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9-15 23:30
20230915 민수기 강해 134강 민 30:1-16 서원과 남편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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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09-16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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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5 민수기 강해 134강 서원과 남편

하나님 말씀, 민수기 30장 1절에서 16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민30:1~16)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두령들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비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제어하려 한 일이 있다 하자 그 아비가 그의 서원이나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아비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던 서약이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경솔히 그 입에서 발하였다 하자 그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고 경솔히 입술에서 발한 서약이 무효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 과부나 이혼당한 여자의 서원이나 무릇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은 지킬 것이니라 부녀가 혹시 그 남편의 집에 있어 서원을 하였다든지 마음을 제어하려고 서약을 하였다 하자 그 남편이 그것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고 금함이 없으면 그 서원은 무릇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은 무릇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무효케 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던 일에 대하여 입술에서 낸 것을 무엇이든지 이루지 못하나니 그 남편이 그것을 무효케 하였은즉 여호와께서 그 부녀를 사하시느니라 무릇 서원과 무릇 마음을 괴롭게 하려는 서약은 그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케도 할 수 있나니 그 남편이 일향 말이 없으면 아내의 서원과 스스로 제어하려는 일을 지키게 하는 것이니 이는 그가 그것을 들을 때에 그 아내에게 아무 말도 아니하였으므로 지키게 됨이니라 그러나 그 남편이 들은지 얼마 후에 그것을 무효케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니라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율례니 남편이 아내에게, 아비가 자기 집에 있는 유년 여자에게 대한 것이니라”

28장, 29장에서는 제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제를 드려라”
그리고 30장에 와서는 갑자기 서원에 대한 말씀을 합니다.
서원을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께 내가 무엇을 드리겠다’라는 서원이 있고, 적극적이죠.
예를 들면 입다가 여호와께서 이 전쟁에서 승리케 하신다면
가장 먼저 나를 마중 나오는 자를 번제로 드리겠다라는 방식의 서원이 있고,
한나의 서원도 있죠. 마찬가지고.

또 다른 하나의 서원은 소극적인 서원입니다.
‘내가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하겠다’라는 소원 같은 것.
‘1시간 동안 말하지 않겠다’라는 서원, 이런 서원들이 있고

그리고 이 서원들은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되면
우리가 보기에는 서원을 할 때 굉장히 진중하게 서원을 할 것 같잖아요.
성경에 보면 그러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경솔한 서원, 자기 입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서원,
하나님이 이렇게 해주신다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러한 서원들이 있는 겁니다.

지금 이 서원들이 무엇과 관련돼 있느냐? 라고 하면
29장 39절에 보면 서원제라는 게 나오죠.
서원제라고 하면 우리들이 잘 아는 민수기 6장에
“남자나 여자나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 이 서원이 나오죠. 제사를 드리잖아요.
나실인의 머리카락을 화목제물에 태워드리는 그러한 서원제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30장은 28장, 29장과 관련 없는 장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장으로 봐야 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28장, 29장에서 말씀하시는 화제가 엄청나게 중요하고,
30장에 넘어오면 서원과 관련된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실상은 이 서원이라는 것이 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실질 생활하는 가운데서
각자의 서원을 통하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관련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경솔한 서원들이 막 쏟아져 나온다라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 서원을 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우리들이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구약을 볼 때는 어떻게 봐야 되느냐? 라고 하면
십자가 안에서 보게 되죠.
그러면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진다라는 것은
죄를 더욱더 죄로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겁니다.

서원에 대한 율법을 주셨다라는 것은 인간들이 서원과 관련되어서 죄인이 되어지고
이 서원을 통하여서 결국은 누구를 살해하게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하는 그러한 지경에 이른다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목사들이나 교인들이 이 30장 말씀을 읽으면
‘서원을 했을 경우에는 지켜야 한다’그렇게 해석을 하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뭐냐? 라고 하면 성령을 못 받았죠.
성령을 못 받았으니까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들을 제거하려고 하는 겁니다.
거기에 자기의 행위를 집어넣으려고 하죠.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서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두령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겁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거든” 두 가지죠.
사람이라는 것은 남자입니다.
남자가 서원을 하였을 때 혹은 서원을 했다는 것은 적극적인 서원이고,
두 번째로는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이것은 소극적인 서원인데
그렇게 하였을 때는“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참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서원이라는 게 입에서 나오거든요.
성경에도 나오지만 예상치 못한 서원이 나올 수 있거든요.
입다가 서원을 했잖아요.
자기 딸이 마중을 나오니까 물릴 수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못 물리죠.

