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9-19 10:36
20230919 민수가 강해 136강 삿 11:29-33 입다의 서원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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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09-2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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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9 민수기 강해 136강 입다의 서원

하나님 말씀, 사사기 11장 29절에서 36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삿11:29~36)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사사시대는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하는 시대죠.
오늘날과 같은 시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식은 가득 차 있고 철저하게 개인주의화 돼 있는 시대에
자기 소견에 옳은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사사기를 읽어보면 입다에게 와서 어떤 의문이 드느냐? 라고 하면,
이런 자가 과연 이스라엘의 재판관이 될 수 있느냐? 라는 거예요.
사사라는 것은 재판관이라는 뜻이거든요. 구원자라는 의미도 갖고 있지만.

입다는 어떤 인물인가?
11장 1절에 보면 “길르앗 사람이라”
길르앗 사람이라는 것은 므낫세 지파에 속한 겁니다. 그의 어머니는 기생입니다.
이 입다는 조금 자랐을 때 길르앗의 그 본처로부터 낳은 아들들에 의해서 쫓겨납니다.

지금 이 사건부터 만일에 여러분들이 레위기나 출애굽기나 이러한 신명기의 율법을 알고 있다면
약속의 땅에 들어간 그들이 지금 약 300년 정도가 지났거든요.
약속의 땅에 들어간 지 300년 정도가 지났는데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개나 줘버려’ 이런 뜻이에요. 이 시대가.
요즘은 그렇게 말하면 큰일 나겠죠. 개도 유산도 물려받는 그러한 어떤 시대인데.
지금 이 시대가 그러한 시대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는 기생이 있어서는 안 되고요.

그런데 더 하나님의 율법은 아들을 낳았을 경우에, 자녀를 낳았을 경우에
사랑받지 않는 여인의 자녀라고 해서 기업을 물려주지 않는, 미움받는 여인의 아들이 장자일 때
그 장자에게 기업을 물려주지 않는 그러한 것은 하지 말라고
신명기 21장 1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짧은 구절 속에서
이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얼마나 무시하고 멸시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겁니다.
율법을 모르고 사사기를 읽으면 무슨 말인지 그냥 스토리만 아는 거예요.
그러나 율법을 바탕으로 사사를 읽게 되면 이런 사건 하나하나가
이들이 율법에 대해서 철저하게 배반하고 있고 불순종하고 있으며
여호와를 대적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입다가 돕 땅으로 가서 거할 때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왔어요.
성경에 보면 잡류라는 말이 나오면
다윗이 사울왕을 피하여서 도망갈 때 그때 모여든 사람들을 잡류라고 해요.

‘잡류’의 히브리어 단어를 보면 ‘아무 쓸모없는 자들’, 입다와 같은 자들이겠죠.
비록 이들이 율법에 대해서는 불순종하면서 나름대로 또 자기들만의 카르텔이 있잖아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약속의 자손들이고.
거기에 합당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 땅에서는 헛되다라고 여기고
멸시하고 쫓아내버리는 그러한 어떤 자들이 모였어요.

그런 와중에 암몬이 길르앗을 공격해 옵니다. 그 지역을.
그런데 그 길르앗 지역에 장수가 없어요.
그래서 급히 이 입다에게 찾아가서 조건을 내걸고 ‘우리의 장군이 되어서 암몬과 싸워달라.’
이렇게 요청을 합니다.
아마 입다가 잡류들과 거하는 그 과정에서 싸움꾼이었던 모양입니다.

출생을 보나 그의 행실을 보나 과연 이 입다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격 요건이 되나요?
자격 요건이 안 된다라는 것이 방금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도 나오지만
지금 이 길르앗 장로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들의 생존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쫓아낸 입다에게 찾아가서 그에게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요청을 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이런 방식으로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이런 인물을 통해서도 구원하시는가? 라는 거예요.
우리들이 사사기를 읽을 때 꼭 기억해야 되는 것은 이 곳은 약속의 땅이에요.
그리고 이곳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약속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일반적인 요청이고 일반적인 응답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이고요.
그 구원의 방식 속에서 이스라엘의 악함을 드러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에 대해서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보여줍니다.

입다가 그렇게 요청을 하니까 한 번 더 다짐을 받습니다.
내가 만일에 너희들을 암몬의 손에서 구원해 준다면
나를 정말로 너희들의 우두머리, 지도자로 세우겠느냐? 라고 확정을 한 이후에 그러겠다라고 합니다.
이 10절에 볼게요.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반드시 행하리이다”
이 말 자체가 여러분이 제대로 성경을 읽는다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인지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여호와를 제대로 믿는다면 이런 사단이 안 났죠.
그러니 “여호와께서 증인이라”라고 하는 이 말 자체가 믿을 수 없는 말이에요. 사실은.

