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6-02 17:40
20240602 이사야 강해 48강 사 14:28-32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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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6-0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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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2 이사야 강해 48강 사 14:28-32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하나님 말씀, 이사야 14장 28절에서 32절까지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사14:28~32)
“아하스왕의 죽던 해에 받은 경고라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되리라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빈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내가 너의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너의 남은 자는 살륙을 당하리라 성문이여 슬피 울찌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찌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게 되었도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항오를 떨어져 행하는 자 없느니라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아멘)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블레셋, 지금의 팔레스타인이라고 할 수 있죠.
이 나라에 대한 심판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언급합니다.
앗수르가 물러가니까 ‘이제 살 만하다 괜찮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기뻐하는데
하나님께서 더 강력한 날아다니는 불뱀을 보내서 이 블레셋을 소멸하게 할 것이다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래서 이 역사적 사건이 무엇이냐? 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고
산헤립이 이 블레셋을 멸망시켰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근데 그거 아는 거 하고 복음하고는 상관이 있으면서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단 말입니까?
그것이 시온과 어떻게 연관이 됩니까? 라고 하면 이 시온, 시오니즘이라고 볼 수 있죠.
이 시온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난할 것인데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 이 이사야를 보면 지나간 과거잖아요.
우리가 역사를 교훈은 삼을 수 있지만 실제적인 내용으로 과연 볼 수 있느냐? 라고 하면
그건 아니잖아요.

그러면 이 본문을 그냥 교적인 말씀으로 볼 거냐?
아니면 이 역사 속에서 드러난 이 내용이 정말 하나님께서 실질적으로 이게 다 그림자잖아요.
이 그림자가 실질적으로 이 땅에 구현이 될 거냐? 라고 할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는 것은 메시야 왕국입니다.

주변국을 이 블레셋이 역사적으로는 산헤립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예루살렘에 세워질 이 메시야 왕국에 의해 귀속이 돼야 돼요.
구약을 설교할 때는 이 얘기를 반드시 해야 됩니다.
이 얘기를 하지 않으면 이 구약 말씀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졌어.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걸 믿어야 됩니다라는
교훈으로밖에 끝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렇게 믿은 자들이 예수님을 살해한 유대인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을 믿는다라는 것이 얼마나 악마적이냐를 알아야 돼요.
유대교가 말씀을 믿은 겁니다.

왜 믿었느냐? 여기에도 32절에 나와 있지만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
그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피난한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이 피난하는 자들이 누구냐? 라고 하면 나를 집어넣어요. 나.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은 나 빼고는 해석이 안 돼요.

우리들도 문득이 아니라 자주 그런 질문이 들잖아요.
구어 성경에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는 거예요. 나와.
이 나라고 할 때는 물론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들은 십자가 피를 증거하기 위한 우리의 현실,
상황임을 인정을 하고,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내 상황을 이렇게 몰아가시는 것을 인정하지만,
문득문득 우리가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도대체 나한테 일어나는 일과 주님의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는 거예요.

해답이 없는 질문들이 많죠.
성경을 아무리 봐도 내가 당한 이 상황이 과연 십자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성경은 거꾸로예요.
십자가를 위해서 그 상황을 주셨다는 거예요. 정반대예요.
모든 만물이 주를 위해서 이 상황을 베푸신 겁니다.

성경 한 구절 찾아보겠습니다. 호세아 11장인데요.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찌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칼이 저희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 하리니 이는 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니라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찌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돌아오라고 아무리 외치고 사랑을 보여주더라도
선지자들을 통해서 돌아오라고 외치는 그 사랑이 이들에게는 더 멀어지게 하는 외침일 뿐이었다라는
내용을 말씀하고 있는데 11장 1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이 말씀이 상당히 뭐랄까요? 기분 나쁘게 하는 말씀인 거예요.
여러분의 자식들이 뭐랍니까?
‘아버지가 나를 낳았으면 책임져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 말 들어볼 나이가 안 됐나요? 아직.
이 애들이 하는 이야기가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지금 여기에 보면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잖아요.
그러면 아들로 만들었다면 그 아들을 어떻게 해야 돼요? 보호하고 지켜줘야 되잖아요.
보호하고 안 지켰다라는 게 이들의 생각인 겁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사랑하고 우상을 섬기는 그들에게 음란한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서 돌아오라고 외치신 것이 사랑인데, 안 들리죠.
왜 안 들립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가서 한 일이 소경이 되게 만들었잖아요.
선지자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다 소경이 되었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으로 안 들리는 겁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 때가 되면 이들의 귀가 열려요.
귀가 열려서 이 사랑의 외침을 듣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선언은 그 사랑의 외침을 듣는 자들이 소경이라 하고 귀머거리라고 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 말씀을 전개하느냐? 하면
인간이 갖고 있는 그 논리를 주님은 다 따라옵니다.
다 따라와서 그 모든 것을 죄라고 규정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말씀은 누구를 증거하는 말씀이냐? 하면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라는 이 말씀을 마태복음 2장에서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장을 봅시다.
동방박사로 인하여서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고 헤롯왕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죠.

13절에 보면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첫째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을 때는 출애굽입니다.
그리고 호세아 예언도 역시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는 거예요.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호세아서의 이 내용이 어디를 적용시키는가? 하면
남은 자 유대 땅에 적용시켜서 유대 땅에서 예수님이 살해당하려고 하니까
예수님을 애굽으로 피신시키는 사건을 두고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님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리고 애굽이 그 애굽이 아님도 드러나요?
이렇게 말하면 오해하는 게 뭐냐? 하면
그러면 그 애굽이 애굽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라고 이야기하는데 애굽이 맞아요.
애굽은 맞고, 또 그 애굽은 진짜 애굽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 전체가 뭐가 되죠? 애굽이 되는 거예요.

