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2-10 15:18
20231210 이사야 강해 23강 사 8:1-4 마헬살랄하스바스 안개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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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12-1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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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0 이사야 강해 23강 사 8:1-4 마헬살랄하스바스 안개

하나님 말씀, 이사야 8장 1절에서 4절까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사8: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거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내가 내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바 될 것임이니라”

여호와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계속해서 명하시는 말씀인데,
“서판을 취하여서 그 위에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이 단어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누구나가 다 알아듣는 글씨입니다.
‘노략이 속히 임하리라’
앗수르에 의해서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속히 멸망당할 것이라는 그 예언의 말입니다.

관람자 입장에서는 예언을 하셨으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이루어지겠죠’라고 할지 모르지만
당사자, 이 말씀을 듣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관람에 불과합니다.
“주님이 속히 오리라” 하셨거든요. 어때요? 그 말씀은, 속히 오신다는데.

말씀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요소가 아니에요.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이 서판, 서판을 자기 아들로 옮겨지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전에 신실한 증인,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와 우리야,
이렇게 두 증인을 불러서 이렇게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이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 의문스러운 게 이 우리야라는 인물,
여베레기야라는 인물은 그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라는 인물은 누군지 정확하게 몰라요.
성경을 다 살펴도.

그런데 이 우리야라는 이 제사장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열왕기하 16장에 보면 인물이 나오는데 한번 보겠습니다. 10절입니다.
“아하스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단을 보고 드디어 그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 아하스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대로 단을 만든지라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 단을 보고 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자기의 번제와 소제를 불사르고 또 전제를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단에 뿌리고 또 여호와의 앞 곧 전 앞에 있던 놋단을 옮기되 새 단과 여호와의 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단 북편에 두니라 아하스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아침 번제와 저녁 소제와 왕의 번제와 그 소제와 모든 국민의 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를 다 이 큰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고 오직 놋단은 나의 물을 일에 쓰게 하라 하매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왕의 모든 명대로 행하였더라”

이 앗수르에 의해서 도움을 받은 이 아하스 왕이 그곳에 다메섹이라는 곳에 가보니까
예상한 대로 이곳에서 제사 드리는 제단이, 번제단 있잖아요.
그것이 어마어마하게 컸던 겁니다.
부처의 그 모양을 자꾸 크게 하는 이유가 있잖아요. 크면 효과가 있을 거라.
효과가 있어요. 크면 클수록, 관광객이 많이 오니까.
인간의 심리 자체가 큰 데에 가서 빌려고 하거든요.

거기에 있는 이 단, 원래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지은 그 성전이 그 놋제단이 따로 있거든요.
원래 하나님이 명하신. 그 재단과 비교해 보니까 이 효력이, 효과가 떨어지는 거예요.
기도를 하더라도 큰 교회에 가서 기도하면 효과가 잘 된다.
절간에 가서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죠. 그 유명하지 않은 곳에 가서 자살하면 안 돼요.
칠장산이라는 곳에서 누가 죽었잖아요. 혹시 알아요? 칠장산에 제가 한 달 전에 가봤었거든요.
불타기 전에 구경했어요. 거기. 아주 오래된 사찰인데.
유명한데 거기에 뭐가 있는가 하면 거기가 어사 박문수가 빌어가지고 뭐가 1등 한 거예요.
장원급제했다라는 그 절이에요. 대학 입시를 앞두고도 그런 데 가서 기도해야 되거든요.
이름을 새기고. 아무 데나 가면 효력이 없어요.

복을 받으려면 찾아다녀야 되는데 이 상대가 잘 살거든요.
삼성이 부자잖아요. 부자가 된 이유가 있어요. 원불교를 믿거든요.
사람들은 그런 데 별로 관심이 없잖아요.
조용기가 그걸 알았으면 ‘우리 다 원불교 믿읍시다’ 이렇게 했을 건데 .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살잖아요.
복을 받으려면 원불교를 믿어야 되거든요.

원불교 교리가 재미있어요. 우리 동네에 있는데.
보은(報恩)을 하라는 거예요. 보은. 받은 복이 있으면 갚아라 거든요.
그들의 삶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처럼 살거든요.
우리가 아는 그런 레벨이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이 아하스 왕이 이 다메섹에 가보니까 비교가 되잖아요.
‘저래서, 저런 단이 있었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소유할 수 있었구나’
그래서 식양을 미리 대제사장에게, 우리야에게 보내어서 만들게
이제 지시를 내려서 우리야 대제사장이 교체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라고 이야기를 해요. 진실한 제사장.
‘신실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우리는 얼핏 ‘아 언이 그만 보시고 여기 보세요.’
진실한, 신실하다니까 우리야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을 해요.
‘이전에는 신실했는데 이후에 얘가 타락을 했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신실한 두 증인을 했을 때 핵심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신실한 거예요.
하나님이 두세 증인을 갖고 법대로 처결을 하잖아요. 율법에 의하면.
그래서 이 사람들이 신실하냐? 안 하냐? 는 하나도 안 중요해요.