그런데 입다가 왜 믿느냐? 라고 하면
입다가 생각하는 여호와도 똑같은,
이 길르앗 장로들과 똑같은 사고 방식으로 갖고 있는 하나님인 거예요.

우리가 민수기를 살펴보면서 그 발람과 발락에서 여호와의 이름이 등장을 했잖아요.
등장을 할 때, 여호와가 우상으로도 등장을 하면서
참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도 등장을 한 거예요.
‘이름이 나타난다고 해서 참 여호와다’ 이렇게 못 보는 겁니다.

마찬가지예요.
그럼 이들이 지금 여호와라고 부를 때 과연 이 여호와가 진짜 여호와냐? 라고 하면
사건을 살펴보면 진짜 여호와는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여호와의 뒤에 숨어 있는 거예요.
달리 말하면 이들이 지금 여호와라고 내뱉는 이 여호와는 우상입니다.

왜 우상이냐? 라고 하면 사사기 17장에 가면
똑같은 사건이 아니라 이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 집안이 있는데
미가 엄마가 은 일천 일백을 잃어버렸어요.
그러자 저주를 퍼붓습니다. ‘훔쳐 간 놈 저주받아라.’
누구의 이름으로 저주였을까요? 한번 맞춰보세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한 거예요.

그럴 때 아들이 훔쳐갔다라고 하니까 17장 2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자기 집 안에 자식 하나를 대제사장으로 세우고
그리고 이후에는 떠돌이 레위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잖아요.
대제사장으로 세웠다는 것은 여호와를 믿고 있다라는 이야기예요.

마찬가지예요. 지금 이 입다와 길르앗 장로들이 “여호와가 우리의 증인이다”라고 할 때
이 ‘여호와’라는 의미는 우상 여호와라고 보시면 맞습니다.
왜 그런지를 사건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다음 12절부터 보면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서 말을 하는데,
희한하게도 우리가 앞서 29절부터 읽었잖아요.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아마 성경을 좀 깊이 본 사람들은 여호와의 신이 언제 임했느냐? 라고 하면,
지금 이때 임한 것 같아요. 하면 제가 빨리 읽어볼게요. 12절부터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취한 연고니 이제 그것을 화평히 다시 돌리라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를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지금 민수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모압과 암몬 땅을 피했잖아요. 출애굽 이후에.
피하여서 너희들과 싸우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 과거의 역사를 벌써 약속의 땅에 들어온 지 300년이 지났는데도 완벽하게 꿰뚫고 있어요.
입다라고 하더라도 보통 사람이 아닌 겁니다. 16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이 사자를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컨대 나를 용납하여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 보내었으나 그도 허락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유하였더니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둘러 행하여 모압 땅 동편에서부터 와서 아르논 저편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 경계이므로 그 경내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용납하여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매 이스라엘이 쳐서 그 땅 거민 아모리 사람의 온 땅을 취하되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사람의 온 지경을 취하였었느니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사람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가하냐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향촌들과 아로엘과 그 향촌들과 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지 삼백년이어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나”

지금 이 제가 빨리 읽었지만 어떻습니까? 입다의 내용이, 입다가 말하는 것이.
성경이 줄줄줄줄 나오죠.
우리가 민수기를 계속 보고 있잖아요. 그 내용이 쭉 나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네가 심판하시는 여호와를 대적하겠느냐”
“심판하시는 여호와를 네가 판결하겠느냐” 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같으면 이 내용이 입다가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서 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29절에 읽은 내용을 봅시다.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이스라엘 역사를 꿰뚫었죠.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고 대적들을 물리치셨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입다가 주어의 자리에 누구를 넣었어요? 나를 넣었죠. 나를.
여기에 주목을 해야 돼요.
입다의 관심은 나에게 있는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여호와인데 그 심판하시는 여호와를 이제 드디어 나를 뽑아가지고
나를 이 길르앗 지역에 우두머리로 세울 때가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암몬 자손 너희들은 꿇으라는 거예요.
근데 꿇으라는 말의 의미가 어떤 의미인가? 하면 지금까지 한 얘기가 역사적 사실이죠. 맞죠?
사실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돼요? 입다가.
뒤에 하는 짓을 보면 말씀대로 살지 않거든요.
입다가 이렇게 말한 것은 공갈탄입니다. 아는 이야기를 내뱉은 거예요.

