령을 받게 되니까 자기들이 시편 51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 이사야 7장에 나오는 이 심판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심판이잖아요.
그 가시적인 심판이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육의 세계가 뭘로 뒤바뀌는가? 하면
영의 세계로 뒤바뀌어버려요.

육의 세계가 영의 세계로 뒤바뀌었다 했을 때는 육이 필요 없다라는 게 아니에요.
그 육을 갖고 계속해서 영의 세계가 어떠함을 계속해서 들추어내는 방식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이 일을 하신다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저희들에게 성령을 주셨기에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알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인생이 주님의 십자가의 피만을 자랑하기 위한 형편과 환경으로 인도하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