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9-13 09:46
20230912 민수기 강해 133강 민 29:35-40 여덟번째 날(명절 끝날 곧 큰 날)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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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09-1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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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민수기 강해 133강 여덟째 날 (명절 끝날 곧 큰 날)

하나님 말씀, 민수기 29장 35절에서 40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민29:35~40)
“여덟째 날에는 거룩한 대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번제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리되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일곱을 드릴 것이며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찌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너희가 이 절기를 당하거든 여호와께 이같이 드릴찌니 이는 너희 서원제나 낙헌제 외에 번제, 소제, 전제, 화목제를 드릴 것이니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로 명하신 모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니라”

초막절은 칠 일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일곱 번째 날 일곱 마리의 수양, 그것으로 초막절은 끝이 나고요.
끝이 났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덟 번째 날이라” 이렇게 말씀할 이유가 없는 것 같잖아요.

분명히 앞서서 칠일 동안 여호와 앞의 절기를 지키라 했거든요.
그러면 팔일째는 어떤 의미를 담느냐? 라고 하면
유월절부터 시작한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를 담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여기의 말씀을 보면 “수장절을 지키라” 이것이 바로 초막절인데요.
“이는 니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이라고 표현을 해요. 해의 끝에.

그런데 여러분 잘 계산해 보세요.
유월절이 첫째 달이죠. 그런데 일곱째 달이 해의 끝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이 절기는 예언적 의미를 담고 있는 거죠.
인간들의 상식으로는 12월달이 돼야 되잖아요. 12번째 달.

일곱번째 달이 해의 끝이고요.
그것을 거두어서 저장하기 때문에 수장절이라, 수확절이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고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성소가 있는 곳에 와서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배우게 되어 있고요.

그리고 나머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의 처소에서 초막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어떤 자였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함을 받은 자들이었기 때문에,
나그네 같은, 고아와 같은, 과부와 같은 자였기 때문에 그러한 어떤 사건을 현재화시키는 거죠.
지금도 그들은 고아요 과부요 나그네라는 겁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아니면 희생 제물이 필요 없어요.
예수님께서도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않는다”라고 약속을 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셨거든요.
성령이 오셨다라는 것은 고아가 고정이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죠.
주님을 만난 자들은 끝까지 죄인으로서 주님과 만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희생만을 자랑하기 때문에 그래요.
주님의 증인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초막절이 칠 일 만에 끝이 났는데
팔일째 이 안식일은 대성회는 어떤 의미를 갖느냐라는 겁니다.
이때 드리는 제물은 나팔절이나 아니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속죄일날 드리는 제물의 수와 같습니다.
이 자체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답을 찾을 수가 없어요.

어제 살펴보았던 요한복음 7장을 다시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유대인이죠.
유대인이라고 하면 선지자들에 의해서 말씀되어진 남은 자들입니다.
그 남은 자들이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초막절을 지키고 있어요.

앞서 출애굽기 23장 16절에서 우리들이 살펴보았듯이 해의 끝이죠.
추수한 것을 다 거두어서 비록 초막에 살지만 초막에 칠 일 동안 거하지만
이 초막생활이야말로 어떠하다는 겁니까?
초막생활이야말로 행복한 거 아닌가요? 그러한 시절을 꿈꾸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7장 거기에 보면 유대인들이 초막절을 지키고 있는데 37절에 보면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도 요한이 성령을 통해서 여덟 번째 날을 재해석하는 겁니다.
물론 초막절이 끝나고 여덟번째 날을 ‘명절 끝날’이라 이렇게 유대인들이 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이 “명절 끝날 곧 큰날에”라고 표현함으로 말미암아
이 한 날이 마지막으로 드리는, 지켜야 하는 그 절기죠.
그 절기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갑자기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우리는 워낙 많이 들어서 그냥 그러려니 이렇게 생각을 하죠.
그러나 지금 초막절이고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가? 하면 성전에 계십니다.
초막절날 첫날부터 칠일 동안 제사장들이 실로암 연못가에 가서 금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아
갖고 와서 매일 제사를 드리죠.

우리가 민수기 29장에 보면 매일 제사를 드리잖아요.
매일 제사를 드릴 때 마지막 전제를 붓거든요. 술을 부어요.
술을 부을 때 그들이 실로암 연못가에서 떠온 그 물을 같이 그곳에 붓는 겁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아요. 역사적 자료에 그러한 것들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성경에 없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지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 말씀이 그냥 나온 말씀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이 초막절을 지킬 때 읽는 성경 구절이 있어요.
에스겔 47장 1절에서 12절 말씀, 여기에는 어떤 내용이 나옵니까?
성전 동문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강을 이루고 바다에까지 미치게 되어서 그 주변이 다 소성하게 되죠.
어부들이 많은 고기를 잡는 그러한 상태가 되지만
개펄과 진펄은 생명이 살지 못하는 곳이 되는 겁니다.
그 내용이 에스겔 47장 1절에서 12절에 나오고요.

스가랴 14장 8절을 한번 볼까요? (스가랴, 말라기 전입니다.) 스가랴 14장 8절을 보면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이 두 말씀을 이 초막절을 지키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읽고, 오늘날로 말하면 낭독을 하는 겁니다.
왜 이것을 읽느냐? 라고 하면 물을 부으면서 성전 동문에서 물이 흘러나온다라고 했잖아요.
제단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겁니다. 그러한 시절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거예요.

