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7-02 23:22
20240702 신명기 강해 98강 신 17:17-20 군림하는 왕과 섬기는 왕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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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7-0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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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2 신명기 강해 98강 신 17:18-20 군림하는 왕과 섬기는 왕

하나님 말씀, 신명기 17장 18절에서 20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신17:18~20)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아멘.

왕 위에 오르면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
레위 제사장이 갖고 있는, 대제사장 앞에 있는 율법서를 두루마리 책에 다시 (필사라고 할까요?)
적어서 그 율법책에 율법의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왕이 되어서 해야 될 일은 율법서를 곁에 두고 여호와 경외하기를 날마다 배워야 된다라는 겁니다.
날마다 정도가 아니죠. 아침, 저녁, 길을 다닐때든지
항상 이 율법을 읽고 듣고 그 규례를 지켜 행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 왕의 위치라는 것은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같은 민족을 이야기한다면 그 민족들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고 고귀한 사람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을 세울 때는
백성 중,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왕을 세울 것을 말씀을 하셨어요.
그 이유는 이 말씀 때문입니다.
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그들보다 더 고귀하거나
아니면 그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자가 아닌 겁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율법의 모든 말씀과 규례를 지켜 행하면 알 수 있다라는 거예요.
명령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철저하게 율법대로 살아간다면,
이스라엘 중에서 자손의 왕위가 장구하리라, 그 날이 장구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지금 이 왕이 해야 될 일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말씀을 하셨는데
이 정도로 말씀하시면 왕이 되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을 늘 배우고, 읽고, 그것을 지켜 행해야 되는 자리가 왕이에요.
왕이 있으면 필사한 그 율법책을 옆에 두고 계속 읽어야 돼요.

사람들이 왕이 되고 싶은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왕이 되고 싶잖아요.
선악과를 먹은 인간들이 왜 선악과를 먹었습니까?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되면 무엇이 좋습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라는 거예요.
라멕을 보더라도 그렇잖아요.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왕이거든요. 왕.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달라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왕이 과연 이러한 율법서를 곁에 두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그러한 태도를 취하느냐?
아닙니다. 다윗을 보더라도 율법서를 옆에 안 둡니다.
율법서를 뒀다면 이웃의 아내를 탐낼 수가 없죠.
물론 알기는 알지만 밧세바를 취할 그러한 태도를 보일 수가 없을 겁니다.
물론 알더라도 인간이라는 자체는 그 앎이 이 몸의 움직임을 감당을 못하게 돼 있죠.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곁에 안 둡니다. 율법을 곁에 둔다는 것은 귀찮은 거예요.
우리는 에녹을 좋아하잖아요. 하나님과 동행한 그 세월, 300년의 그 세월이 얼마나 부럽습니까?
그런데 그 말씀의 내용을 지금 왕에게 붙여놓은 거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이 옆에 있어요.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솔로몬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 왕도 율법을 곁에 두고 읽고 행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 이방 여인들을 많이 취하여서 예루살렘을 우상숭배의 집산지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열왕기하 22장 8절에 보면 여기에 아주 유명한 왕이 나오거든요. 요시아 왕이라고.
이 왕은 이미 앞서 예언된 왕인데요. 이 시대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8절에 보면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율법책을 도대체 어디에 집어넣어놨길래 이제야 찾았다라는 겁니다.
이 요시아 왕이 남유다의 18대 왕이거든요. 조금 있으면 남유다도 멸망당합니다.
그 아들들, 여호아하스, 그리고 여호와김, 그다음 여호와긴 그렇게 하면서 시드기야로 끝나거든요.
이때에 율법책을 발견하였고

(완하22:8 하반절~13 상반절)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복명하여 가로되 왕의 심복들이 전에 있던 돈을 쏟아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였나이다 하고 또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의 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신 아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의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이렇게 지시를 합니다.
이 율법 책을 읽고 이 요시아 왕이 옷을 찢고 통곡을 하죠.
율법 책에는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에
다른 신에게 분향한 그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여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노를 내리시고 심판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이 요시아 왕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면서 통곡했기 때문에
이곳에 내리는 그 재앙에 대해서 요시아 왕은 보지 않을 것이라 그렇게 선지자가 알려줍니다.
그러니 이 신명기 17장 18절 이하에 나오는 이 말씀을
다윗 왕도 마찬가지고 그 위에 왕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
그럴 정신이 어디 있습니까?
왕도 하나의 직업이잖아요. 일종의.
사업을 한다 생각해 봅시다. 사업체가 자동으로 돌아간다면야 성경 읽을 시간이 있지만
사람도 관리해야 되죠. 교회 올 시간도 없습니다. 기도할 시간도 없죠.
기도할 시간에 돈 계산해야 되고 기도할 시간에 뭘 할 건지를 계획을 해야 되고...

왕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우리는 이 성경을 보면서 ‘왕들이 왜 이렇게 말씀을 순종하지 않느냐?’
우리 자신을 보면 돼요. 할 일이 없을 때는 성경을 열심히 봐요. 뭐 퇴직을 했다든가 할 일 없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심심하니까 성경을 배우고 따라다니지만
바쁜 사람들은 말씀을 볼 겨를이 없어요.
물론 그런 중에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긴 있습니다마는 만만치 않습니다.
아이 3명 키운다 생각해 보세요. 성경 볼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아이가 5명 된다 생각해 보세요.

왕이 한 나라의 왕이잖아요. 왕권을 유지하려면 얼마나 머리가 아프겠어요?
여기에 말씀이 들어온다 생각해 보세요.