마치 오늘날 교인들이 성경을 줄줄 내뱉죠.
근데 지는 하나도 안 믿어요. 자기는 안 믿으면서 성경만 내뱉는 거예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들은 구석은 있어 가지고 줄줄줄줄 내뱉죠.
그러니 막 옳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옵니다. 나오는데 자살해 버리잖아요.

지금 입다가 그러한 것을 쏟아낸 거예요.
쏟아내고 난 뒤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했습니다.
입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했으면 그다음 입다로부터 나오는 말은 어떤 내용일까요?
한번 대답해 볼까요? 학생, 입다로부터 어떤 말이 나올까요? 여호와의 신이 임했으면.
여호와의 신이 임하면 시험 문제를 100점 만점에 100점을 풀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나가야 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신이 임하니까
입다가 이제 암몬과의 전쟁에 나서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여호와께 서원합니다.
“여호와께서 만일에 암몬 자손에게서 편안히 돌아오게 하시면
누구든지 내 집에서 처음 나온 그 인물이 되든지 동물이 되었든지 번제로 바치겠다”라고 이야기해요.

이게 말이 돼요? 앞서 자기가 읊은 내용은
언약대로 지금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여호와로서 지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셨잖아요.
자기들이 뭘 했어요? 뭘 서원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왔습니까?
그러니 앞서서 말한 모든 내용은 지식에 불과한 거예요.
단지 그는 그러한 내용을 갖고, 역사적 사실을 갖고 저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미리 무릎을 꿇고 자기가 길르앗의 우두머리가 되기를 원한 거예요.

그런데 막상 닥치니까 어떻습니까? 지식이라는 게 소용이 있습니까? 그건 이야기일 뿐이죠.
만일에 이 입다가 압도적으로 암몬 군대에 비해서 강력했다면 서원하겠습니까? 예? 서원하겠어요?
내가 만일에 시험을 준비하는데, 시험에 면접시험을 준비할 때
100점 만점에 100점 맞을 자신만만하다면 기도하겠습니까? 기도 안 하죠.

똑같습니다. 지금 전쟁을 치르려고 하니까 그 앞에 있는 암몬의 군대가 만만치 않은 거예요.
그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입니다.
그때 바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게 ‘경솔한 서원’이라는 거예요.
그게 민수기 30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민수기 강해인데 왜 사사기를 하느냐? ‘서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야 되는 게, 서원이라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있습니까?
부모가 돌아가실 때 유언을 하잖아요.
‘내가 죽거든... 화장하지 말고 꼭 저기에 산에 묻어달라.’
그러면 자식이 뭐라 합니까? 서원하잖아요. 맹세하잖아요. ‘예, 알겠습니다.’
그런 일이 뭐 얼마나 허다합니까? 추석이 되면 다 제사 지내잖아요.
그 제사 왜 지냅니까? ‘내가 죽거든 딱 하나만 내가 부탁한다. 커피나 한잔 올려달라.’
근데 듣는 사람이 커피만 올리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커피 외에 돼지머리 누른 것도 올리고 별별 걸 다 올리잖아요.

이방 나라에도 똑같이 있는 거예요. 서원이라는 게.
그런데 이 약속의 땅에는 이 서원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강한가 하면
‘자기가 자기 집에서 나오는 첫 것을 번제로 드리겠다’라는 이러한 어떤 서원이 그 땅에는요 흔합니다.

신명기 18장 10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땅에 있는 그들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하면서
어떤 일이 그곳에서 벌어지는가? 하면 아들과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한다라는 거예요.
그 우상숭배를 하는데 아들과 딸을 불에 태워 죽이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을 우발적으로 불태워 죽일까요? 아니죠. 서원을 하는 거예요.
당신이, 신이 (여기에 뭐 그모스 신이 나오는데) 그모스 신이 이러한 일을 이루어 주실 거라면
먼저 바치는 거예요. 먼저.

이 입다 같은 경우에는 서원을 먼저 행하고 차후에 받는 거죠. 차후에.
제사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비가 안 오면 기우제를 드릴 때 먼저 드리고 제가 이렇게 정성을 다했습니다.
서원을 드렸으니까 갚았으니까 달라는 거거든요.

입다도 그 동네에, 그 지역의 그 분위기 속에 사는 겁니다.
이것이 무엇과 연결돼 있는가? 하면 율법과 연결돼 있는 거예요.
율법에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라가 나오거든요. 경솔하게 했더라도.

그런데 지금 입다는 그 율법이고 무엇이고 중요한 게 아니에요.
가장 우선순위가 뭐였습니까? 쫓겨났잖아요.
쫓겨나서 완전히 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멸시받는 자리에 있다가
지역의 이 우두머리가 되잖아요. 우두머리가 될 기회가 왔잖아요.
기회가 왔기 때문에 이런 서원을 하는 겁니다.

