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2-20 07:03
20240219 신명기 강해 40강 신 6:1-3 장로들의 유전과 명령과 규례와 법도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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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2-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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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9 신명기 강해 40강 신 6:1-3 장로들의 유전과 명령과 규례와 법도

하나님 말씀, 신명기 6장 1절에서 3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신6:1~3)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아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남은 자 유대인들이죠.
그들이 돌아왔을 때 신명기 6장 1절에서 3절 말씀이 어떻게 들려지겠습니까?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이 말씀에 근거하여서 철저하게 개혁을 단행합니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개혁이죠. ‘말씀으로 돌아가자’라는 겁니다.

여기에 보면 계속해서 신명기에서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말씀하시거든요.
명령은 무엇이고 규례는 무엇이고 법도가 무엇이냐? 이렇게 우리들이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명령은 간단하게 말하면 ‘십계명’ 이렇게 이해하셔도 됩니다.
거기에 따라서 이 제사법 규례들이 나오고요.
거기에 또 계속해서 추가적으로 법들이 계속해서 주어집니다.

여러 가지 적용 방식들이죠.
십계명 10가지만 말씀하시면 되는데
이 출애굽기부터 민수기까지 넘어오면 이 법들이 계속해서 추가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령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나뭇가지를 주웠을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질문을 할 때 여호와께서 그를 죽여라는 명령이 떨어지고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이 문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시점이 에스라 느헤미야 이후고요.

그리고 계시가 끝나는 말라기 이후에 거의 한 400년 정도 그 시절이 됩니다.
말라기까지는 선지자들이 활동을 했거든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들이 이 활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을 합니다.

만일 그 시절에 어떤 사람이 에스라 느헤미야가 안식일 규례라든가,
이방인들에 대한 처결에 대해서 그렇게 내렸을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만일에 그러한 활동들이 있을 때 자신 나름대로 이 율법을 해석하여서
‘우리가 이 율법을 이렇게 지켜야 됩니다.’
가령 ‘안식일날은 밀 이삭을 잘라 먹으면 되지 않습니다’라는 이러한 것들을 내세웠다면
그는 바로 거짓 선지자로 낙인 찍힐 겁니다.
왜냐하면 참 선지자들이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계시가 없는 상황, 선지자들의 활동이 없는 그 중간기, 신학적으로 중간기라고 하거든요.
그 시대에 접어듦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고민에 빠지죠.
디아스포라도 있고요. 각 지역에 유대 땅이 아닌 곳에 회당이 있고
그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애를 썼을 때
자신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약속을 믿기 때문에 그래요.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데,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데
소득의 십일조를 해야 되는데 이 소득의 십일조가 원천 징수되는 세금을 빼고 할 건지
아니면 세금까지 포함되고 할 건지 이러한 논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리고 환경과 사회적 제도에 따라서 다 다르잖아요.

가령 한국 같은 경우에는 예를 들어 그때와 다르지만, 예를 드는 겁니다.
체제가 민주 체제가 되면 뭐 ‘안식일을 지키라’ 하면 모이면 되잖아요.
그런데 중국 같은 경우에는 만만치 않습니다.
수시로 토요일 날 출근이고 일요일 출근이거든요. 북한은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면 예를 들어 지하 교회가 있다고 저도 들었습니다마는
어쨌든 그들이 말씀을 그러한 체제 속에서 지킨다면 나름대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제가 지금 현대에 빗대서 얘기를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죠.
흩어진 곳의 상황이 다 다르고 경제적 형편이 다 다르고요.
신약 성경에서는 노예 제도가 나오거든요.
오늘날은 노예가 있는 나라가 거의 없잖아요.
그럼 그런 본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
지금도 초미의 관심사거든요.

이 400년 동안, 이들이 중간기 동안 하나님에 대한 열심,
이 신명기 말씀을 제대로 듣고 지키고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서 너희의 나를 장구케 하실 것이라”라는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장구한 그 날을 위해서,
복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 신명기에 나오는 거고요.
이후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어진 내용들도 여기에 추가가 됩니다.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아간 사건에서도 추가가 되고요. 여호수아... 계속해서 추가가 되거든요. 상황 상황에 따라서.
물론 그 원뜻은 변하지 않아요.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적용되는 그 율법의 방식이 다 다른 겁니다.
그러니 이들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마태복음 15장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으니까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이미 죽이려고 작정을 했거든요. 기회를 노리는데.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아 이것은 장로들의 유전은 엉터리일 거다.’
대부분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목사들은.
율법에서 벗어나 인간의 가르침,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갖고 오는데
그것이 목사들이 잘못 가르친 거예요. 신학자들이.