예레미야 36장을 보면 이 요시아의 아들이 왕이 되는데 요시아의 아들이,
여호아하스가 그다음 왕이 되는데
이 여호아하스는 바로느고가 애굽으로 잡아가서 그곳에서 죽습니다.
이 요시아 왕도 나름대로 개혁을 했는데 앗수르 왕이 애굽을 친다고 하니까
요시아 왕이 앗수르 왕을 돕는다고 나서다가 죽임을 당해요.
그래서 신하들이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웠는데
예루살렘에서 왕 노릇 못하게 하고 애굽으로 잡아가버립니다.

그리고 바로느고가 대신하여서 엘리야 김을 왕으로 세우는데
그 엘리야 김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꿉니다. 그 여호와김이 왕으로 있을 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을 했는데요. 예레미야 36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 여호와김 왕은 아버지가, 요시아 왕이 율법을 읽을 때 통곡한 걸 알아요.
안다면 뭔가 말씀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되는데 그러한 태도가 전혀 없습니다.
여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렘36:1~3)
“유다 왕 요시아의 아들 여호와 김 사년에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아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곳에 기록하라 유다 족속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앙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킬듯 하니라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사하리라”
신명기 율법을 보면 복과 저주를 앞에 두었으니까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시는 말씀도 다르지 않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이기 때문에 선지자들이 하는 말은 율법에 근거하여서 하는 말이거든요.

(렘36:4~8)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예레미야가 바룩을 명하여 가로되 나는 감금을 당한지라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은즉 너는 들어가서 나의 구전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집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날 듯하니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아 분이 크니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무릇 선지자 예레미야의 자기에게 명한대로 하여 여호와의 집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하니라”
궁중 감옥에 갇혀 있거든요. 예레미야가.
그래서 바룩에게 기록하게 하여서 성전에서 낭독하라고 합니다.

(렘36:9절) “유다 왕 요시아의 아들 여호와김의 오년 구월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 지라”
이것은 바룩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낭독한 이후에
금식이 선포된 거예요. 왕이 금식을 선포한 건 아닙니다.

(렘36:10~24) “바룩이 여호와의 집 윗뜰 곧 여호와의 집 새문 어귀의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있는 예레미야의 말을 낭독하여 모든 백성에게 들리니라 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 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방백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사마야와 사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방백이 거기 앉았는지라 미가야가 바룩의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 들은 모든 말로 그들에게 고하매 이에 모든 방백이 구시의 증손 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어 이르되 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한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오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그들에게로 가매 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우리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의 귀에 낭독하매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고하리라 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그 구전하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뇨 청컨데 우리에게 이르라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베풀었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베풀었다는 거죠)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이에 방백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로 왕의 귀에 고하니(이들이 예레미야와 이 바룩을 왕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는 거예요)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서 모든 방백의 귀에 낭독하니 때는 구월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여후디가 삼편 사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로(작은 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왕과 그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그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그래서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합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이들이 이것을 그들에게 낭독하면 돌아오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지만,
이 여호와김은 아버지 요시아가 행한 일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왕이 갈 길이에요.
‘이 여호와김이 이런 말씀을 듣고 칼로 그 기록한 두루마리 성경책을 잘라서 불에 태우지 않았다면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 하는 그런 기대를 갖지를 마세요.
우리도 왕이 된다면 똑같아요. 상황이.

이게 지금 신명기 말씀을 주면서 왕이 행해야 될 그 말씀을 받은 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율법 자체는 날려버리고 이미.
요시아왕 때 있지만 그건 어디 갔는지도 모르고
예레미야를 통해서 다시 기록한 그 말씀을 들려줌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습니다.
결국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는 거예요. 말씀대로.

자 이렇게 된다면, 시간이 흐르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이런 말씀을 읽는 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할 거냐? 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이 포로에서 돌아왔고 돌아온 그들이 70년 만에 돌아왔고
70년이 70이레로 바뀌었거든요.
‘칠십 이레를 기다리는 그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떤 태도를 취할 거냐?’ 라는 거예요.

재밌는 것은 당시에는 왕이 없죠. 왕이 없고 누가 이 왕처럼 행세를 하느냐? 하면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그들이 심판주 행세를 합니다.

그들의 태도는 성경을 갈기갈기 찢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꼼꼼하게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고, 적용을 어떻게 제대로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를
연구하면서 그들은 말씀대로 살았다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들은 제대로 된 그리스도죠.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그 왕이 온다면
그들이 기다리는 천국,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율법의 완성자로서 오셨거든요.
정말 이 율법이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였고
그 증거한 그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분으로서
자신을 통하여서만 아버지가 계시가 되고, 자신을 통하여서만 아버지를 알 수 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기다리는 왕,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기다리는 왕은 어떤 왕일까요?
십자가 지는 왕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나무에 못 박혀 죽는 그러한 왕을 이들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왕일까요?
말씀대로 잘 지켜서, 율법대로 잘 지켜서, 강력한 국가를 이루어서
율법대로 지키고 살고 있는 자신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게 하여서 자신들이 영광을 받는,
그러한 천국을 그들은 소망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다고 하니까 멱살 잡고 안 된다라고 말리는 거예요.
그게 제자들의 모습이고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입니다.

이 율법의 완성자는 예수님이고요.
그 완성의 모습은 십자가로서 드러내신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주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말씀의 완성자이시기에 십자가로 그 완성을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완성하셨기에 죽임 당하신 왕이 그 왕의 피로 자기 백성을 새롭게 창조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피 흘리심을 자랑하는 주의 백성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