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2-05 21:53
20231205 신명기 강해 9강 신 2:1-15 뒤바뀐 축복과 저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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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12-0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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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5 신명기 강해 9강 신 2:1-15 뒤바뀐 축복과 저주

하나님 말씀, 신명기 2장 1절에서 15절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2:1~15)
“우리가 회정하여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날 동안 세일산을 두루 행하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고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산을 두루 행한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너는 또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찐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깊이 스스로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으며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행함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가 이 사십년 동안을 너와 함께하였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일산에 거하는 우리 동족 에서의 자손을 떠나서 아라바를 지나며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으로 지나 행하고 돌이켜 모압 광야 길로 진행할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게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옛적에 엠 사람이 거기 거하여 강하고 많고 아낙 족속과 같이 키가 크므로그들을 아낙 족속과 같이 르바임이라 칭하였으나 모압 사람은 그들을 에밈이라 칭하였으며 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하였더니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대신하여 그 땅에 거하였으니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주신 기업의 땅에서 행한 것과 일반이었느니라)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 팔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대로 진 중에서 다 멸절되었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 중에서 멸하신고로 필경은 다 멸절되었느니라”

단순히 신명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이렇게 자세히 읽어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화날 대목이 있어요.
어떤 대목이 화가 나느냐?

창세기 27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창세기 27장에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는 내용과 에서에게 저주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축복은 야곱에게 모든 축복이 주어지는 거예요.
야곱에게 조금 주고 많이 주고 에서에게 남겨서 주는 축복이 아닙니다.

38절에 보면 “에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예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 하였더라”
이게 저주거든요.
분명히 야곱은 축복을 받았고 에서는 저주를 받았어요.
그런데 광야 40년 길을 지나온 이 지점에서 이 세일산에 거하는 에돔 족속을 만나죠.
이스라엘의 동족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깊이 스스로 삼가서 그들과 다투지 말라. 전쟁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이유가 뭐냐?
그들의 땅을 한 판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여호와께서 세일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다라는 겁니다.

저주받은 에서에게 세일 땅을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즉 축복받은 이스라엘이 그 땅을 한 자락도 차지할 없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을 한 자락도 차지할 수 없다라는 것은 다른 이방 민족들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달리 표현하면 저주받은 이 에서 족속을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시고 철저하게 보하신다는 거예요.

또 한 족속이 나오는데 이 롯의 자손인 모압 족속이 나오죠.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죠.
“그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싸우지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들이 얻은 땅, 모압 족속이 얻은 땅에 누가 살고 있었느냐?
이 에돔 족속이 거하는 땅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느냐? 거기에 대한 내용이 10절부터 나오는데,
아낙 족속과 같이 키가 엄청나게 큰 싸움꾼들이죠.
키가 160cm인데 240cm하고 싸운다 생각해 보세요. 팔 길이부터 다른데...

그들이 그 당시에는 싸움꾼입니다. 전쟁의 용사들이죠.
어느 누구도 그들과 싸워서 이길 수 없는, 그러한 어떤 족속들이
모압이 차지한, 모압이 거하는 기업으로 받은 그 땅에 거하고 있었고,
에서의 후손들이 거하는 그 땅에 살고 있었던 겁니다.

이미 38년 전입니까? 그때 이들이 약속의 땅을 정탐을 했을 때
아낙 족속과 같은, 아낙 족속의 후손들이 거하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죠.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을 하고.
그러한 모습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갔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저주받은 에서나 롯의 자손들이 그들의 기업을 먼저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들이 생각해 볼 부분은 이 부분이에요.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 라고 하거든요. 7절에 보면
“여호와가 너의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행함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가 이 40년 동안을 너와 함께하였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부족함이 없는 기간 동안
저주받은 에서 족속은, 아니면 이 모압 족속은 자신들의 기업을 얻은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신 겁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보호하시는 거예요.

왜 그렇게 하시느냐?
그다음 나오는 그 끝부분에 우리가 읽은 14절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년 동안이라 이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 중에서 다 멸절되었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중에서 멸하신 고로 필경은 다 멸절되었느니라”
38년 동안 여호와께서 군사로 헤아림을 받은 모든 자들을 친히 그의 손으로 죽이신 겁니다.
죽이시는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저주받은 에돔 족속과 모압 족속을 보호하시고 기업까지 주셨어요.
아직 이스라엘 자손들은 기업을 얻지 못했거든요.

그럼 여기에서 누가 축복을 받았고 누가 저주를 받았습니까?
누가 저주받은 족속일까요?

성령받지 못한 자들은 이 본문을 보면서 누가 축복을 받았다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에돔 족속과 모압 족속이 축복을 받았다라고 생각을 해요.
왜 그러냐? 라고 하면 이 성령받지 못한 자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이거든요.

