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6-30 13:39
20240630 이사야 52강 사 17:1-11 심판 그리고 남은 자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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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7-0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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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이사야 강해 52강 사 17:1-11 심판 그리고 남은 자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이 시간도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복음의 비밀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 말씀, 이사야 17장 1절에서 11절까지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사17:1~11)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백성이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 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 살찐 몸이 파리하리니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그러나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이 삼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사 오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며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이는 네가 자기의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자기의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식물을 심으며 이방의 가지도 이종하고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로 두르고 아침에 너의 씨로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아멘)

다메섹에 대한 멸망과 그리고 에브라임에 대한 멸망을 함께 말씀합니다.
야곱의 멸망이죠.
야곱의 멸망은 유다의 멸망과 같이 엮여 있습니다.
다메섹이라는 지역은 아람의 수도라 볼 수 있고요.
이 당시에 이집트와 유브라데스 강 그 사이의 무역로라고 보면 됩니다.
나름대로 잘 나가는 지역인데

이곳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을 당하게 되는데 그 성읍들이 무너지는데
그 무너진 정도가 어느 정도냐라고 하면
양들이 들양이 되는데 양들이 누워 있더라도 놀랠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심판이 엄중하게 일어난다라는 거예요.

‘뭐 그럴 수도 있죠. 역사적으로 보면 나라가 흥하고 쇠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 이사야에 나오는 이스라엘 주변에 10개 나라입니다.
10개 정도의 나라가 이렇게 심판을 받는 것은 이스라엘과 엮여 있어요.
나중에 최종적으로는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가 되거든요.
복음이 전파되는 것과 이 전 세계의 심판이 같이 엮여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다른 나라도 만들어졌다가 망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이 아람만 그렇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해요.
‘성경이라는 것은 특별하지 않지 않느냐? 다른 세상에도 똑같이 멸망하고 또 이렇게 흥왕하다가 또 멸망하는 게 있지 않느냐?’ 맞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일을 꼭 그렇게 해요.

뭔가 특별하게 하면 좋은데 특별하지 않게 일을 한다는 게 문제예요.
십자가 사건도 당시에 수많은 사람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거든요. 나무에 달려서.
또 희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십자가라는 것은 우상이고 어쩌고 이런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쨌든 이 십자가 모형이든지 기둥이 되었든지 간에
그 수많은 처형자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이거든요.

율법의 완성자가 되시면 뭔가 특별한 죽음을 갖고 얘기를 하면 좋은데,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그 죽음을 갖고 “율법의 완성이라.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그러니 인간들이 갖고 있는 그 생각들 있잖아요. 주님이 다 알아요.
알기 때문에 그냥 주님은 일어나는 그 흥망성쇠를 갖고
이 세상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말씀하는 겁니다.

“야곱도 멸망당한다” 이렇게 나오죠.
야곱의 영광,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도 똑같이 심판을 당하는데
물론 이 아람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멸망을 당하는데

그 사17:4절부터 나오는 내용은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 살찐 몸이 파리하리니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은 것 같으리라”
보통 율법에 의하면, 그 추수를 하고 나면 떨어진 이삭은 줍지 말라고 하시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 본문은 어떤 본문이냐? 하면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는
추수한 이후에 떨어진 곡식까지도 싹 주워버리는 그 정도로 철저한 심판이라는 겁니다.

그 예 중의 하나가 이 감람나무 이렇게 이야기하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그러나 오히려 주을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이 삼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에 가장 먼 가지에 사 오개가 남음 같으리라”
오늘날로 한국어로 말하면 까치밥,
까치밥도 서너 개 정도가 아니거든요. 까치밥 서너 개 안 남겨놓습니다. 그 이상이죠.
집에 감나무가 있으면 그 까치밥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죠?
겨울 내내 따먹을 수 있는 정도의 까치밥인데
지금 이 야곱에 대한 심판이 그 정도로 엄중하다라는 거예요.
엄중한데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가 있을 것이라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7절에 보면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며”
심판 날에는 하나님을 쳐다본다라는 거예요.
근데 이게 과연 쳐다보느냐? 이 문제거든요.

사람은 죽어야 정신을 차리지 죽을 때까지도 정신 안 차립니다. 죽어봤자...
사실은 죽어도 정신 못 차리죠.
부자를 보면 죽었는데, 지옥에 갔는데, 음부에 갔는데도 정신을 차린 게 뭐예요?
철저하게 육적이죠.

