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1-18 09:39
20231117 신명기 강해 1강 신 1:1 신명기와 그 말씀들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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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11-1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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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신명기 강해 신 1:1 신명기와 그 말씀들

하나님 말씀, 신명기 1장 1절 보겠습니다.

(신1:1)
“이는 모세가 요단 저편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아멘

본래 히브리어 성경 제목은 신명기가 아니고 처음 히브리어 성경을 이렇게 보게 되면
신명기를 시작하는 첫 부분이 “그 말씀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래 제목은 “그 말씀들”인데 이후에 “신명기”라고 이름을 바꾸었죠.

신명기라고 이름을 바꾼 이유가 신명기에 등장을 하는데
말씀을 등사하여 보관하라는 그 말씀을 근거로 하여서 신명기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신명기의 뜻은 ‘거듭 명령한다. 다시 풀어 설명한다.’ 뭐 이렇게도 해석이 되고요.
‘거듭 명령한다’라는 내용이죠.
그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별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거듭 명령한다’라는 의미를 우리 인간들이 갖고 있는 사고 방식으로 이해를 하게 되면
지금 출애굽기 20장 이하 그리고 레위기, 민수기에서
새롭게 등장한 율법들에 대해서 다시 명령하는 내용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신신당부하는 그러한 말씀이다.
그렇게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신명기를 읽고 여호수아를 읽고 사사기로 넘어가면 실망을 하죠.
왜 이 신명기를 “그 말씀들”이라 이렇게 그대로 제목을 두지 않고 신명기라 이렇게 했느냐?라고 하면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거예요.
말씀을 들을 때 율법을 들을 때 한 번은 실패했지만
두 번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겁니다.

제가 성경에 제목을 틀렸다 이렇게 말하고자 하는 뜻이 아니고요.
지금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이 성경을 보는 그 안목이
오늘날 성령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지고 있고
그런 안목으로 성경을 본다는 겁니다.
새롭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을 단단히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
뭐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다 보니 본래 취지와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민수기를 마치기 전에 몇 차례 36장을 말씀을 드렸잖아요.
민수기 36장이 슬로브핫의 딸들의 기업의 문제로 마쳐지는 것이 그냥 기록된 게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 꼼꼼히 살펴봐 왔잖아요.
그럼 창세기는 빼더라도, 출애굽기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출을 받잖아요.
그 장면을 먼저 한번 떠올려봅시다.
유월절과 무교절 율법이 먼저 주어집니다.
율법이 주어지고 율법대로 유월절을 지키죠.
물론 무교절은 지킬 수가 없습니다. 출애굽을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뭔가를 알아차려야 되는데 구약은 갇혀 있잖아요.
눈을 감기게 하셨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셔도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내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 자체를 누구를 위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을 위한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잖아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나타나셨고
그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모세를 통하여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었잖아요.
그러면 천지창조부터 시작하여서 모든 만물, 하나님조차 자기들을 위한 하나님이죠.
그럼 율법조차 유월절이나 무교절 이런 것조차도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출애굽기 15장을 한번 보면 상당히 난해한 본문이 나옵니다.
홍해를 건넌 이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노래를 하고
찬양을 드린 이후에 그곳을 지나 사흘 길을 이렇게 걸어갔을 때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쓴물이 있었던 거죠.
그때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뭇가지 하나를 지시하셔서
그 나무를 던지니까 물이 달아졌어요.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됩니다. 늦어도. 25절인데.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이 쉬워요, 어려워요? 이 말씀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저에게는 오늘까지도 난제였는데.

무엇이 어려우냐? 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시험을 먼저 하셨습니까? 아니면 이미 끝난 상태에서, 물이 없었잖아요. 쓴물이었는데
그들이 원망을 했고 그 물을 단물로 바꿔주셨잖아요.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뭘 주시는가? 하면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셨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뒤에 보면 거기서 시험했다라고 하는데, 법도와 율례를 주셨다는데
도대체 무엇이 법도고 무엇이 율례인지 안 나와요. 나옵니까?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겠다”
계명은 언제 주십니까? 20장 이후에 주시거든요.
그래서 말씀이 어렵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에 또 한 가지는 법도와 율례를 주셨는데 내용은 나오지 않는데
그들을 시험했다 하잖아요.
그러면 이걸 본래는 법도와 율례를 먼저 주시고 물이 없는 사흘 길로 인도하셔서 시험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들이 원망을 한 거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만일에 순서를 뒤바꾸면,
이 말씀이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되는데 순서가 바뀌었어요.
사건이 먼저 있고, 원망하는 사건이 먼저 있고
그다음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셨다라는 거예요.

