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6-08 11:22
20240607 신명기 강해 87강 신 16:1-8 유월절과 새언약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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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6-0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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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7 신명기 강해 87강 신 16:1-8 유월절과 새언약

하나님 말씀, 신명기 16장 1절에서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신16:1~8)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우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유교병을 그것과 아울러 먹지 말고 칠일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아울러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속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너의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그 칠일 동안에는 네 사경 내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네가 첫날 해 질 때에 제사드린 고기를 밤을 지내어 아침까지 두지 말것이며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드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 고기를 구워먹고 아침에 네 장막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너는 육일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제 칠일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아멘.

여호와께서 지금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인간들은 ‘지키라고 하면 지키면 되지’ 이렇게 나오죠.
오늘날도 유월절을 지킨다고 난리 법석을 떠는 집단들이 적지 않습니다.
앞으로 아마 개신교회죠. 이단이라고 안 하는 그런 교회도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라고,
지켜야 한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지키자’고 나올 겁니다.

사람은요. 법을 주지 않으면, 법이 없으면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라는 것을 못 느껴요.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밋밋하거든요. 일상생활의 반복인데
그 반복에서 종교적 행위들이 들어갈 때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거든요.
믿음도 마찬가지죠.
내가 믿어야만 믿는 것 같은 그러한 모습들, 자기도취입니다.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마다 믿음을 요구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출애굽 사건을 평생에 항상 기억할 것을 말씀합니다.
신명기 16장은요. 유월절을 시작하여서 칠칠절로,
그 유월절 다음 날, 유월절이 14일 저녁이면
15일 저녁부터 7일 동안 무교절이 되고
(이스라엘 날은 밤부터 시작하니까) 15일 아침이 초실절이 돼요. 이삭을 처음 거두는 그 날이 됩니다.

그리고 7일에 7번, 칠칠절이 이제 또 만들어지는데 맥추절이라고도 하는 거예요.
이때도 여호와 앞에서 예물을 드려야 하고요.

그리고 마지막 이제 초막절, 초막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지금 신명기에서는 대속죄일을 언급하지 않고 곧장 초막절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이 무엇과 연동이 되느냐? 하면요.
인간의 먹고사는 문제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3대 절기와 이렇게 엮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놀랍게도 출애굽이 첫 이삭을 수확할 때 유월절이라는 거예요.
바로를 강퍅하게 하셔서 계속해서 날을 늦추시는 이유가 뭐냐? 하면
유월절과 무교절을 맞추시기 위해서예요.
초실절을 맞추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겁니다. 우연이 아니에요.
그러면서 이제 이 칠칠절을 말씀을 하시고

그다음에 이제 모든 포도를 수확해서 포도주를 저장하는, 곡식들을 저장하는
초막절로 끝이 나는 겁니다.
먹는 문제와 제사 문제를 함께 연결시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 출발이 유월절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유월절을 확대시키는 거예요.
전체 절기를 이렇게 소급해 오게 되면 유월절에 응축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유월절 의미가 도대체 어떤 의미냐?라는 거예요.

우리는
‘애굽에서 구출하는 날이 유월절이 아니냐 그러면 어린 양의 피를 기념하라는 거냐?’
그게 아니에요.
신명기 8장을 보면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 만나를 주셨다라는 거예요.
이 내용이 무엇과 연결돼 있는가? 하면 인간이 먹는 것과 연결시킵니다.
그래서 먹는 것을 주시면서, 만나를 주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가르치시는
이 내용을 이 절기로 집어넣는 거예요.

절기 속에 들어가게 되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산다’라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말씀으로 산다’라는 겁니다.
그것을 3대 절기로 이스라엘 전체를 (전체, 1년이죠 그 1년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돌리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잖아요.
무슨 말씀으로 사는 겁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3대 절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확하는 것과 먹는 것과 연결시키면서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데
그 말씀이 무엇이냐? 라는 거예요. 유월절 어린양의 피라는 겁니다.

짧은 시간에 모든 걸 다 설명할 수는 없겠죠. 요한복음 6장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잘 아는 기적을 행하시는데 요6:4절입니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왜 ‘유월절이다’라고 하지 않고 ‘유월절이 가깝다’라고 말씀을 여기에 집어넣느냐? 하면
시기를 말씀하기 위함이 아니에요.

우리는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이 되신다라고 하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그날에 딱 맞추어서 행하시기를 원하거든요.
그러니까 인간의 탐욕이에요. 진짜 악한 마음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방식이 뭐냐? 하면
‘이가 딱 딱 맞으면 믿겠다’라는 거예요.
천지 창조한 건 보지도 않고 믿으면서 이런 말씀은 꼭 그렇게 믿으려고 해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잖아요.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정확하게 말씀하셔도 이해 못해요. 그것도 이해 못하는데
‘이 유월절을 딱 끼워맞춰야 이 말씀의 의미는 이거고 저거고...’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다 그렇게 해석을 해요.
그러니까 성경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는 거예요. 말씀을 들을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유월절이 가까웠다” 했을 때
예수님이 하실 일이 유월절과 관련되어 있다라는 겁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5개로 장정 5천 명을 먹이셨잖아요.
그러니까 이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 했습니다.