약속의 땅에 애굽이라는 것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라고 해버리면
분명히 애굽의 장소는 애굽에 내려갔는데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잖아요.
호세아서나 출애굽은 애굽에서 구출한 사건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의 애굽 피신을 두고 애굽을 약속의 땅을 두고 애굽이라 하면서
애굽에서 애굽으로 부른 거예요. 지리적 상황은.
유대 땅에서 애굽으로 불렀는데 이걸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말씀이 복잡하게 연결이 돼 있느냐? 라고 하면
세상은요. 십자가에 지신 주님을 증거하기 위한 세상이기 때문에 죄들이 다 드러나야 돼요.
어떤 죄들이 드러나느냐? 하면 이게 그래서 유대교가 중요한 거예요.
로마서 오늘 이야기할 때 그게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구약과 이 마지막 시대에 나타난 남은 자를 모르게 되면 이
말도 어렵지만 어쨌든 우리는 죄인이니까 모르게 되면
십자가의 피를 믿는 자들이 남은 자 유대인의 사고 방식을 한다라는 거예요.

종말 때가 되면 원래 지리적 애굽이 애굽이었는데
그게 출애굽기 속에서는 이스라엘 몸덩어리 속에서 애굽적 속성이 다 드러났죠.
나중에는 약속의 땅이 애굽화되어서 황폐화되어서 돌아갔잖아요.
이거 몇 번 그칩니까?

포로로 잡혀가서 안식을 회복하잖아요.
그러면 돌아오잖아요. 그러면 이 땅이 약속의 땅이 되어야 되고
이들이 지금 남은 자들이 거주하는 땅이라면 약속의 땅이 되어야 되는데
이 종말 때 남은 자들이 거주하는 이 땅이 애굽이 된 거예요.
누구를 죽이려고 하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헤롯 왕이 에돔 사람이니까 그 로마 황제의 그걸 받아가 분봉왕으로 책정을 입었으니까
그거하고는 다르죠.
다른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때를 위해서 로마 제국을 세우시고
하필 이때에 분봉왕 헤롯을 세우신 거예요. 헤롯 왕을 세운 겁니다.

그럼 이 헤롯왕은 약속의 땅인 유대의 왕이에요.
이런 것들이 왜 어려우냐? 하면
우리는 약속의 땅에 유대인의 왕이라면 정통성을 입어가지고 다윗의 후계자로서의 왕이
유대 땅의 왕이어야 되지 않습니까? 라고 생각을 하는데,
주님은 일을 하실 때 인간의 죄성을 죄 덩어리를 그대로 집어넣어가지고
다윗의 후손으로서는 아니지만
왕이라는 명명을 이어온 그 유대인 땅의 왕으로서의 헤롯왕을 인정하는 겁니다.

그 왕에 의해서 살해를 당하는 그 위기에 처하자 빼돌리는데, 그 땅이 바로 애굽 땅이라는 거예요.
이걸 오해하지 말아야 되는 게 헤롯이 다스렸으니까 애굽이지 않습니까? 가 아니고요.
헤롯왕이 안 다스려도 헤롯 대신에 누가 십자가에 못 박는 주도권을 행사합니까?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
마찬가지예요. 한 편입니다. 한 통속이에요.

이들 모두는 누구에게 관심이 있냐? 하면
하나님이 약속한 이스라엘, 그 아들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아들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자기에게 관심이 있어요.
같은 단어잖아요. 같은 단어니까 이게 듣는 사람도 미치는 거예요.

같은 단어잖아요.
근데 하나님은 진짜 아들이 누굽니까? 도망다니는 아들이에요. 도망다니는.
누구로부터? 남은 자에 의해서 도망다니는 자가 아들이고
그 남은 자에서 살해당한 자가 진짜 성전이 되시고 피난처가 되신다라는 겁니다.

그러니 블레셋이 멸망당하고 그 이스라엘이 성경적으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한국 사람이 신이 나잖아요.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장악해가지고 감람산에 주님이 오게 하자’ 그거 믿는 사람 있거든요.
그거 아마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게 가장 악마적이거든요. 교회 사람들 많아요. 지금 ‘백투더 예루살렘’ 해가지고.

왜 그런 생각을 갖느냐? 하면
자기 몸이 지금 어떤 몸인지 파악이 안 되는 겁니다.
성도라면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기가 십자가 앞에서 죄인으로 드러나요.
물리적 상황이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 몸 안에서 작동을 해요.

작동을 하면 성도는 누구를 자꾸 제거하려고 하는가? 하면
내가 십자가 지신 주님을 제거하려고 해요.
그래서 성도는 십자가만 밝히 보이는 겁니다.
예수님을 제거하는 요소들을 성경에서 다 깔아놨잖아요.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오전에도 설교했지만,
사도바울이 그렇게 십자가 복음을 전했는데 자기가 뭐예요?
십자가의 원수로 드러나는 겁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드러나지 않으면요. 십자가만 자랑한다는 말을 못하게 돼 있어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믿고 붙들고 있기에 애굽이 되어버린 남은 자 유대인을 봅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말씀을 믿고 붙드는 자들이 아니라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죄인으로 드러나는 십자가만 자랑하는 주의 백성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