아마 이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이 본문을 의도적으로 앞뒤를 바꿀 겁니다.
법도와 율례를 먼저 있었고 시험하시는 장면이 이 쓴물, 마라라는 이곳으로 인도하셨다.
근데 만일에 그러하다면 애굽에 내린 질병을 내려야 되잖아요.
근데 안 내렸거든요. 그래서 이 본문이 어렵다라는 거예요.

앞서 제가 유월절과 무교절이 먼저 있고 그다음 유월절을 지키게 되잖아요.
그러면 유월절은 하나님이 주신 법이잖아요.
법이 먼저 있고 그다음 그 법을 위해서 실제로 유월절 사건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 참여하는,
그 일을 제가 말씀드린 거예요.

그러면 율법이 먼저냐? 사건이 먼저냐? 라는 겁니다.
여기서는 뒤바뀌어버렸죠.
사건이 먼저고 그다음 차후에 율법을 주시잖아요.
이건 꼭 무슨 의미인가? 하면 시험 다 끝났어요. 어제 수능 쳤잖아요.
시험 다 끝났는데 시험을 잘 치면, 이미 결과도 나왔잖아요.
시험을 잘 치면, 마치 시험 안 친 듯이 말씀을 하면서,
‘잘 치면 내가 너에게 니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게 해주겠다.’ 이런 식인 거예요. 지금 말씀 자체가

이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 이 본문을 읽으면 납득할 수 없는 본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이 이 본문을 볼 때 의도적으로 바꾸려고 해요. 이해되도록.
이해 안 됩니다. 이 본문은 아무리 해석해도.

그럼 이 말씀대로 주님께서 어떻게 일을 진행시키느냐?
이 말씀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에 이 피스 맞추는 거 있잖아요. 집어넣는 거예요.
지금 이 신명기 말씀이 “그 말씀들”이라라고 할 때
우리가 만일에 출애굽기에서 민수기 이 내용, 그리고 민수가 36장에 나오는 이 내용,
그리고 지금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요단 저편이라 했잖아요. 요단 동편이거든요.

간단하게 말하면 앞 구절에서는 모압 평지에서 말한 건데
굳이 모압 평지라고 말하지 않고
이 동편의 지명들, 사실 이 바란과 하세롯 외에는 다른 지명이 안 나와요.
다 추정밖에 안 돼요. 바란은 민수기 10장에 나오거든요.
민수기 10장은 가데스바네아에서 반역하기 전이에요. 40년 전 지명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그러면 여기에 있는 지명을 이야기할 때 요단 서편이 아니라 요단 동편,
동편 전체를 이야기할 때는 이스라엘 40년 광야 생활을 다 포괄하는 내용이고
그 포괄하는 내용을 민수기 끝부분에서는
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과 모압 평지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이 슬로브핫의 딸들의 기업과 그 처리 방법에 대해서 나오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이 슬로브핫을 이야기하면 27장에서 이들이 율법에 의하면 기업이 돌아가지 않아야 되거든요.
근데 기업을 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업을 주시기 위해서 새로운 법을 주신 겁니다.
새로운 법을 주시니까 36장에 와서는
이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업이 줄어드는 것을 염려하여서
이 새로운 법과 희년의 법이 만남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에게 손해가 된다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요청을 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또 새로운 법을 주셨죠.
그 새로운 법은 자유롭게 시집을 갈 수 있지만 므낫세 지파 안에서만 시집을 가라는 법입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죠.

그러면서 이 민수기 36장 10절에서 12절 말씀을 집어넣은 거예요.
10절 다시 보겠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 아비 형제의 아들들에게로 시집가되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가족에게로 시집 간고로 그 기업이 그 아비 가족의 지파에 여전히 있었더라”
벌써 기업 분배가 끝났어요.
그리고 이들도 시집을 다른 지파에 가지 않았다라는 걸 여기에 집어넣었습니다.