“마헬살랄하스바스”가 이 이사야의 아들이거든요.
이 계시가 희한해요. 이름을 서판에 쓰고, 그다음 증인을 세우고, 그다음 동침을 해요.
부부 관계 자체가 무엇과 관련돼 있는가? 하면 언약과 관련돼 있어요.
충격적입니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디모데전서에 가면 “여자가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이런 말씀이 나오거든요.
그런 말씀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에요.
이 모든 만물은 주를 위하여 돌아가거든요.

여기에서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바는
제가 왜 우리야를 이렇게 보느냐? 라고 하면 말씀을 위한 우리야예요.
그 사람이 진실했다, 신실했다.
그러면 신실한 증인이 개판이 되면 증거한 그 하나님의 그 말씀이 사라집니까?
그게 아니거든요.
하나님께서 진실한 증인 둘을 세웠다라는 것은 반드시, 속히 노략을 이루겠다라는 거예요.
말씀대로 하시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누구까지 동참시키는가? 하면 이사야가 그 아내와 동침하여서 아들을 낳는데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
이 이름이 듣기 좋아요? 싫어요? 물론 이쪽은 남유다인데, 남유다라고도 성하지 않습니다.
북쪽을 멸망하면서 앗아수르가 남유다를 완전히 쑥대밭을 만들거든요. 나중에는.
남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 이름이 ‘속히 노략이 되리라’
누가 이름을 이렇게 짓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궁금한 게 이런 거잖아요.
성경을 보면서 궁금한 게 욥의 자녀들이 있잖아요.
하루아침에 다 죽었잖아요. ‘그 사람들은 뭐냐?’ 이거예요.
여러분 그런 궁금증은 없습니까? 아니 그 사람들은 천국 갔어요? 지옥 갔어요?

천국, 지옥에 미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인물들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어요.
왜냐하면 천국 갔는지, 지옥 갔는지 안 나오거든요. 거기에.
그냥 말씀 때문에, 누구 때문에? 욥 때문에.
욥이라는 인물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고 마귀가 있잖아요.
그럼 하나님이 내기를 걸은 것 때문에.

어쨌든 욥은 그 나름대로 그 시대의 주인공이라 치면 그 자식들은 하루아침에 죽어요.
무슨 죄가 있습니까?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을 해요. 사람들은.
세상이라는 것이 말씀을 위한 세상이에요.
그 욥의 자녀들의 자리에 욥을 집어넣으면 돼요.

근데 우리는 욥이 의미 있어 보이잖아요.
그 의미 있는 모습을 하루아침에 죽는 그 아들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어야 돼요.
우리는 욥기를 보면서 의미 있는 인물을 찾아내어서 내가 거기에 적용을 하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의미 있는 인물이 되고 싶은 거예요.

이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이 아들은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름만 남겨요.
왜 주님은 이렇게 일을 하시는가?
이것은 북이스라엘도 마찬가지고 이 아람도 마찬가지고 남유다도 마찬가지고
누구를 위해 세웠고 누구를 위해 만들었냐? 라는 거예요.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거거든요. 이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고 계속해서 애를 쓰고 노력을 하니까
그 의미 있게 하려면, 이 땅에서 의미 있으려면 사람이 태어나면 이름을 남겨야 되잖아요.
여러분 우리 세대, 대부분 우리 세대인데 아닌 사람도 있지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한문 다 배우셨잖아요.
한문 안 배운 사람들은 신세대들이고 우리는 구세대.
죽으면 이름을 남겨야 될 거 아닙니까?
요즘은 걱정 안 해도 돼요.
여러분이 죽으면 그게 그냥 영원히 남아요. 클라우드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거죠.
이름을 남기고 싶으니까 우상을 찾고
그 찾는 목적은 오전에 설교했듯이 탐심이 작동하고 힘을 더 가져야 되고.
전국 만점은 인터뷰를 하잖아요. 꼴찌는 인터뷰 안 해요.
어떻게 해서 꼴찌했느냐? 안 묻잖아요. 그죠?

사람들은 관심이 이런 세상에 일어나는 그 일들을 보게 되면
얼마나 악마화되어 있느냐? 악마의 종인가? 를 볼 수 있는 겁니다.
그게 교회에 그대로 들어오면 제가 아침에 그 입시에 대한 이야기를 쭉 들으면서 설교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참 우리는 한 명밖에 없어서 감사하다.’
이게 대학생들이 신입생들이 많으면 줄 세울 것 아닙니까.

