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7-08 23:26
20240708 신명기 강해 100강 신 18:6-8 지방 레위인이 중앙성소 제사장으로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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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7-0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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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신명기 강해 100강 신 18:6-8 지방 레위인이 중앙성소 제사장으로

하나님 말씀, 신명기 18장 6절에서 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신18:6~8)
“이스라엘의 온 땅 어느 성읍에든지 거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 거한 곳을 떠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 이르면 여호와 앞에 선 그 형제 모든 레위인과 일반으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그 사람의 응식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 상속 산업을 판 돈은 이 외에 그에게 속할 것이니라”아멘.

오늘 본문은 상당히 어려운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바꾸기 때문에 그래요. 본래

민수기 3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민수기 3장 5절에서 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위지파로 나아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수직하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장막에서 시무할지니라”
봉사하는 겁니다. 누가? 레위지파는.

제사장들이 하는 일이 따로 있고요. 아론의 후손들은 제사장들이죠.
제사장들을 도와서 일종의 보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보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레위지파예요.
물론 이들도 속건제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12지파가 살고 있는 곳에 흩어져서 생활하게 되는데
48곳에 흩어져 생활하게 되죠. 6곳은 도피성인데요.

48곳에 흩어져 있으면서 이들은 아마 당번을 정했을 수도 있고요.
자기 순서를 따라서 중앙 성소에 와서 봉사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라고 생각을 하지만
우리가 아시다시피 여호수아, 사사기로 넘어가면 소견에 옳은 대로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립니다.

사무엘 상을 보게 되면
엘리 가문이 엘리에셀 가문이 아니에요. 제사장 가문이 아닌데, 이다말 가문이에요.
그런 가문이 대제사장 일을 하고 있고요.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율법대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분명 레위지파는 제사장이 아니라고 했거든요.
제사장 지파는 이 아론의 후손들만 제사장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러면 우리들이 율법을 이렇게 지금까지 신명기 18장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레위 지파는 제사장이 될 수 없지 않느냐?’ 그건 당연한데

오늘 본문을 보면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충격적이죠.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면서 ‘레위지파가 제사장이 된다?’
이런 것들은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되게 높아요. 한번 봅시다.

신18:6 “이스라엘의 온 땅 어느 성업에든지 거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 거한 곳을 떠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 이르면 여호와 앞에 선 그 형제 모든 레위인과 일반으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그 형제 레위인이 누구냐? 하면 제사장이에요.
그들과 똑같이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러면 제사장 역할과 거의 동일한 역할이에요.
왜냐하면 그들이 받는 응식은 제사장이 받는 응식과 똑같기 때문에 그래요.
물론 자기가 원래 살고 있던 곳의 산업을 판 것은 자기 소유가 되고요.

하나님께서 왜 일일이 이런 세세한 것들을 언급하시느냐? 하면요.
인간의 관심은 돈에 있어요.

만일에 중앙성소에 가서 내가 레위인인데 거기서 제사장들과 같은 일을 하고자 한다면
자기가 원래 받아왔던 십일조나 이런 것들이 있겠죠. 개인 소유들이.
그런 것들을 팔아서 자기 소유가 되고, 동시에 중앙성소에 가서 제사장 역할을 하면
다른 제사장들이 받는 그런 화목 제물의 앞다리라든가 이런 것들을 다 받을 수 있거든요.
십일조의 십일조도 받을 수 있고요.
그러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같으면 ‘이 정도 같으면 내가 레위 지파라면 중앙 성소에 가서 제사장 역할을 감당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왜? 돈이 되잖아요. 원래 받던 것에서 더 플러스가 되는데.