이 본문 전체의 의미를 보면 그런 뜻이 아닙니다.
장로들의 유전이 아니면 어떻게 지킬 겁니까?
목사들이 지금 설교를 하잖아요.
설교를 하면 현대적 언어로, 현대적 상황에서 말씀들을 다 해석하고 적용하거든요.
그거 다 장로들의 유전이에요. 장로들의 유전이 아니려면 말씀대로 읽기만 해야 돼요.
그래서 어떤 목사들은 ‘말씀만 읽어야 된다. 읽어야 된다. 문자대로 그대로 봐야 된다.’

그런데 갑자기 히브리어 헬라어 하는 사람들이 와가지고 ‘이 한국어는 엉터리야’
킹 제임스 버전 하는 사람들이 와가지고 ‘제대로 된 번역은 킹제임스야.’
그러면 또 히브리어 헬라어 하는 사람들 중에 또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해석을 하거든요.
발음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고 이런 식으로 해야 되고... 끝이 없어요.
답을 못 찾거든요.

이 장로들의 유전이 성경에 몇 군데 안 나오지만, 이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게
우리가 볼 때는 이들이 율법을 벗어나서
성경에 율법과 같은 추가 조항을 집어넣었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런 의도가 아니에요.

지금 예수님이 등장한 것은 선지자들이 외친 종말입니다.
종말의 때가 등장을 하면, 율법 해석의 최고 정점에 도달해요.
악이라는 모습이 가장 선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시기가 이 시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죠. (마15:3)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이렇게 나옵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아 장로들의 유전을 갖고 계명을 범한다’ 이렇게 나오는데
그러면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할게요.
안식일날 어떻게 지켜야 됩니까?
안식일날 밀 이삭 까먹는 문제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었잖아요.
‘안식일날 일하지 말라’ 했는데 어디까지가 일하지 않는 겁니까?

한번 답변해 보세요. 스스로 한번 답변해 보시면 어떻습니까?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돼요?
어디까지가 우상숭배입니까? 거기에 대한 세세한 것들이 나와야 되거든요.
어디까지가 탐하는 거냐?
십계명 중에 열번째 계명,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했을 때
탐내는 것이 마음으로부터 출발하는 그 시점부터 탐내지 말아야 되느냐?
아니면 행동으로 옮기는 것까지냐? 이것까지 다 정해야 돼요.
말씀이라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거든요. 조목조목 그렇게 돼 있지 않습니다.

조금 더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거예요.
“(장로들의 유전으로) 너희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이렇게 말하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해야 된다’라고 주장을 하거든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 말 잘했죠.
그 계명대로 한 사람의 대표자가 누굽니까? 사도바울이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율법을 주신 것은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기 위함이거든요.
죄 아래 가두어지는 방식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율법을 주시면 인간들은 율법을 주신 목적이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해 주셨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까 그 땅에서, 신명기에 나오는 그 땅에서 장구하고 복을 받을 것이라는
그러한 말씀에 유혹을 받는 거예요. 그게 좋은 겁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이 거기에 있거든요.
그러니 그들은 실패한 과거 조상들과 달리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선지자들의 그 가르침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말씀을 연구하여서
이 말씀, 안식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거룩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그러한 요소들을 계속해서 세심하게 짜 넣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그 시대적 상황이에요.
하나님께서 400년 정도 계시를 주지 않는 이유예요.

자기들끼리 성경 말씀을 제대로, 율법대로 살기 위한 그 조항들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러한 조항을 만들었는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15:3~6)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사람들은 이 본문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해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서 부모를 공경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가르쳤다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과 부모가 둘이 동시에 있을 때 누구를 공경해야 됩니까?

이 말씀을 십자가에서 보게 되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취지가 뭐냐? 하면 뒤에 나와요.
마음이 문제거든요. 이미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을 했고요.
마태복음 13장에서도 말씀하셨죠.
마음을 완악하게 했기 때문에 눈이 감겼고 귀가 닫혔죠.
눈이 소경인데, 소경이 율법을 해석하는 방식은 소경의 방식이에요.
소경이니까 율법을 통해서 무엇이 안 보입니까? 예수님이 안 보여요.

