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1-22 06:36
20231121 신명기 강해 3강 신 1:5-5 말씀과 나, 나와 말씀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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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11-2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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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1 신명기 강해 3강 신 1:4-5 말씀과 나, 나와 말씀

하나님 말씀, 신명기 1장 4절에서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신1:4~5)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 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바산 왕 옥을 쳐 죽인 후라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신명기를,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한 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아모리의 두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 죽인 후’라고 말씀하고 있죠.
그리고 ‘모세가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더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밝히 알려준다’ 그러한 의미로 들려지는 거예요.

여기에서 우리들은 율법을 밝히 알려주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 역사를 이렇게 언급하면서
율법의 의미가 어떠함을 깨우쳐 준다면 잘 알아듣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생각이죠.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언변이 탁월할 경우에 그 사람의 말에 사람들이 설득 당하겠죠.
요즘 jms에서 돈을 얼마나 썼는지 유튜브에 광고가 엄청 올라오죠.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우리는 차원 다른 말씀을 소유하고 있다’ 라는 거예요.
차원 다른 말씀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면 구원이 있다라는 거거든요.
조잡스럽게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성전이 있고...
인간 자체가 그러한 것들을 원해요. jms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신천지도 마찬가지고.

이 ‘모세가 말씀을 밝히 이렇게 알려준다’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이 신명기를 보면서
‘말씀을 밝히 알려주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에 대해서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갖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그래요.

창세기 2장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들을 지으셨습니다.
본래 말이라는 것은, 언어라는 것은 창조주의 소유예요.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느냐? 16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많은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이 본문을 해석을 할 때
아담이 이 말씀의 의미를 선악으로 알아들었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선언이에요.

만일에 아담이 이 말씀을 알아듣고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 것이니까 조심해야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이미 아담은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된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신학자들이나 목사들, 대부분이죠. 99.99% 순금입니다.
이 말씀을 그렇게 해석을 해요.

그렇게 된다면 마귀가 들어올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선악을 분별하여서 선한 일을 행해야 된다’라는 그러한 마음을 먹었다면
마귀가 개입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이 성경을 읽는 본인이 악마의 종이기 때문에 말씀을 그렇게 읽는 거예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 읽습니까?’라고 하면 간단해요.
“빛이 있으라” 할 때 빛이 선악을 분별했습니까?
바다를 만드시고 공중에 새를 만들었을 때 그들이 분별하고 움직입니까?

물론 말씀은 말씀대로, 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은 아담 속으로 합류하는 거예요.
그 모습이 어디에 나오는가? 하면
여자를 만들어서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까 아담이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남자 여자는 나와 너죠? 나와 너. 맞죠?
결혼식을 하면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는데 나와 너가 결혼을 하거든요.

그런데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는 나와 너가 아니고 여자라 한다라는 것은 하나라는 거예요.
그 말씀이 뒤에 나오거든요.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는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는 나가 없어요.
내가 주도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으니까 생육해야지 번성해야지 땅에 충만해야지’
이게 없다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거와 같은 이야기예요.
증인이 되겠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성령 못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자들이 이 창세기를 보면서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보는 남자, 여자와 지금 여기에 나오는 남자, 여자가 달라요.
여기에는 하나거든요.
근데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고수합니다.
언제까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이후에도 고수를 하죠.
그래야만 모든 인간들이 죄인으로 드러나요.

아직까지는 나가 없는데 이 뱀이 등장을 합니다.
간교한 뱀이 등장을 하면서 여자에게 이렇게 말하죠.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질문을 했어요.
이 질문을 듣는 자체가 벌써 선악과를 먹은 영역 속으로 들어간 겁니다.
우리는 ‘선악과를 먹어야 선악을 알게 한다.’ 이렇게 이해를 하잖아요.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을 받기 전에 벌써 그들은 기도하고
그전에 궐이 난 사도인 한 사람을 추가를 시키잖아요.
말씀을 우리 중심으로, 선악을 아는 우리 중심으로 해석을 하니까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여자가 이 뱀의 말을 듣고 이렇게 이야기하죠.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선악을 아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이 말이 당연한데요.

