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1-15 10:47
20231114 민수기 강해 160강 민 36:10-13 믿음과 고난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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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11-1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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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4 민수기 강해 160강 민 36:10-13 믿음과 고난

하나님 말씀, 민수기 36장 10절에서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민36:10~13)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 아비 형제의 아들들에게로 시집가되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가족에게로 시집 간고로 그 기업이 그 아비 가족의 지파에 여전히 있었더라 이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니라”아멘

민수기 27장에서 이 슬로브핫의 딸들이 죽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업을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원래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기업은 반드시 장자, 아버지의 아들을 따라서 기업을 주시게 되어 있어요.
이들의 요청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율법이 추가가 되는 겁니다.

본래 아들 없이 죽어버리면 그 기업은 물려받을 자가 없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슬로브핫의 딸들이 광야에서 죽은,
아들 없이 죽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업을 달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새로운 율법을 주신 거예요.

실상 하나님의 심판을 이들이 고스란히 덮어썼고요.
심판이 있었기 때문에 기업이 없어야 되는데,
새로운 율법을 주셔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기업을 주신 겁니다.

‘율법이 계속해서 더해진다’라는 것은 ‘죄가 더한다’라는 거고,
‘죄가 더 깊어진다’라는 것은 ‘은혜가 그만큼 더 넘친다’라는 거예요.
로마서에 나오는 말씀이 여기에도 똑같이 적용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기업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은 이후에
36장에 일어나는 이러한 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상을 했겠느냐? 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냥 쉽게 읽어버리면 무슨 이게 문제가 있느냐? 라고 할지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시집을 간다라는 것은 자기 뜻대로 가야 되잖아요.
다른 지파에게도 얼마든지 갈 수 있잖아요. 그쪽에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이 하나님의 율법이 또 새롭게 투입이 됩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이 길르앗 자손 가족의 두령들이 자신들의 기업이 줄어들까 하여서,
그렇게 된다면 다른 지파에게는 많은 기업이 돌아갈 것이고 자기들은 빼기가 되죠.
이건 욕망입니다. 욕망.

요청은, 이들의 요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요구입니다.
희년의 원칙을 따르면 당연히 자신들의 기업은 줄어들어야 되고
시집간 그 지파의 기업은 늘어나야 되겠죠. 이걸 원치 않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율법이 주어진 게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업을 받은 딸들은 다른 지파에게 시집을 가지 말라는 율법이 주어집니다.
기업을 주신다라고 할 때는 좋았는데
기업을 주셨으면 내가 마음대로 그 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 기업에 매여서 희생물이 되는 거예요.
어떤 희생물입니까? 자유롭게 시집을 못 가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이미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기업을 받았고
받은 상태에서 그들의 기업이, 슬로브핫의 딸들이 받은 기업이 여전히
이 므낫세 지파에게 속해 있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갑자기 이 여호수아를 뛰어넘어버리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대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말씀을 하시는 거죠.
이미 완료된 상태에서 말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겁니다.

기업을 받는다고 해서 좋아라 생각을 했지만
기업을 받는 자는 어떻게 받았는지를 반드시 보여주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기업을 받을 수 없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긍휼로 기업을 받게 되었잖아요.
그러면 그 기업이, 그대로 하나님으로 심판 가운데 받은 그 기업이,
긍휼로 받은 기업이 자기들 쪽으로 계속 유지가 되려면
그들이 기업을 위하여서 희생물이 되어야 된다라는 겁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이 약속이라는 것이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구원을 주셨죠.
먼저 요한복음 4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4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정말 어려운 말씀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선물을 알았으면 예수님께 구하였을 것이라는 거예요.
생수라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구원이죠.

하나님의 선물이 뭐냐?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선물을 알았으면.
이 에베소서 2장 8절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한번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거예요.
앞서는 구원이라 했잖아요.
우리는 구원과 성령을 별개로 생각을 하는데 성령을 선물로 받았기에 구원을 받은 거예요.
그 구원도 선물이고요. 믿음도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그림자 모형을 통하여서 보여준 그 약속을,
약속은 성령이거든요. 십자가의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그 약속을 성도들에게 주신 거예요.
그걸 선물이라 합니다. 그 선물을 사람들이 갈망을 하잖아요. 갈망을 하는데.

제자들을 보게 되면 그 약속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잖아요.
그런데 그 약속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 혹 그리스도의 영일 줄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우리도 다 선물을 좋아하잖아요. 선물을 받기를 원하잖아요.
근데 선물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선물을 주신 분을 증거하기 위한 선물이 돼요.