우리가 모세 오경을 이야기할 때 모세가 기록했다라고 다 배웠잖아요.
예수님도 모세의 글이라고 하거든요. 모세의 율법이라 하고.
그러면 이 본문은 모세가 썼습니까? 누가 썼습니까? 모세가 쓸 수가 없죠.
이미 기업을 다 분배받은 이후에 이들이 자기 지파에게 시집을 간 내용을 기록하고 있잖아요. 그죠?

그 성경을 이렇게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본문들이 없었으면 좋은 거예요.
왜냐하면 이런 본문들이 없어버리면 모세의 저작권이라고, 저자라고
저자가 모세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왜 그런 생각을 자꾸 하는가? 하면 인간은 자꾸 성경을 변명하려고 해요.
성경을 인간이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앞서서 제가 미리 언질을 드린 게 유월절이 먼저 있고 유월절을 지키게 돼 있어요.
지금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서가 보세요.
율법이 있고 그 새로운 율법을 달라고 하는 그들에게 새로운 율법을 주시죠.
그럼 새로운 율법을 주신 것은 본래 율법이 없는데,
이게 추가가 된 거냐, 본래 있었느냐? 라는 거예요. 본래 있었던 거예요.

주님께서는 다 알죠.
슬로브핫의 딸들이 이러한 것들을 요청할 줄 다 아는 겁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 라고 하면 여기에 보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슬로브핫의 딸들이 순종을 했다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신명기 1장 1절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하는 이 말씀은
우리 인간들 입장에서는 거듭 명령하는 것이 맞아요.
그런데 모세가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서 기록했기 때문에 이 말씀은 이런 겁니다.
‘거듭 말씀했다’라는 것은
세상 자체가 말씀을 위한 이스라엘이요 말씀을 위한 세상이라는 겁니다.
신명기 끝에 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 잡혀가고
돌아오는 내용이 기록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예요.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면 창세기 1장 1절을 완전히 뒤집어버리죠.
어떻게 뒤집는가? 하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런데 창세기 1장 1절에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렇게 나와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우리들 같으면 ‘태초에 하나님이 계시니라’ 이게 더 좋잖아요.
‘태초에 하나님이 계시니라’

삼위일체에 미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바꾸려고 하거든요.
왜 “말씀이 계시니라” 이렇게 하느냐?
그러면서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참 신기한 게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말씀을 주십니다. 맞죠?

근데 그 말씀대로 누가 오시느냐? 하면 예수님이 오세요.
그렇게 되면 그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시잖아요.
그 예수님이 누가 되느냐? 라고 하면 하나님이 돼요.
어떤 하나님이 되느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심판주가 되시고 창조주도 되시는 거예요.
모든 만물을 만드신 분이 되는 겁니다.

인간들의 순서는 항상 하나님이 먼저 있고 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였다.
이런 순서로 진행이 되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그 하나님 관념은 바로 우상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유대인이었고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는 자만이 영생이 있다”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예수님 자신이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라고 하니까
그러한 예수님을 용납할 수가 없는 겁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위한 세상이에요.
하나님을 위한 세상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다 이루셨다”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그 다 이루심을 위한 말씀이었던 겁니다.

그러면 신명기 말씀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을 위한 말씀이 되어버리면
로마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율법을 주신 이유가
죄 아래, 심판 아래 가두기 위한, 범죄를 더하게 하기 위한 조치로서 주신 거예요.

거듭 명령을 하니까 ‘우리가 지켜야지 애를 써야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듭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애쓰지 않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했다.’
물론 그 말은 맞아요.

근데 거기에서 왜 그러했냐? 라고 하면 눈이 가려졌기 때문에 그래요.
성령을 받게 되면 신명기 말씀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 말씀으로 바뀌어야 되는 겁니다.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한 율법이 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위한,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이스라엘임을
오늘 저희들에게 신명기 말씀을 통하여 들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우리를 말씀 속으로 인도하셔서 주님의 사랑의 깊이를,
우리의 죄의 깊이를 알아가게 하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