이런 서원을 했는데 진짜 이 전쟁에서 승리해 버렸어요.
승리를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경솔하게 서원한 것은 기억을 못하거든요. 사람이.
돌아왔는데 집에서 누가 나옵니까? 마중을 누가 나옵니까?
우리 같으면 ‘강아지가 나올 거라’ 생각하겠는데,
강아지 번제 드렸다가는 오늘날 난리 나겠죠.
강아지 묘지도 만들어주고 강아지 제사도 지내주는 이 시대인데

누가 나왔어요? 무남 독녀가 나온 겁니다.
무남 독녀가 무슨 뜻인지 모르죠.
외동딸이라는 겁니다. 무남, 아들은 없고 오직 딸 하나밖에 없다라는 거예요.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그 사랑스러운 딸이 나와서 소고를 치면서 춤을 추면서 아버지를 영접하는 거예요.
아버지를 환영을 하는데 이 모습을 보자,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우리가 이 본문을 보면서 굉장히 뭐라고 할까요? 우파적 사고를 해요.
우파적 사고가 뭔가? 하면 하나님 편에 서서 입다를 하나님 쪽에 있다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사기 때문에 그래요. 전제가.

그런데 이 사사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사사와 달라요.
지금 입다가 마치 하나님께 입을 열었으니까 자기가 지켜야 된다라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렇게도 볼 수도 있습니다. 말씀이라는 게 중첩이 돼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저는 조금 다르게 볼게요.
이런 사고방식을 왜 갖느냐? 라고 하면
그 사사기 17장에서 미가의 엄마가 당장 뭐라 합니까? 저주를 퍼부었다가 당장 뭐라고 얘기해요?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한다’라고 바꾸잖아요.
왜 그렇게 합니까?
자기가 저주 내린 것을 여호와께서 진짜 내린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급속히 바꾸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도 마찬가지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었잖아요.
승리케 해 주었으면 입다의 생각에는
만일에 내가 여호와께 맹세한 것을,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다음 어떻게 될까요? 사태가.
입다의 머릿속에 뭐밖에 없습니까? 지금. 우두머리 되는 것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지키겠다는 거예요. 돌이키지 못한다는 이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사사시대는 소견에 옳은 대로 하거든요.

근데 이 입다의 딸이 또 대단합니다.
딸이 뭐라고 하는지 볼까요?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갑자기 왜 이렇게 입다의 딸이 암몬 자손이 아버지의 대적이 되나요?
그 이유는 자기가 그 아버지 밑에서 자라왔잖아요.
멸시받고 무시받고 필요 없는 존재로 살았잖아요.

그러니 지금 암몬을 “아버지의 대적”으로 표현을 쓴다는 것은
그것을 확장시키면 이 길르앗 사람들이 아버지의 대적인 겁니다. 그들이 쫓아냈잖아요.
그래서 만일에 아버지가 여호와께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떤 꼴을 당하느냐? 이 얘기예요.

하나님께서 이 딸을 번제로 드리는 걸 받을까요? 안 받죠.
그런데 번제로 드리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다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어요.
놀랍죠? 왜 이렇게 구원을 하시느냐? 하면
우리는 구원을 이야기하면 뭘 생각해요?
뭔가 괜찮은 인물이, 괜찮은 일을 해서 구원을 한다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소견에 옳은 대로, 엉망진창인 그 지역의 가나안 땅,
신명기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그러한 풍습을 그대로 물려받은
이러한 압다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겁니다.

‘서원’이라는 것이 결국은 무엇을 드러냅니까? 입다의 서원에서.
자기의 욕망만, 욕망의 끝자락을 보여주는 서원을 드러내는 겁니다.

이것을 통하여서 장차, 보세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자기 백성을 만드시고 구원하셨어요.
십자가는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가 달리는 십자가에요.
그것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야 그 십자가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해? 그 죽음이 어떻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어떻게 천국으로 인도를 할 수 있어? 그게 어떻게 영생의 길이야?’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모든 주변 사람들의, 믿지 않는 자들의 조롱의 대상이 되요.
우리가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았다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정말 모든 사람들이 부끄럽게 여기고
조롱의 대상으로서 취급을 받은 그 주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구원받은 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식은 우리가 예상치 못하고 조롱하고 비웃는 그러한 방식으로
구원하셨음을 말씀을 통하여 들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능력이 되지만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조롱거리요 비웃음거리며 멀리하고 싶은,
그러한 것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능력이 되는 십자가의 복음만을 자랑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