성령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셨죠.
“자신에 대해서 증거하신다”라고.
그럼 성령을, 우리를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도 주셔요.
그러면 구원만 주시느냐?

빌립보서 1장 29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번역을 너무 잘해놓은 것 같아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셨다”라는 겁니다.
은혜를 달리 표현하면 선물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예요.
너희를 위한 게 아니에요.
‘너희를 위하여 은혜를 주셨다’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를 주셨는데 그 은혜 속에는 무엇이 들어가 있느냐? 라고 하면
그를 믿는다라는 것,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게 있잖아요.
그 구원을 얻는 것도 은혜고요.

또 한 가지 은혜가 뭔가 하면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는 것도 은혜라는 겁니다.
아니 구원만 해주시면 되지 왜 고난도 받게 하십니까?
아니 기업을 요구해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라는 것을,
고스란히 덮어쓰면서까지도 기업을 받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왜냐하면 아버지 슬로브핫의 이름으로 기업을 갖고 있다라는 것은 광야에서 심판받았다는 거예요.
아들 없이 죽었다라는 거예요.
좀 노골적으로 보면 저주받은 잔데,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은혜받은 자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서 그들을 어디로 몰아가는가? 하면
고난 속으로 집어넣는 겁니다. 희생물이 되게 하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들이 말씀에 순종을 하는데 그 순종의 모습이 희생의 모습이에요.

민수기에서 굉장히 독특한 사건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백성의 숫자, 전쟁하는 군사의 숫자를 세고
거기에 족장들의 이름이 등장을 하는데
그들의 이름을 대미로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슬로브핫의 딸들을 숫자를 세는 마지막에 붙여놨죠.
그리고 민수기 끝에 이들이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기록해 둔 거예요.

성도가 은혜를 받은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거예요.
나를 위한 게 없습니다.
그래서 만일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
성경에 나오죠. 성경에 있는 말은 마귀가 더 잘하잖아요.
‘우리를 위하여 은혜를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선물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축복을 주신다’라고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의 말은 삯꾼이에요.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위함이 아니에요.
그리스도 자신을 위한 죽으심이에요.
그래서 주님께서 심판주가 되셔서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 가운데 선물로 부어주셨는데
그 선물 안을 쪼개 보니까 두 가지 요소가 있는 거예요.
다른 것도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요소도 있지만,
그를 믿는 그 믿음으로 인하여서 고난받는 내용도 들어있는 겁니다.

아니 믿는데 왜 고난 받습니까? 라고 질문을 할 수 있잖아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언약을 다 이루셔서 심판주가 되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선물로 믿음을 주셨는데,
그런데 왜 고난이 옵니까? 라고 물으신다면
그 믿는다는 믿음 안에는 자기 부인이 들어 있어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는데 그 구원은 나의 구원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이 구원받은 성도들은 믿음이라는 선물을 받았잖아요.
선물을 받은 자들은 무엇을 계속해서 앞장세우고 이렇게 더 높이느냐? 하면 십자가를 더 높여요.
이 십자가를 더 높인다라는 것은 세상 전체를 어떻게 보느냐? 라고 하면
십자가의 원수로 보는 겁니다.
무얼 하더라도 죄라는 거예요.
그러면 믿을 구석은 피뿐이라는 거예요.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이라고 그걸 자랑하니까 사람들이 싫어하죠.

사람들은 무얼 좋아합니까?
나를 인정해 주고 인간답게 말해주기를 원하잖아요.
인간답다라는 게 가장 악마적이거든요.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 사단아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셔놓고.
사람의 가장 인간적인 일이 가장 악마적인 일인 거예요.
그것을 사람들은 요청하고 있고 요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기업을 주셨으니까 이제 됐지?’라고 하는 자들에게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미 얻었는데 십자가가 왜 필요해? 부활한 주님을 믿으면 되지.

이 부활한 예수님을 전해보세요. 누가 미워하겠습니까?
모든 인간들이 긍정적인 사고를 원하고 살기를 원하잖아요.
그들에게 십자가 지신 예수님만을 이야기한다면 인상을 찌푸릴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죠.
선물의 내용이 믿는 것과 고난도 받는 거예요.
우리들이 고난 가운데 있다면 크신 선물로, 선물을 받은 줄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가의 증인으로 만들기 위한 십자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천국이 목적이 아니라
천국을 만드신 십자가의 피를 자랑케 하기 위한
믿음이요, 구원이요, 은혜임을 저희들에게 알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기에
주님이 걸어가신 고난의 길을 걸어감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