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3-02 18:06
20240301 신명기 강해 45강 신 7:1-2 야곱의 전쟁과 이스라엘의 전쟁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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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3-0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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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1 신명기 강해 45강 신 7:1-2 야곱의 전쟁과 이스라엘의 전쟁

하나님 말씀, 신명기 7장 1절에서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신7: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아멘.

창세기 15장 16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하신 그 맹세,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맹세의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 들어갔다가
사대 만에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맹세죠. 16절에 보면.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라”
이게 ‘관영하다’라는 말은 ‘가득 찼다’라는 거예요.

이 내용은 마치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할 때 종말이라는 거죠.
‘심판 때가 왔다’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실 때는 그 죄가 가득 찼을 때 심판을 합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불로써 심판을 당할 때 그 경우도 마찬가지죠.
죄악이 가득 찼기 때문에 심판을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대 만에 돌아올 것을 말씀하시고 그들의 죄악이 가득 차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심판을 하실 것을 말씀하신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들이 조금 의문스러운 점은 이거죠.
하나님께서 사대 만에 돌아오시게 하시면 그냥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땅에 들어갔을 때
이 일곱 족속을 하나님께서 붙이셔서 그냥 하나님께서 진멸을 해버리면 좋잖아요.

하나님께서 직접 소돔과 고모라처럼 약속의 땅에 살고 있는
이 일곱 족속들의 죄악이 가득 찼기 때문에 확인만 하고 심판을 하면 되는 거예요.
물론 기생 라합 같은 경우에는 구출을 하겠지만 롯도 구출을 했잖아요.
그러면 기생 라합을 구출했으면 하나님께서 구출한 자만 뽑아내고 진멸을 해버리면 되는데,
이 전쟁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기에 참여시킨다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붙이실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하라.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치게 한다라는 거예요.
왜 이런 일을 시키시는가?
우리의 관심은 약속의 땅이거든요.
지금도 예수 믿는 사람들의 관심은 천국에 있단 말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야 어차피 말 안 듣는 자들이잖아요.
그러면 그들에게 전쟁을 시키지 말고, 진멸 전쟁을 참여시키지 말고
여호와께서 홀로 해버리시면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대로 이루시잖아요.

그런데 우리도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가 분명히 죄악이 관영하면
그 땅을 차지할 거라고 했는데, 심판 완료가 안 돼요.
심판이 완료가 안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는가? 여기에 (신명기 7장) 2절 하반절에 보면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언약을 맺는다.
여호수아 9장에 보면
기브아 족속들이 아주 불쌍한 행세를 하고 와서 자기들과 언약을 맺자고 할 때 언약을 맺었거든요.

이 전쟁을 무슨 전쟁으로 보느냐? 하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여호와의 전쟁이 어떠함을 보여주기 위한 전쟁이에요.

그래서 이들은 이 전쟁에 참여를 하는데 이 전쟁은 무슨 전쟁이냐? 하면
여호와 전쟁인데, 여호와의 전쟁은 ‘나의 전쟁이 아니오’를 담고 있는 전쟁이에요.
이게 되게 어려운 겁니다.

진멸하라 하잖아요.
그러면서 그들을 그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불쌍히 여기지 말라.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이 여호와 전쟁은 ‘나는 아니오’라는 전쟁을 포함한 전쟁이어야 되는 거예요.
신약까지 계속 이어지는데 구약이라고 만만히 보면 안 됩니다.

창세기 32장을 보면 유명한 사건이 나오죠.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궁리를 하는 가운데
이제 모든 사람은 다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서 지금 있는데, 24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아니 처음부터 환도뼈를 쳐버리면 야곱이 지잖아요.
힘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자가 져 주신 거예요.

호세아서를 보면 이 야곱이 12장 거기에 보면 ‘야곱이 씨름에서 이겼다’라고 하거든요.
왜 하나님께서는 이 야곱에게 저 주시느냐? 이 전체 사건 때문에 그래요.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날이 새는 데 가려고 할 때 왜 축복을 해달라고 하는가? 하면
상대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걸 눈치챈 겁니다.

지금 이게 말이 안 되는 내용이거든요.
이미 축복을 받을 만큼 다 받았어요.
그러면 우리는 또 잔머리를 써서 형, 에서로부터 보호를 받는 그러한 축복을 요구하고 있지 않느냐?
그게 아니에요.
지금 야곱이 말하는 축복은 지금까지의 축복은 다 가짜 축복이라는 겁니다.

27절에 보면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야곱은 빼앗는 자거든요. 약탈자로서 이기려고 하는 자입니다.
속여서 이기려고 하는 자.

그 야곱의 이름의 특징이 뭐냐? 하면 자기를 위해 싸우는 자예요.
하나님의 약속이 나를 위한 약속이라고 생각을 하고
자기를 위하여서 속이고 뺏는 자로서의 싸움꾼입니다.
그게 야곱이에요.

야곱을 이 세상 사람들로 보면 모든 인간들이 그러하잖아요.
나를 위해, 내가 얻으려고 싸우는 자들이잖아요.
나와 나 아닌 자와의 투쟁의 세계라 하잖아요.
싸우지 않으면 뺏을 수가 없는 세계입니다.
돈을 벌려고 해도 싸워야 돼요. 이 세계에서 못 벗어납니다.

그 정당의 공천을 받으려고 해도 싸워야 되거든요.
목소리를 높여서 상대를 죽일 만큼 공격을 하면 공천을 줄지 몰라요.
그게 이 야곱의 모습이에요. 약속을 받은...