앞서 2장까지는 나가 없기 때문에 나가 있다라는 것은 누가 있다라는 거예요?
상대가 있다라는 거거든요.
상대가 있다라는 것은 경쟁 관계예요.
뱀이 다가오니까 이 여자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하나님과 자신을 어떤 관계로 놓는가? 하면
하나님은 지시하셨고 자기는 거기에 따라야 된다라는 태도를 보이는 거예요.

‘아니 목사님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 똑같이 답변했지 않습니까?’
똑같이 답변을 했는데 마귀가 들어와버리면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어떻게 바뀌어버리느냐? 라고 하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렇게 하면
이게 인간에게 들어와버리면 ‘내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믿고 인정한다’가 돼버려요.

지금 이 하와의 말 자체가 어떤 관계입니까?
하나님과 하나죠.
하나의 관계에 있어서는 하나님과의 경쟁이 아니에요.
말씀으로 되어지는 몸이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몸이에요.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 말씀도 ‘네 알겠습니다. 생육하겠습니다. 번성하겠습니다.’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새마을 운동 정신으로 자식을 많이 낳자’ 이런 논리라는 거예요. 이런 논리.
이런 사고 방식으로 성경을 보는 거예요. 얼마나 악마적입니까?

창세기 1장 2절은요 우리가 선악을 하는 우리들이 건드릴 말씀들이 아니에요. 원래는.
그러면 못 건드리는데 왜 건드릴 수 있냐? 하면 십자가를 통해서 봐야 되거든요.

그럼 역으로 보면
십자가의 영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은혜를 입어서 은혜를 따라 살잖아요.
그러면 지시를 받는다 했을 때
‘우리는 주님이 지시하고 내가 순종합니다.’ 이런 개념을 갖고 있는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요.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게 돼 있습니다.
그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죠.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하나가 되게 하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게 하는...”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17:22))
그게 십자가의 완료성입니다.

4절에 보면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말귀를 벌써 내가 자아가 생성이 되었잖아요. 주인공이 된 겁니다.
그래서 이 말을 알아듣는 겁니다.
귀로 듣죠. 본래 선악을 알기 전에는 마귀가 오기 전에는 말씀을 귀로 들었어요.
말씀을 귀로 듣고 눈으로 여자를 봤을 때 데려온 배필을 봤을 때 여자라고 하거든요.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마귀의 말을 들으니까 이 들은 이 여자가 ‘자기’가 발생한 거예요. 자아가.
그러니까 이 말씀을 듣고 무엇이 바뀌어버리는가? 하면요 눈이 바뀌어버려요.
그전에 여자를 볼 때의 눈과, 아담이 여자를 볼 때의 눈과
이 여자가 선악과 나무를 볼 때 눈이, 선악과 열매를 볼 때의 눈이 달라져버린 거예요.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마음이 먼저냐, 육이 먼저냐?’ 이게 아니라
말씀이 먼저고요. 악마의 말이 먼저입니다.
그러니 이 눈이 마귀의 말을 듣고 바뀌어버렸어요.

바뀌니까“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보니까 먹음직스럽다. 마음이 요동치는 거죠.

그다음 “보암직도 하다” 참 이것도 표현이잖아요. 마음의 표현.
그다음 “지혜롭게 할 만큼” 역시 이게 지식이죠.
신기하지 않습니까?
과일을 보았는데 그 과일이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라는 게 이게 말도 안 되잖아요.

샤인머스켓 포도를 보면, 그걸 먹을 때 달콤한 걸 먹을 때 ‘먹음직도 하고’는 됩니다.
‘야 보암직스럽다.’ 이 값 비싼 건 그렇잖아요. 제대로 된 거는..
그런데 그걸 먹으면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건 아니거든요.

이걸 갖고 또 이 아무튼 말도 안 되는... 인간들은 그 지식의 선악을 아는 열매가 어떠니 저떠니...
설명이 안 돼요. 그건.
십자가의 피가 죄를 용서한다는 게 어떻게 설명이 됩니까?

‘천지를 창조하셨다’ 어떻게 설명을 해요?
기껏 해봤자 저거들의 방식으로, 과학적 방식으로 설명할 뿐인데.
이걸 사람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다 끌고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가 나옵니까?