소경 아니니까 자기들은 소경 아닌 거예요.
소경 아니니까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겁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 하거든요. 뒤에 보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마음에서 나온다”
하잖아요.
그 마음 밭 자체가 이미 악마에게 장악당했는데
그 장악당한 모습이 뭐냐? 하면
율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그게 이제 바리새파들이 등장을 하고 사두개파들이 등장하는 그 중간 시기잖아요.

세세하게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들이 이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서, 자기들을 기준 삼아서 자기를 보면요.
흠이 없는 겁니다.

근데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그 열심히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멸시한다는 거예요.
제 해석이 여러분들 듣기에는 엉터리 해석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들이 예수님을 살해했잖아요.
육에 있으니까 이런 말씀들을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그 뒤에 보면 7절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지금 이 말씀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입술로는 존경하는데 마음은 멀도다.”
그러니까 ‘마음도 존경해야 된다’ 이렇게 해석을 하는데 그런 뜻이 아니에요.
마음이 이미 어디에 가 있습니까? 자기 사랑에 가 있잖아요.
그러니 입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입만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살거든요.
그 자체를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는 겁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할 때는 그들이 말로만 존경한다 했지만
이제 이 시절은, 예수님 시절은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소득의 십일조를 했잖아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까지 했거든요. 그 정도로 열심을 낸 겁니다.
그 모습이 마음이 먼, 입술로만 나를 존경하고 마음이 먼 모습이라는 거예요.

성령이 없는 사람들은 못 알아듣죠. 무슨 말인지.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행위밖에 안 보이기 때문에 그래요.
십자가가 눈앞에 밝히 보여야 되는데 안 보이는 겁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사람의 계명이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하잖아요. 사람들은 그렇게 가르치거든요.
하나님의 계명은 율법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제가 여러분에게 또 묻겠습니다.
그 율법대로 여러분들이 가르쳐 보세요.
인간이 마음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 마음이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율법을 가르치면요.
반드시 자신이 심판자이기 때문에, 판단자이기 때문에 그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하게 돼 있습니다.

앞서 제가 이 ‘말씀대로 믿자’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다 했잖아요.
읽으면 뭐 합니까?
읽는 본인이 이미 거기에 대한 주석을 다 다는데요. 해석을 다 달아요.
인간은 거기에서 못 벗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 남은 자 유대인들에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이 말씀을 주고 심판을 받아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그들의 최종 도달 지점이 여기라는 겁니다. 여기.
어떤 모습? 거룩을 유지하고, 율법대로 살고, 안식일을 지켜서 결국은 예수님을 살해하는 거예요.

자신들의 구원자가 눈앞에 왔는데 지금 뭘 지금 찾고 있습니까?
손을 씻고 먹어야 된다는 거예요.
세리와 창기, 죄인으로 나타나서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 주님 앞에
용서함 받은 그 은혜를 입어야 되는데 이들은 지금 뭘 챙기고 있습니까?
율법을 챙기고 있는 거예요. 그 율법이 사람의 계명이라는 겁니다.
율법을 주석해서 해석한 것이 사람의 계명이 맞아요.
그런데 이것이 하나로 묶여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율법은 본래 취지가 예수님을 처음부터 증거하는 거였다라는 겁니다.
인간 쪽에서는요. 율법 자체를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이미 해석을 합니다.

예수님 말씀의 취지는 그런 거예요.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다 뽑아버리기 위해서” 그러신 거예요.
천부께서 심으시게 되면,
천부께서 심으셨다라는 것은 아들을 공경케 하기 위해서 심으신 자죠.
그들만이 예수님의 택하심을 받아서 긍휼의 그릇으로 선택함을 받아서
죄인으로 드러나면서 십자가의 증인이 되는 겁니다.

장로들의 유전, 여기에 대해서 시비를 걸 게 아니에요.
그러면 오늘날 유튜브나 인터넷에 올라온 설교를 다 제거해야 됩니다.
모든 교회의 설교가 다 장로들의 유전이에요.
주님은 이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요.

사도 바울이 설교했던 식으로 똑같이 외워서 한다고 그게 설교가 아니에요.
그렇게 해봤자 또 해석을 하는 겁니다.
주님은 죄인을 통해서 성령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세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하더라도 주의 진리를 알 수 없는 그러한 소경을 불러서
주의 백성으로 삼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설교하더라도 깨달을 수도 없고 믿을 수 없는 그 은혜의 세계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주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그 일에 저희들을 참여시키시고 놀라운 구원을 날마다 맛보게 하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