그러면 또 ‘목사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줄 안 세워야 된다.’
제가 만일에 많으면 줄 세울 거예요. 줄 세워놓고 이건 이게 악마적이다고 얘기해 줘야 돼요.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줄을 세운다고 해서 줄을 안 서는 게 아니에요.
교회에 와서는 그걸 없애라 하는데, 그 없애라는 게 수상해요. 없애라는 게
교회는 이렇게 공평해야 되고 정의로워야 되고...
이런 생각 자체가 그 요구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탐심이 가득한 거예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게 없는 겁니다.

지금 이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이런 인물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앞서 말씀드린 바대로
“너희들을 위한 이 언약이 아니었고 남유다가 아니었다”라는 겁니다.
그럼 누구를 위한 거냐? 그 임마누엘을 위함이에요.
임마누엘을 위한 이스라엘인 겁니다.
그 임마누엘,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를 위한, 그 아들을 위한 이스라엘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떤 자로 드러나야 되는가? 하면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자로 드러나야 돼요.
“꽃은 시들고 풀은 마르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하니라.”
이 말씀을 위해 이들은 지금 자식을 낳고 나라가 만들어지고
그 과정 속에서 이사야는 그 풀의 역할, 꽃의 역할을 하다가 사라져야 돼요.

주인공이 되고 싶기 때문에 탐심이 가득 작용하기 때문에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여기에 의미 있는 인물이 되고 싶은 거예요.
주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가 의미가 있어지잖아요.
근데 그 의미가 있다라는 것은
너희들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김춘수의 꽃은 의미가 어떻게 됩니까?
의미가 되어버리면 ‘나는 나다’가 되잖아요. ‘나는 아니요’가 아니라.

야고보서 4장을 보겠습니다.
‘꽃’ 모르면 나중에 한번 찾아보세요. 김춘수의 꽃.
다 배웠죠? 중고등학교 때 그죠? 요즘은 안 나옵니까? 요즘 세대 안 나와요?
김춘수 꽃 배웠어요? 시. 없어요. 미안합니다. 요즘 안 배운답니다.
우리는 그 학력고사 칠 때 꼭, 꼭 나왔거든요.

야고보서 4장을 보면 13절입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이걸 복음으로 안 들으면 행위로 듣겠죠.
지금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주님께서는 우리를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로 만들었어요.
그러면 죄인으로 드러나면서 십자가를 증거하는 것으로 끝이 나야 되는데
이 한 사람이 아무 도시에 가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자고 해요.

이렇게 안 살면 어떻게 살아요? 지금 장사하려고 고향을 떠나오셨잖아요.
그죠? 맞죠? 박 집사님 돈 벌려고 떠나온 거잖아요.
복음 때문에 떠나오지 않았잖아요.
여기 원래, 서울분들은 원래 그렇다 치면 딱 맞죠? 우리 다 촌동네 살았잖아요.
안동이라는 촌동네. 상주, 상주 촌동네에서 오셨고 상주 맞죠? 상주.
뒤에 우리 최집사님 상주 성주 구미, 김천, 김천 미안합니다.
이거 회로가 고장이 났네.

아니 이러면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돈 벌지 말란 말입니까?
지금 이렇게 발악을 하게 돼 있어요. 인간들은.
지금 그러한 어떤 악마성을 끄집어내는 말씀이에요.
거기에서 죄인으로 드러나면서
‘아 이렇게 일년을 유하면서 장사하고 일을 보는 이조차도 주님이 죄인으로 드러나기 위한 조치군요.’
‘주께서 (어떻게?) 이것을 하라고 하셔서 했습니다’라는 그러한 태도로 주님은 살기를 원하는 거예요.

매사에 책망인 거예요.
나는 여기에 해당 안 되니까 나는 장사를 해서 이을 보기 위해서...
여기에 해당 안 되는 사람 없잖아요. 지금. 돈을 벌려면 다 떠났잖아요.
떠난 게 식당이고 떠난 게 뭐 사업이고.

말씀이라는 게 우리를 무엇으로 계속해서 만들어내시느냐? 하면
주님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가지셨잖아요.
다 가지신 그분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시게 되면
우리는 안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십자가의 증인으로 살려지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그러한 거예요.

그러니 마헬살랄하스바스처럼 이름 하나 딱 남기고
그 이름은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그냥 말씀이 응하는 그 역할만 하다가 사라지는, 그것이 성도가 받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성령을 주시고
우리를 날마다 잠깐 보였다가 사라지게 하는 안개로 삼아주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