이사야 12장 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 물이라고 하면 여러분들 출애굽기가 떠오르고 민수기가 떠오르죠.
출애굽기 17장에는 맛사, 그리고 민수기 20장에는 므리바 물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서 성전 동문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라고 할 때
그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지점이 성소인 것은 분명한데, 예루살렘인 것은 분명한데
맛사를 떠올리고 므리바를 떠올린다면 그 현장은 어떤 현장이 되어야 됩니까?
여호와를 대적하는 현장,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거룩을 드러내지 않는 현장,
그 예루살렘에서 누가 죽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겁니다.

이들은 초막절을 첫날로부터 칠일째, 일곱째 날까지 지키면서
어떤 경우에는 일곱 번째 날에는 일곱 번 물을 부었다. 뭐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건 그렇다 저렇다 이거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서 그들이 이사야 12장 3절에 나오는 이 말씀과 에스겔 47장 말씀과
그리고 스가랴 14장 8절에 나오는 이 말씀을 고대하고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육에 속했기 때문에 그들은 알 길이 없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알아도 못 알아들어요.
왜냐하면 자신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는 인간이 되든지 아니면
예수님을 믿어버리기 때문에 그래요.
십자가를 자랑해야 되는데 자신의 믿음이 나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제가 어제 말씀을 드릴 때는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신다고 했죠.
그러면 여기에서는 예수님께서 제물 되신 그분이 무엇을 주시는 분이냐?
생수를 주시는데, 생수의 강이 어디에서 나온답니까?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죠.
이 몸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표현이 참 독특합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이제 사도 요한이 해석을 하는 거죠.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을 받지 않는 자들은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는 거예요.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의미를 육적으로 해석을 한다는 겁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기도원에 가서 성령 춤을 추면서
제가 볼 때는 성령 춤이 흰옷 입고 추는 게 뽕짝 춤하고 똑같은데
제가 여기에 그 산보 하러 가는 동산에 올라가면 70 정도 연세 드신 키가 한 185 되시는 그분이
뽕짝을 틀어놓고 한 3시간씩 춤을 추는데 그거와 다르지 않은데

그들이 생각하는 성령은 이런 거죠.
내가 기쁘고 내가 좋고 내가 행복하고 병 고치는 능력이 있다든가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말에 굴복하는, 그러한 것들을 상상을 하죠.
그러한 것들을 두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고 있죠.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영광을 받는 지점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영광을 받으셔야만, 십자가에서 다 이루셔야만 심판주가 되셔서
심판주 되신 그분이 자신의 영을, 성령을 자신의 백성들에게 보내주게 된다라는 사실이에요.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은 어떤 태도를 갖느냐? 그 뒤에 보면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이들의 공통점은 선지자라고 하고 그리스도라고 해도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가 다 판단자라는 사실입니다.
생수의 강이 그 배에서 흘러나오면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태도가 되죠.
사도바울식으로 표현하면 죄인 중에 괴수가 되지
자신들이 ‘저분이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고 행하시는 기적을 보니까 그리스도다 선지자다’
이렇게 판단할 입장이 안 돼요.

이사야 선지자처럼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라는 고백이 나오든지
왜냐하면 그들 눈앞에 선 분이 주와 그리스도잖아요.
사도행전에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충격적이잖아요. 주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겁니다.

여기에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셨다”라는 표현을 하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광은 어떤 영광입니까? 십자가의 영광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이죠.
말이야 맞는 것 같은데 왜 십자가의 영광이냐? 라고 하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잖아요.
그 다 이루셨다라는 것이 부활하신 심판주로서 등장을 하죠.
하나님 우편에 오르시잖아요.

그분이 놀랍게도 그 영광스러움을 자기 백성에게 주시잖아요.
성령을 주실 때,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나 성도들은 뭘 자랑합니까? 십자가를 자랑하죠.
왜냐하면 생명이 십자가에서 나오고, 아들이 십자가에서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은 이 말을 못 알아듣죠.
계속해서 부활에 초점을 두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앞서 제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라고 하잖아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려면, 생수가 나오려면 나는 어떤 자가 돼야 되죠?
생수를 먹고 날마다 살아나는 자가 돼야 되잖아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 했잖아요.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고 했잖아요.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려면
나는 끊이지 않고 죽은 자가 되어야 되고 죄인 중에 괴수로 드러나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 그 성도는 뭘 자랑하겠어요? 생수를 자랑할 거 아닙니까? 십자가를 자랑할 거 아니에요.
사람들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라고 하니 무엇을 자랑해요?
자기 예수 믿고 이렇게 변화된 것, 부자 된 것, 건강하게 사는 것, 건강하게 살아도 90 넘어보세요.
100세 넘어 보세요. 그게 사는 겁니까?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성도는 100세가 넘어도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항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뭐 곧 죽겠네 하지만
정말 십자가의 죽음 안에서 살기 때문에 산 자로, 날마다 살려지는 자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민수기 29장에 나오는 이 초막절 끝,
이스라엘 자손들은 유대인들은 초막절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직도 짐승의 지배를 받고 있잖아요.
메시야가 오시면 제대로 된 아름다운 강산을 이루게 되고 맥추절도 제대로 지내고
이 마지막 초막절을 끝내주게 지낼 것이라는 거죠.

스가랴 14장 16절이나 18절에 보면
“초막절을 지켜야 되고 초막절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은 심판을 당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이걸 갖고 어떤 집단에서는 초막절을 지켜야 된다라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지금 초막절을 완성을 하셨거든요.
완성을 해버리니까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겁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지 않는 자는 주님이 주신 성령을 받지 못한 자예요.
이 말씀의 완성 속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행위를 통하여서 지킴으로 말미암아 이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성령을 주셨기에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날마다 흘러나오게 하셔서
날마다 죽은 자인데 이 죽은 자를 십자가의 피 능력으로 살리는,
그 살리는 현장으로 저희 몸을 다루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십자가의 피만을 자랑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