왜 임금 삼으려 했느냐?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 왕국, 다윗 언약의 성취를 소망하는 것이고,
다윗 언약의 성취는
곧 모세가 예언한 ‘나와 같은 선지자’가 와서 만나와 같은 떡을 내려서
우리들을 먹이는 그 시절이 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임금 삼으면 자신들은 어떤 인생을 살 거다?
모세가 광야로 인도한 그 시절이 아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내렸던 그 능력 플러스 다윗 왕이 세우신 그 왕국을 상상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 했죠.

예수님이 피합니다. 피하신 이후에 다시 예수님을 찾아온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이 행하신 이 일의 의미를 말씀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이 표적을 ‘세메이온’이라고 하죠.
왜 표적이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요
표적의 의미는 유대인들이 보기에, 메시아를 기다리는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표적이에요. 어떤 표적이냐?
그리스도다운 표적,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다윗 왕의 표적으로 보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역시 표적으로 이 일을 행하신 거예요.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어떤 표적입니까?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는 표적인 거예요.

제가 이런 식으로 본문을 해석하니까 ‘괴상한 해석한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본인들이 말씀을 괴상하게 본다라고 생각을 하지 않아요.
지금 표적이라는 말을 성령 받지 않는 자도 보고 있고 성령 받은 자도 보고 있잖아요.
예수님이 보시잖아요. 예수님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이 표적이라는 것과, 유대인들이 표적이라는 것과,
제자들이 표적이라는 단어, ‘세메이온’이라는 단어가 다 달라요. 그 의미를 다 담아내야 됩니다.
그래야만 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표적의 의미 속에서 인간의 죄악들이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 이들이 믿었던 표적은
메시아다운 표적이 병을 고친다든가
이러한 모세처럼 신적 능력으로 만나 같은 먹을 것을 주는 분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표적이라는 거예요.

요6:2절에 보면 그렇게 나오잖아요.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그래서 말씀이 여러 가지 층을 담아서 한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더라도
유대인이라 했다가 무리라 했다가 제자들이라 했다가... 번갈아가면서 계속계속 사용하죠.
근데 그걸 뽑아내서 명확하게 ‘이거는 제자들이고 이거는 유대인이고’ 이렇게 해석이 안 돼요.
어떤 부분은 그렇게 되는데 어떤 부분은 안 된단 말이에요.

예수님께서 자신이 행하신 것이 표적임을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는데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 요6:48절에서 그렇게 말씀합니다.
만나는 ‘이게 뭐냐?’ 진짜 입으로 먹는 거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떡을 먹여주셔놓고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해버려요.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이게 못 알아듣죠.
그러면 우리는 어때요?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실 때는 그들은 못 알아들었는데 우리는 이 성경을 알잖아요.
이미 사건의 결론을 알잖아요. 드라마의 결론을 알듯이 답을 알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 이럴 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이 있다 하니까 그다음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러면 믿으면 되죠’
그게 무슨 믿음입니까? 그게 육이죠.

예수님이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이 있다.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 세우시는 새 언약을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어떤 인간도 육으로 났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자가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성령을 주셔서 구원하는 거예요.

제가 페이스북에 ‘믿어서 구원을 얻을 것 같으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이유가 없다’라고 하니까
‘믿지 않고 어떻게 구원을 얻습니까?’ 라고 반박을 해요.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를 못해요.
성경을 ‘생명을 얻는 정보를 주는 성경’으로 보기 때문에 그래요.
“말씀이 살아서 역사한다”라는 이 이야기를 자기가 살아서 감동받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 거예요.

주님이 직접 살아계셔서 성령을 통해서 직접 구원하시는 그 일.
믿지도 않았는데 사도 바울을 구원했잖아요.
베드로 같은 경우에는 엉터리로 믿었는데 구원하잖아요.
믿음 자체가 없어요.

그러한 주님이 하시는 일을 믿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은 이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임금 삼으려는 그들과 다르니까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피와 살을 먹고 마셨어. 믿으니까, 그 화목 제물을 믿으니까 나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는 이 사고 방식을 요한복음 6장에서는 부정하고 있거든요.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 할 때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느냐? 하면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떡으로 살려고 하는 자들을 40년 광야 동안 다 진멸해 버립니다.
진멸하면서 남기는 게 뭐냐? 하면 말씀이에요.
신명기 8장을 읽어도 깨닫지를 못해요.

예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라고 하는 말씀의 의미는
살과 피를 마신 자는 나오는 것이 무엇밖에 없느냐? 하면요.
피밖에 없어요. 십자가밖에 없어요.
이 구약에서 그림자로 보여주셨잖아요.

주님께서 성령을 주시게 되면 ‘주님이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증거하게 됩니다.
그 증거하는 방식이 뭐냐? 하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나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했죠.
말씀이 육신이 되셨잖아요.
그 육신이 되신 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잖아요.
그러면 성도는 십자가로 사는 거예요. 그 피로.

피로 산다면
피를 자랑해야 되고 십자가를 자랑해야 되는데, 왜 거기에 ‘내 믿음’이 나옵니까?
믿음이 있다면 아브라함처럼, 로마서 4장에 나오는 다윗처럼, 사도바울처럼, 베드로처럼
자기는 믿음 없는 자로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믿음만을 자랑하게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유월절을 예수님께서 친히 지키셨기에 우리들에게 십자가로 완성하신 선물을 주셨습니다.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절기를 주셨고,
유월절 어린양 되신 주님이 말씀이시요
말씀의 성취이신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