그들이 메시아 왕국을 기다리면서 꿈꾸는 바가 무엇이냐? 라고 하면
광야 생활을 다시 하기 싫은 겁니다.
38년 동안 진멸당하는 그 시절이 너무너무 싫은 거예요.
그러한 일이 다시는 자신들에게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성령받지 못한 자의 특징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서
에서와 이 에서의 후손과 모압의 자손들에게, 모압 족속들에게, 롯의 후손들에게 기업을 주신 걸 보고,
그 땅에 사는 그 아낙 자손들과 같은 자들을 물리치고 기업을 얻은 걸 보고
용기를 얻어서 약속의 땅을 취해야 된다라고 해석을 하겠죠.
그게 가장 악마적인 해석이에요.

그런 해석을 누가 했느냐? 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는 거예요.
오늘날 목사들이 말씀을 제대로 연구하고 바르게 해야 된다라고 가르치면서
하는 모든 해석이 그 해석이에요.
철저하게 십자가는 제거시키는 겁니다.

지금 여기에서 진정한 축복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났습니까?
광야 생활하는 모습으로 드러났어요.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에 40년 광야 생활을 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앞서서 7절에서
하나님께서 너희들과 사십년 동안 함께 동행하셔서 부족함이 없었다라고 말씀하심과 동시에
14절에서는
38년 동안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의 손에 의해서 진멸당했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죠.

부족함이 없었다면 여호와의 군사들이 진멸당하지 않아야 되잖아요.
육에 속한 자들은 부족함이 없었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행을 하신다면
진멸당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축복이라고 생각을 해요.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이시는가? 하면
철저하게 언약대로 그들을 진멸하는 방식으로 보여주신 겁니다.
그게 축복이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모든 사람들이 조롱했죠.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이나 그 군병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심지어 옆에 달린 강도들조차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너도 구원하고 우리도 구원하라” 이렇게 조롱하고 비웃잖아요.

예수님은 이 땅이 예수님의 나라가 아니에요.
예수님의 나라는 이 나라에 속하지 않았어요. 나그네로 오셨어요.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랑하는 자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선악을 분별하기 때문에 이게 어떻게 십자가를 증거하는 거냐?

십자가 안에는 이 두 요소가 다 담겨 있어요.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시잖아요.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어요.
그 십자가 안에 참예한 자들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다 받았습니다. 에베소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그 신령한 복이 뭐냐?
구약으로 돌아서 보게 되면 바로 40년 광야생활이요. 광야 생활하면서 진멸당하는 거예요.
사도들이 성령을 받은 이후에 십자가를 증거할 때 죽임을 당했잖아요.
참으로 신기하잖아요. 아니 십자가의 피로 구원을 받았으면 죽임 당하지 않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죽을 때도 눈이 흐리지 않고 정신이 말똥말똥하면서 죽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진정한 복은 주님의 고난에 참예한 겁니다.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다 받은 자들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성도들을 여기에는 우리의 본향이 없다라고 하거든요.
우리의 본향은 따로 있어요. 우리의 본향은 주님이 계신 곳이죠.

그렇다면 이 땅에서 성도는 어떻게 사느냐? 라고 하면 나그네로 사는 거예요.
나그네로 산다라는 것은 정주하지 않는 겁니다.
이 신명기를 보면서 본인이 정주하기를 원하고 안락한, 자기의 즐거운 우리 집을 꿈꾸기 때문에
이 말씀을 통하여서 십자가가 영광이고 십자가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의 결정체라고
사람들은 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에서 말씀을 증거하면서 계속해서 십자가를 증거하지 않고
인간의 욕망을 끝까지 붙들라고 말씀을 해석하는 겁니다.
그 내용 중에 하나가 오늘 같은 본문이죠.

에돔과 같이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시고 보호하시는 이유가 있어요.
이 세상 마귀의 나라가 짐승의 나라잖아요. 이 짐승의 나라를 철저하게 보호하고
오히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같은 경우에는 사라지게 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그래야만 지옥 갈 자는 지옥 가고
주님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천국 백성으로서, 증인으로서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이렇게 말씀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다고 하는 자들, 성경을 읽는 자들은
무엇을 계속해서 꿈꾸고 있고 무엇을 배우고 싶고 가르치려고 하는 겁니까?

진정한 복은 광야 생활이에요.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우리를 광야 생활을 한다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이 광야 생활은 이 우리에게 장차 올 영광을 덮어씌운 생활이에요.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라는 말씀을 육으로 해석하면
‘지금은 고난 당하니까, 지금은 괴로움 당하니까 영광을 받을 때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질 거야.’
그게 불교잖아요.
십자가 자체가 영광이에요.

그걸 모르게 되면 계속해서
에돔과 같이, 모압과 같이 정주하는 것, 보호받는 것, 그것을 꿈꾸는 거예요.
진정한 축복은 이 구약 이스라엘이 미리 그림자로 보여줬습니다. 광야 생활이에요.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를 증거하는 것 때문에 진멸당하는,
미움받고 핍박당하는 그러한 일을 당하는 자체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다 받은 자의 삶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의 사고 방식을 저희들에게 다시 한번 들려주시고,
우리 또한 그들 속에 함께 살려지고 있음을 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러한 죄인을 불러서 주님의 증인으로 삼아주셔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자로서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게 하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광야로 인도함을 받는 나그네로 살아감을,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