정신을 차린 게 지옥 가보니까
‘야~ 세상에 살고 있는 저 내 형제들은 어떡하지?’ 그 걱정하고 앉았어요. 그게 육이에요.
주님의 말씀은 성령을 받을 때 주님과 함께 죽을 때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물론 실질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 임할 때는 아세라상이나 태양상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만,

(사17:9절)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의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같이 황폐하리니 이는 네가 자기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자기의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는 까닭이라”
그래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면 심판을 받은 이후에 남은 자들이 있다면 이 남은 자들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요?
여호와를 잊을까요? 잊지 않을까요?
이게 중요합니다. 잊지 않습니다.
잊지 않는 자들이 예수님 당시에, 종말 때 등장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에요.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 감람나무를 흔들었는데 열매가 서너 개 남았다 했잖아요.
그들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들은 여호와를 잊을까요? 안 잊을까요? 안 잊어요.
안 잊는 그들이 누구를 죽이느냐? 하면
예수님을 살해해버립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요.

이사야는 지금도 정통 유대인들이 달달 외우거든요.
왜냐하면 이사야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사야가 자기들을 위해서 예언한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사야가 예언한 천국, 메시야 왕국도 자기들을 위해서 예언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들이 남은 자니까 이 남은 자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 하면
예수님을 죽이죠.
그러면 진짜 남은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님이에요.

우리는 여기에 보면 “남은 자는 있을 것이다. 여호와를 볼 것이다”라고 하니까
그러면 이들은,
남겨지지 않는 그들은 심판을 받아서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잖아요. 황폐케 되었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남은 자들은 어떨 것이냐? 라는 거예요.
이것이 왜 중요하냐? 하면
예수님을 살해한 남은 자들이 생각하는 남은 자들의 삶과
진짜 남은 자 되신, 예수님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 만드신 남은 자의 삶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이 약속을 붙들고 믿고 남은 자들은
‘주님께서 남겼기 때문에 이제는 황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치 영광스러운 꿈의 나라죠.
내가 꿈꾸는 나라, 그러한 천국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살해한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홀로 진짜 남은 자가 되시잖아요.
이 단수가 복수로 바뀌는데, 서너 개라고 했는데 4개 3개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이 3개 4개가 한 사람을 죽이고
죽임당한 그분이 3개 4개 이스라엘을 만드시는데
이 예수님이 남은 자로서 이 땅에서 제거당해요.
그 제거당한 모습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저주받은 모습으로 제거당해요.
그 저주 당한 분이 주라는 겁니다.

말씀이 굉장히 복잡하잖아요. ‘왜 이리 복잡합니까?’
오전에도 얘기했지만 복잡한 이유는 우리의 죄가 그만큼 깊다라는 거예요.
우리가 복잡하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선악과를 먹은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죄를 다 끄집어내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러한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말씀을 주시니까 이 남았다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그 이전의 자들은 황폐화됐기 때문에 자기들은 황폐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는데,
진짜 남은 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버리니까 어느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조치하는 방식은 어떤 방식이에요?
제자들도 안 쳐다 봤거든요.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걸음아 날 살려라 숨었지 안 쳐다봤어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이?
찾아가시잖아요. 다시. 그 방식을 취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찾은 바 된 자들이 이 말씀에 나오는 남은 자들이 되는데
그 남은 자들의 인생은 종쳤습니다.
성령을 받게 되니까 그 인생이 자기의 인생이 아니라, 나의 인생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주되심을 증거하는 인생으로 종친 거예요.
이 세상에 사는 어떤 인간도 자기를 위해 살기를 원하지,
자신을 위해 대신 죽은 분을 위해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말이야 좋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은 다시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대신 죽은 자를 위해 살게 하려 하심이라” 기분 되게 좋잖아요.
그런데 그 머릿속에 기분 좋은 이유가 뭐냐? 하면
죽은 자를 위해, 대신 죽은 자를 위해 살면 나에게 무엇인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떨어지는 게 없어요. 그게 남은 자입니다.
이것이 남은 자와 남은 자의 충돌에 의해서 만들어진 남은 자의 모습이에요.
그러니 너무나 다르다라는 거예요.

이 말씀을 믿고 ‘남은 자’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남은 자’와 진짜 남은 자 되신 분.
남은 자에 의해서 제거당한 분에 의해서, 진짜 남은 자에 의해서, 그 죽음으로 인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남은 자들은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를 자랑하는,
다시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대신 죽은 분을 위해 사는 인생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그게 축복받은 성도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믿고 약속을 믿었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이 땅에서 제거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죄인의 모습을 주께서 긍휼히 여기시사 십자가의 피로 남은 자들로 만드셔서
주님의 십자가의 피만을 자랑하며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