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6-11 11:46
20240610 신명기 강해 88강 신 16:9-12 칠칠절과 오순절 성령강림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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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6-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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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0 신명기 강해 88강 신 16:9-12 칠칠절과 오순절 성령강림

하나님 말씀, 신명기 16장 9절에서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신16:9~12)
“칠주를 계수할찌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 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아멘.

오늘 본문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유월절을 기준으로 하게 되면 사도행전에서는 오순절이 되고요.
유월절 다음 날 무교절 첫날을 기준으로 하게 되면 칠칠절이 됩니다.
유월절 다음날 15일이죠. 그날이 초실절입니다.
첫 수확을 하는 날을 기준으로 해서 칠칠절이 되고
그 칠칠절을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 대로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월절과 칠칠절,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초막절의 차이가 있어요. 절기도 차이가 있지만.
유월절은 가족 중심입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보게 되면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라는 것을 기념하게 하십니다. 그게 유월절이거든요.
물론 그 양의 고기의 양에 걸맞게 이웃도 이렇게 함께 먹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노비와 노비도 가족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성 중에 관한 레위인, 너희 중에 있는 객, 고아와 과부와 함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 하라 이렇게 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3대 절기는 굉장히 중요하죠.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사복음서에 칠칠절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순절도 사복음서에 나오지 않아요.
우리들 같으면
‘이렇게 중요한 절기를 사복음서에서 언급을 하면 얼마나 좋으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유월절도 나오고 초막절도 나오는데 칠칠절이 나오지 않아요.
그 칠칠절, 오순절은 사도행전 2장으로 가게 되면 나옵니다.

여기에서 이 오순절, 칠칠절은 무엇과 연결이 돼 있느냐?
근본적으로는 유월절과 연결이 되어 있죠.
우리가 잘 아시다시피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이 구출을 받았어요.
그러면 구출을 받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져서 그들은 어떤 나라가 되느냐? 하면
제사장 나라가 돼요.

제사장 나라의 특징이 뭐냐? 하면요.
타인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겁니다. 그게 제사장이거든요.
우리들은 민수기나 신명기나 여기에서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하는 외인들이나 아니면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하는 제사장은 좋겠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죽음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요.
그들의 섬김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들이 희생물이 돼요.

‘제사장 나라’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는
이스라엘 전체를 제사장과 같이 다루겠다라는 겁니다.
유월절에는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게 목적이죠.
구출한 그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증거하는데
피공로로만 살아가는 것도 있지만
피공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에 나오는 레위인들,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을 해야 되는 그 역할을 감당을 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26장 28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요.
영원한 속죄가 되시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피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라고 가르쳐요.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얘기만 하면 유월절밖에 없는 거예요.
유월절도 있어야 되고 칠칠절도 있어야 되고 초막절도 있어야 돼요.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는 이 세 절기가 다 담겨 있습니다.
세 절기가 다 담겨 있다라는 것은 인생 전체가 담겨 있다라는 거고요.

마 26장 26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잡수시는데,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 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사람들이 이 말씀을 굉장히 좋아해요.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피니까 이 피를 믿으면 우리는 구원을 얻겠네’라고
생각을 해요.
말은 맞아요. 구원은 얻는데 그 구원은 일부예요.
일부기 때문에 그 구원은 엉터리가 돼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그러면 당신은 이 말씀을 부정하느냐?’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이 말씀은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칠칠절의 완성이 되시고 초막절의 완성자가 돼요. 이 내용 모두를 담아야 됩니다.

그 모든 내용을 담게 되면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가
죄사함만 발생하는 자리가 아니라
십자가 자체가 심판도 일어나는 자리고
심판 속에서 언약의 피를 통하여서 죄 용서받는 자들도 만들어지는 언약의 피를 말씀하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갖고
‘언약의 피니까, 죄사함을 위한 언약의 피니까 이 피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만 강조해서 구원파가 생겼거든요. 큰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인간들이 구원을 욕망하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정확한 구원의 내용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신 내용을,
고스란히 다 뽑아서 인간의 행위를 다 배제하고
‘이 피를 믿으면 영원한 속죄 교리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그게 ‘언제 구원받았습니까?’ 하는 구원파들입니다.

그 구원파의 그 영향들을 오늘날 교회가 다 받고 있고 그러면서 이제, 그전에도 마찬가지지만
구원의 확신을 주는, 더 확신을 주는 방식들이 계속해서 등장을 하죠.
‘하나님의 교회’ 같은 경우에는 ‘교적부에 이름을 올리면 생명책에 기록된다’라고 하고요.

어떤 사람은
‘이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 교리를 믿기만 하면 생명책에 기록이 되고, 근데 그걸로 부족하고 이 영원한 속죄 교리를 전하는 자들에게 함께 동역을 한다면 생명책에 기록된다’라고 가르치고

어떤 사람은 14만 4천 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고시를 치죠.
예레미야 31장 33절에 나오는 새 언약을, 율법을 마음에 새긴다 라고 하니까 외워버려요.
제가 글을 하나 썼죠. 뉴럴링크라고.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다 14만 4천이 돼요.
연결해버리면 모든 사람이 만점을 맞아요. 거기에 AI까지 연결시켜버리면
이만희가 가르친 걸 다 뽑아내버립니다.