죄가 나오는 게 아니라 뭐가 나오죠? 지혜가 나오는 거예요.
‘그 열매는 사과같이 생겼을 것이다. 뭐 같이 생겼을 것이다...’
이 jms는 괴상한 해석을 하잖아요.
이걸 따먹은 걸 뭐 성적으로 따먹는...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거든요. 거기에 열광을 해요.
그런 해석을 갖고
‘야 정말 지혜롭네. 말씀을 잘 해석하네. 우리 집단은 한 차원 더 높은 말씀을 가르쳐준다.’
다 지혜예요. 지혜. 인간의 지식.
이 모든 것들이 나가 발생했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이것을 되돌려보면 그다음 하나 더 봅시다.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 거꾸로 됐어요.
뱀이 오기 전에는 아담이 여자를 볼 때는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하잖아요.
그런데 이 여자가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는 그 남편을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로 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어디로 이미 소속이 됐습니까? 악마에게 소속됐죠. 악마를 빼버립시다.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겁니다.
주인공이 되니까 남편을 자기께로 끌고 들어와버려요.
끌고 들어온 이후에 재밌는 행동을 하죠.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무화과 나뭇잎이 자기들 치마용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이 자기들을 위한 것이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그러한 것들로 창조되었잖아요.
그 모든 피조물인 거예요.

오늘 되게 어려워요. 이게 말씀 자체가.
왜냐하면 우리는, ‘나’라는 자체에 대해서 ‘그냥 나면 나지. 그게 무슨 상관이냐?’ 하지만
이 ‘나’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 하면
말씀 자체까지도 누구 중심으로 끌고 오느냐? 하면 나 중심으로 끌고 온다는 겁니다.

결국은 모든 피조물들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 인간들은, 이 아담과 여자의 눈에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었다.” 요 정도가 아닙니다.
그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온 지구의 모든 피조물뿐만 아니라 우주에 있는 별들, 달, 모든 것들을
다 자기들 소유물로 끌고 끌어당겨야 되는 겁니다. 그게 그 첫 장면이 이 장면이에요.
부끄러움을 해소하는 방법.

그 부끄럽지 않는 방법은 뭐냐? 하면
모든 걸 다 연구를 해서 이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나중에 어떻게 될 건지,
빅뱅 이론부터 시작해서 별별 걸 다 끌고 와서 부끄러움을 가리는 거예요.
부끄러움을 가리는 걸 거꾸로 이야기하면 자기가 신이 되는 겁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창조한 그 피조 세계를
이 악마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모든 해석을 자기 중심으로 해석을 하는 겁니다.

모세가 40년 광야 길을 지나와서 하나님의 율법을 풀어주잖아요.
심도 깊게 알려줍니다. 신명기를 이렇게 읽어보면.
그들의 과거에 무슨 잘못을 했고, 어떤 죄를 저질렀고, 하나님이 어떻게 용서하셨고...
그 내용들을 다 이야기를 해주면
우리들 입장에서는 ‘풀어줬으니까 자세하게 알려줬으니까 깨닫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을 해요.
마치 빌립 집사가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풀어주니까 깨닫듯이.

우리가 보기에는 언어 전달이잖아요.
그걸 그렇게 본다면 진짜 무식하게 보는 거예요.
성령께서 하시는 거예요.
주님이 친히 가르치는 겁니다.

말씀을 풀어서, 잘 가르쳐줘서 그 말씀을 알아듣는다라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러면 ‘못 알아듣는데 왜 풀어줍니까?’ 이제 이 질문이 나와야 되잖아요.

이제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못 알아먹는데 왜 풀어줍니까? 풀어줘야 무엇이 활성화돼요?
율법을 주셔야 무엇이 활성화 됩니까? 죄가 활성화돼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칩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은 은혜가 넘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풀어주면 풀어줄수록, 창세기를 풀면 풀수록 죄가 더해지는 게 아니라
뭐가 더해집니까? 지식이 더해지죠.
이 탐심이 엄청나게 활동을 하는 거예요. 뭘 보고? 말씀을 보고.
그래서 이 신천지나 jms나 뭐 어떤 집단들에 모든 걸 다 바치는 거예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탐심을 발휘하며 지식을 추구하며
그 지식을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구원 얻는 길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저희들을 불러서
지식을 더하시고 말씀에 말씀을 더하셔서 죄의 깊이를 알아가게 하시고
주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신 그 은혜를 알아가게 하심을
날마다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