그래서 지금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서약을, 서원을 하였다면 반드시 지켜야 된다라는 말씀을 갖고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남자, 그리고 남편, 아버지를 중심으로 말씀하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교회는 신부가 되죠. 성도들은 신부가 되는 겁니다.
누가 책임을 지고 희생물이 되느냐? 라는 겁니다.

3절 보겠습니다.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비 집에 있을 때에”
3절에서 5절은 아직 시집을 가지 않고 어려서 아버지 집에 있을 때, 지금 여기 엄마는 없어요.
그러니까 아버지 집에 있을 때 이 아이가, 그 여자아이가 서원을 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마음을 제어하겠다고 맹세를 할 경우에 아버지가 그것을 듣고 허락을 하면
아무 말이 없으면, 반대하지 않으면 그 서원을 행해야 된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가 만일에 허락치 않으면 그 서약이 이루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상당히 독특하죠
왜 아버지께 귀속이 되느냐? 나중에는 이 딸이 남편을 맞이하는 내용이 뒤에 나오거든요.

5절 끝에 보면 “허락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이 사하신다는 말을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서원한 것에 대해서 무효로 돌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미 인간의 입에서 한번 발설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용서한다라는 거예요.

그럼 이 용서가 공짜로 되는 용서는 없어요.
반드시 속죄물이 있어야 되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지금 여기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뒤에 보게 되면 이 아버지가 그 책임을 지는 거예요.
희생물이 된다라는 겁니다.
 
한번 볼까요? 6절에 보면
6절부터 8절은 결혼한 여자가 아니라 이 정혼을 했는데 결혼할 때까지
이 남편을 맞이할 때 서원이나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경솔히 그 입에서 발하였을 때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행하고
만일에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듣는 날입니다. 반드시 들어야 돼요.
없을 때 하면 자기가 지키겠다 덤비는데
남편 될 사람이 듣는 순간 허락지 않으면 그 소원은 무효가 돼요. 무효가.

요즘 같은 경우에 이렇게 말씀을 하면 여자들이 대들겠죠. 그죠?
왜 대드느냐라고 하면 뭘 모르기 때문이냐? 하면요 하나님의 희생을 몰라서 그래요.
살고 싶어 미쳤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남편을 통하여서 남편을 희생물로서 보여주는 그
림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하는 거예요. 아버지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일 년에 세 차례 무교절 유월절, 칠칠절, 장막절에 여호와께 와서,
아버지가 오는 거예요. 남자들이 와서 율법을 배우고 집에 가서 가르치는 거죠.

8절 끝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
또 사한다라는 말씀이 나오고 용서한다라는 말씀. 그다음 9절은
“과부나 이혼당한 여자의 서원이나 무릇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은 지킬 것이니라”
여기에서도 남편이라는 중심이 있어요.
남편이 죽었거나 남편에 의해서 이혼을 당했을 경우에는
이러한 과부나 이혼당한 여자의 서원이나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은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고리를 걸어놓았죠. 남편이라는 고리. 있다가 없는 그 남편.

10절부터 12절에는, 이제 결혼했을 때, 결혼한 이후에 여자가 남편의 집에 있어 서원했을 때
앞서서 결혼하기 전에 정혼한 남자와의 경우와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가만히 있거나 가만히 있으면 서원을 지켜야 되지만 서운한 것을 행해야 되지만
남편이 허락지 않으면 무효케 되어 여호와께서 이 여인을 용서하신다.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이제 전체적으로 말합니다.
“무릇 서원과 무릇 마음을 괴롭게 하려는 서약은 그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케도 할 수 있나니”
서원도 내 마음대로 못하느냐? 이렇게 덤벼들 건데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 이 모든 것들이 장차 오실, 이미 오셨죠.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이루실 그 세계를 보여주는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겁니다.