사람들의 문제가 뭐냐? 하면 그 모든 것들이 구원론이에요.
유대인들이 성경을 연구해서 영생을 얻고자 했거든요.
예수님은 “성경은 내게 대해서 전한다” 했어요.

분명히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출하셔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을 주셨는데
구원받은 그들을 통하여서 ‘여호와의 이름’을 증거하셨어요.
여호와의 이름은 심판주입니다.
강퍅케 할 자는 강퍅케 하고 긍휼히 여길 자는 긍휼히 여기는 자이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뽑았던 겁니다.

놀랍게도 발람 선지자에 의해서 이스라엘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는 자를 절대로 저주를 할 수 없는데
놀랍게도 이스라엘 내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친히 저주를 내리시고 심판하시는 그런 내용, 모순되는 내용.

제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횡설수설한다라고 하는데 성경 자체가 모순되는 내용이에요.
이스라엘 내부에서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지만
외부에서 보면 절대로 저주가 통하지 않는 그러한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이것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심판주 되심을 증거하셨어요.

지금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했으면,
‘아 그러면 이 피를 흘렸으면 이걸 믿으면 구원이 되겠네요’

사도행전 1장을 봅시다. 사도행전 1장 6절부터 보겠습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이 질문을 왜 하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5절에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이렇게 말하면 ‘성령? 성령과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 그게 아니라

그 전 절에, 4절에 보면요.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 약속하신 것을 ‘성령이다’ 이렇게 들어가는데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바”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에요.
그걸 그들은 곧장 연결시키는 거예요. 성령과.
성령이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지 몰라요.

그래서 약속하신 바가 자기들에게 온다고 하니까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 것이 이때입니까?’ 라고 묻는 거예요.
이 질문은 ‘이제 우리를 구원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에요.

조금 전에 마태복음을 보셨죠?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바 언약의 피니라”라고 하면
‘아 우리를 위한 언약의 피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돼야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사도행전 1장 7절입니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나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너희의 알 바 아니라, 이스라엘 회복이 너희 알 바 아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너희는 하나님 나라가 뭔지를 모른다라는 겁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드셨거든요.

근데 제자들은 성령을 못 받았으니까
‘자기들이 꿈꾸는 하나님 나라’를 계속 소망하는 거예요. 천국을 기다렸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알 바 아니요”
이건 성령이 임하게 되면 알 바 아닙니다. 이미 천국 백성이기 때문에
‘나는 천국 백성이야 나 이제 구원받았어’ 이런 것도 알 바가 아닙니다.

그러면 성령 받은 사람은 이미 자기 백성을 위하여 흘리신 그 피 속에 합류했기 때문에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
너가 구원받는다는 것도 말씀하지 않아요.
구원이 안 된다는 겁니까? 구원은 이미 포함돼 있어요.

그런데 성령 받은 자의 특징이 뭐냐? 하면
권능을 받는데 어떤 권능을 받느냐? 하면
스데반 집사님을 보면 돼요. 어떤 권능을 봤습니까?
어떤 핍박이 오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변론을 하거든요. 변증을 합니다. 논쟁을 벌이죠.
그러다가 궁극적으로는 돌에 맞아 죽는 그러한 사태까지 내몰리는 거예요.
그게 권능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서 드러나셨잖아요.
십자가로 승리하셨거든요. 십자가가 권능입니다. 그러한 권능을 받는 거예요.
복음을 전할 때는 이 권능이 필요한 겁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항상 약한 자로서 만물의 찌기처럼 여김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거든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전도해야 복 받는다. 전도해야 하나님 나라가 이제 우리에게 임한다’ 이런 사기를 치는데
‘되리라’라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되리라’는 이 말씀, 주님의 증인. 어떤 증인이냐?
그건 사도행전 2장 36절에 나오거든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해요.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우리는 ‘그분을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사도행전에 나와요.
그런데 살리신 장면은 이 땅에서 목격이 안 됩니다.

이 땅에서는 목격이 안 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으로 이 땅에서는 끝이 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그 모습이 승리하신 모습이 돼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십자가를 전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인정하자’가 아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인정하면 그 주가 되셨기 때문에
주님의 통치가 누구처럼 될 거라고 예상하느냐? 하면요.
로마의 황제처럼 통치할 거라고 예상을 해요.

그런데 주님은 어떻게 이 세상을 통치하느냐?
권능을 받은 자도 이 세상에 어떻게 살아갑니까?
십자가의 피를 전하기 때문에 핍박을 받죠.
주님이 어떻게 이 세상을 통치하느냐? 하면
십자가의 능력으로 통치를 해요.

십자가의 능력은 아까 마태복음 26장 28절에서 봤듯이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
그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 계속해서 작동하는 방식으로 통치를 하는 겁니다.
그게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현장이 되는 거예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기에 오순절 날 성령을 주셔서
제사장 나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드셔서
나의 구원을 챙기는 자들이 아니라
십자가의 증인으로서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주의 증인으로 삼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의 증인이기에 사도바울처럼
‘내 혈육이 구원을 얻는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라고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