야곱이라고 대답을 하죠.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지금 이 얘기를 해요.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계속해서 이겨왔어요.
심지어는 이 자리에서는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거든요.
그게 이스라엘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그럼 이스라엘은 전쟁하는 사람이에요.
야곱은 그러면 전쟁 아니냐? 전쟁하는 사람이 맞아요.
똑같이 전쟁을 하는데 야곱의 전쟁과 이스라엘의 전쟁의 차이가 있습니다.

야곱의 전쟁은 내가 죽어야 하는데 살았다는 내용이 없는 전쟁이에요.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음이라’
계속해서 이제 진짜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죠.
이후에는 이제 우상들과 싸워서 이깁니다. 사람과 같이 하나로 엮여 있기 때문에.

그 전쟁을 하게 되는데,
그 전쟁을 할 때 무엇이 남겨져야 하느냐? 하면
그 의미가 남겨져야 되는데 그 내용이 뒤에 나옵니다.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이름을 이야기 안 하죠.
이름을 이야기를 안 하는 이유는 뒤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이스라엘 이름 안에 브니엘이 담겨 있는 거예요.
하나님과 대면하였으나 생명이 보전되었다라는 거예요.

이 내용과 오늘 본문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 하면
여호와 전쟁을 할 때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이 그들 가운데에 있어요.
그러면 그들은 마땅히 죽어야 되는데 생명이 보전되었죠.
생명이 보전되었다라는 것은 누구의 피 때문이잖아요.
언약궤 때문이거든요. 그 내용을 담고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이고요.

이방 나라는 무엇이 없습니까? 언약궤가 없어요.
언약궤가 없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는 불쌍히 여기면 안 돼요.
진멸해야 됩니다. 개미 새끼 하나 남기지 말고 다 죽이라는 거예요.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거예요.

인간에게 측은지심이 있어야 된다라고 말을 하잖아요.
그런 측은지심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 악마적이라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스라엘 자체는 야곱의 전쟁을 하는 자들이 아니에요.
야곱의 전쟁을 한다면 불쌍히 여기고 언약을 맺어가지고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그들을 이용하면 돼요.

사울 왕도 마찬가지였죠.
다 진멸하라 했는데 아각과 그 좋은 송아지나 양들을 살려주거든요. 이익이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 야곱 전쟁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고 그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9장에 보면 그게 나오거든요.

신약의 백성들도 주님께서 십자가로 승리를 하셨잖아요.
구약을 이야기할 때 이 십자가 안에서 제가 지금 해석을 해 드린 거예요.
그러면 성도의 싸움은 야곱의 전쟁을 하느냐?
이스라엘의 전쟁을 하느냐? 예요.

야곱의 전쟁은요. 내가 계속해서 더 많이 얻는 전쟁이에요.
마치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을 믿고 부자가 되고 건강해지고 큰 힘을 소유하고
큰 교회가 되고 가정이 행복해지고 이게 야곱의 전쟁이에요.

근데 이스라엘의 전쟁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게 되면 계속해서 나 자신이 부정당하는 전쟁이 돼요.
돈을 더 벌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고 건강할 수도 있고 사업이 잘 될 수도 있고
어떻게 다 될 수도 있는데...
이 자체가 부정당해요.
얻으려고 하는 전쟁이 아니에요. 나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이 성도의 전쟁은 십자가의 피 공로만을 높이는 전쟁을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복음을 전할 때는 불쌍히 여기면 안 돼요.
그들과 언약을 맺으면 안 돼요.
이 불쌍히 여기고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그 상대를 배려하는 겁니다.
배려하기 때문에 복음을 변개시키는 거예요.

십자가 복음은 사람을 위한 복음이 아니에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복음이 아닌 거예요.
근데 사람들은 꼭 이 구약 이스라엘처럼 야곱의 전쟁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상대가 야곱의 전쟁을 하고 있잖아요.
자기 것을 더 얻으려고 하고 이익을 쟁취하려고 하고 천국 가려고 하고
그 전쟁을 하기 때문에
복음이라는 이것도 가짜 복음, 야곱의 전쟁의 방식으로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렇게 전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죠. 사람을 좋게 하는 복음.
갈라디아서에서는 사람에게서 난 복음이죠. 사람을 위한 복음.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음, 그걸 가짜 복음이라 하거든요.

그 복음의 특징은 십자가 앞에서 모두 죄인으로 드러나는 우리 자신이 세리요. 창기요.
그러한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상대를 ‘복 받은 자다’라는 것으로 이렇게 띄워주는 복음.
우리가 무엇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그러한 가짜 복음,
그게 여호와 전쟁을 할 때 불쌍히 여기고 그들과 언약을 맺는 방식의 복음 전파라는 겁니다.

성도가 이 에베소서에 보면 이 완전 무장을 하잖아요.
그럼 완전 무장을 했을 때 성도는 어떤 모습이냐?
우리 말씀을 듣는 분들이 다 상상을 하잖아요. 성도가 완전 무장했을 때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냐? 하면요.
예수님 옆에 달린 강도입니다. 구원받은 강도.
세리와 창기예요. 나사로예요.

그들은 어떤 전쟁을 하느냐? 하면
여호와 전쟁을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전쟁을 하는 겁니다.

항상 내가 주님과 대면하였으나 생명이 보전되었다.
그러면 뭐가 남았어요? 피만 남는 거예요.
어린 양의 피를 앞장세우는 전쟁에 참여함을 받은 자들이, 동원된 자들이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야곱의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전쟁이기에
주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언약을 맺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시사 야곱의 전쟁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전쟁을 할 수 있도록 날마다 저희들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