주님의 나라에서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고 부모 자녀 관계가 없어요.
없다고 하니까 필요 없다 이래 들어가는데, 그 없음을 드러내려면 반드시 있어야 돼요.
그래야만 십자가를 증거거든요.
인간들은 없다고 하니까 없애버리려고 하죠.
그러니 자기가 의인이 되는 겁니다.

남편이 허락을 하면 지키고 그리고 그다음 나오는 게 15절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이 들은지 얼마 후에 그것을 무효케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니라”
서원하고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죄를 남편이 담당하는 거예요.
아내가 서원을 해버리니까 남편 쪽에서는 불편할 거 아니에요.

‘자, 나는 오로지 삼일동안 기도만 하겠다. 밥하지 않겠다’라고 서원을 했다 칩시다.
그럼 남편이 불편할 거 아니에요. 처음에는 인정을 했다가 웃을 일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지금 경솔하게 하는 서원이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남편 쪽에서 정말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동의를 할 수도 있거든요.
허락을 했는데 하루 지나보니까 너무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만일에 그걸 취소하게 된다면 그 죄악을 이 남편이 담당을 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우리들이 오해하지 말아야 되는 게 서원이라고 하니까
앞서도 얘기했듯이 굉장히 진중하게 뭔가 대단한 것 같지만,
앞서 나왔잖아요. 말씀 속에 여러 차례 언급이 되잖아요.
경솔하게 서운을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럴 경우 많았죠? 서원을 많이 해봤잖아요.
맹세 많이 해봤잖아요. ‘이것만 해주면 이럴 것이다. 이것만 해주면 이럴 것이다.’
그러한 내용들을 이스라엘 백성 속에 담아버리게 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습니까?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어요?

인간들은 성경에 보면 이러한 어떤 서원을 제대로 하는 경우도 없고요.
오히려 이러한 서원으로 인하여서 죄가 드러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든 가운데 이러한 것들을 집어넣게 되면
나중에는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

마태복음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입니다.
이 말씀을 주시고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후
열왕기 시대를 지나고 여호와의 심판을 겪고 남은 자 시대로 돌아가서
예수님 때가 되면 5장 33절입니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이렇게 말씀을 하셨거든요. 방금 그 내용이거든요.

레위기에도 나오지만 민수기에도 나오는 그 내용이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지금 이 말씀의 의미는
너희들이 만일에 맹세를 하려면
맹세할 수 있는 것을 지킬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이 있어야 된다라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분명히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맹세한 것을 지키라고 했죠.
헛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구약의 말씀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상반되는 말씀을, 충돌이 되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다.
이 말씀을 듣는 유대인들은 어떻겠어요?
예수님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예수님을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로밖에 볼 수 없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 본문을 보면서도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래 우리는 맹세하지 말아야지.’ 앞서 성경에 나왔잖아요. 경솔하게 맹세한다고.
그 맹세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솔하게 맹세를 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거예요.

이런 말씀을 보면서 ‘나 맹세하지 않겠다’라고 덤비는 사람이 있고
그 뒤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니까 ‘나는 맹세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옳다 옳다 하고 아니라 아니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는데

왜 그런 생각을 갖느냐? 라고 하면 구원받고 싶어서 그래요.
‘말씀을 지킬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예요.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들이 말씀을 지킬 수 있단 말입니까? 없단 말입니까?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산상 설교를 하면서 ‘이 산상 설교는 율법과 달리 천국 백성의 삶의 도리라’
이렇게 가르치면서 ‘이렇게 살아야 된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서 자기 증거를 하고 계세요.
십자가를 증거하고 계신 겁니다.
이 말씀 앞에, 이 말씀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성도들은 죄인이 되는 거예요.
어느 누구도 이 말씀대로 살 인간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는 겁니다.
그 죽임 당한 것이 어떤 의미로 드러나느냐? 라면 히브리서 6장 13절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셨어요.
그 맹세를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자기 아들을 대속물로 내어주심으로 맹세를 이루신 겁니다.

성도는 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두고 맹세하신 그 맹세를 이루셨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성도는 맹세를 하든, 하지 않든 십자가만 자랑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맹세를 이루신 신랑 되신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도 신랑의 희생만을 증거하기 위한 삶임을 알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구원 속에서 살아가는 자임을 알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신랑이 다 행하신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만을 자랑하며 뽐내며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