문제는 이 ‘약속의 땅’이라는 곳이 그런 땅이 아닙니다.
사사기로 가게 되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 때문에 십일조도 안 와요.
십일조가 안 온다는 것은 레위인들이 십일조로 받은 10분의 1을 제사장에게, 하나님께
바쳐야 되잖아요. 그것도 없어지는 겁니다.
그럴 경우에 어느 누가 제사장이 되고 싶겠어요?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민수기 16장 때문이에요. 민수기 16장을 한번 봅시다.
짧은 본문이지만 성경 전체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16장에 보면 우리들이 잘 아는 그 고라 자손들, 민16:1~3절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이 르우벤은 장자고요. 나머지는 고핫의 손자니까 레위의 후손들입니다. 같은 혈통이에요.
올라가면 고핫이라는 조상이 같이 있는 거예요.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의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의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느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자기들도 얼마든지 대제사장이 될 수 있다라는 거예요.
제사장도 될 수 있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기에 땅을 벌려서 불로써 그들을 심판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다음에 어떤 일을, 어떤 율법을 주시겠느냐?
우리의 기대는 ‘절대 안 된다’라는 거잖아요.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레위인들이 중앙성소에 가서 제사장들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섬기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말씀을 하신 거예요.
인간의 본심, 인간의 악마성이죠. 악마성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에 거기에 장단을 맞춰요.
율법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워요.
하나님께서 장단을 맞춘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죄악이 심각하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앞서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무도,
어떤 레위인도 자신이 간절한 마음으로 중앙 성소에 가서 제사장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지금 각 지역에 흩어져 살아가는데
십일조가 안 들어오는데 중앙성소에 가봤자 생활이 더 어려울 거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 신명기 18장 6~8절 말씀을 사사 시대에는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
오늘날도 성경 해석이 관건이잖아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이 이단이냐 아니냐도 갈라지고요.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이 갈라지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본문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 하면
사사기 17장에 보면 미가 집안이 나오는데 이 집안의 관심은 딱 하나예요. 돈이에요.
오늘날로 말하면 부자 되는 거죠. 흔히 대한민국을 표현하면 기복신앙이죠.
미국의 그 무슨 신학입니까? ‘잘 되고 축복받고...’ 수정교회 있잖아요.
결국은 집안끼리 싸워가지고 카톨릭 교회에 팔렸잖아요. 그 엄청난...
축복, 축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도 섬기고 드라빔도 만들고 신당도 만들고.

여기에 주목할 대목이 5절이죠. 사사기 17:5절
“이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거든요. 제사장이 있는 옷. 이 에봇을 왜 만들었냐? 하면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이렇게 이야기해요.
‘사사 시대니까 성경을 모를 거라’ 생각하죠?
인간들은 그렇지 않아요. 오늘날 교인들도 마찬가지죠.
성경을 알기는 아는데 자기가 필요한 성경 구절만 알아요. 복 받고 싶은 내용을.

똑같아요.
신명기 18장 6~8절 말씀을 잘 알고 있어요.
잘 아니까 해석을 하는 겁니다.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면
‘레위인들이 간절히 원해서 중앙 성소에 가서 제사장 일을 할 수 있다면
우리 집안에서도 간절히 원하면 얼마든지 제사장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라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이 에브라임 지파잖아요.(삿17:1) 장자권을 부여받았거든요.
이 해석이 오늘날 큐티하는 사람의 해석과 똑같아요.
QT하고 적용하는 거 보면요 지 마음대로, 소견에 옳은 대로 하거든요.
자기의 에너지를, 힘을 이렇게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적용을 하잖아요.
‘오늘 하루도 힘 있게, 능력을 주시고...’ 똑같은 겁니다.

자기 한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아서 에봇을 입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삿17:5)
자 이렇게 소견에 옳은 대로 하면 저주가 내려집니까? 축복이 내려져야 됩니까?
우리가 알기로는 율법을 위반했으니까 저주가 내려야 되잖아요.
그런데 미가 집안이 떼부자가 됐어요.
와 이것만 보더라도 ‘예수 믿고 복 받았다’라는 게 저주라는 걸 알아야 되는데

그런데 이 모습을 단 지파가 보니까 부러운 거예요.
자기들은 아직까지도 거할 곳을 찾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미가 집안이 부자가 된 이유를, 연유를 찾아보니까
처음에는 이 한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았는데 나중에는 레위 소년이 왔잖아요.
머리가 돌아가는 겁니다.
‘우리 집안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는데 이 정도 부자면, 율법에 더 가까우면 더 큰 부자가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레위 소년을 자기 집안의 제사장으로 삼았는데 떼부자가 됐어요. 율법을 위반했는데...
자기 쪽에는 율법 위반이잖아요. 성소에만 제사장이 있는 거니까.

부자가 되니까 신이 난 거죠. 이게 저주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 못해요.
이 모습을 단지파가 본 거예요.
그러니까 ‘니가 한 집안의 제사장이 될래? 아니면 우리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될래?’
연봉을 누가 더 많이 주겠어요?
교인 10명 있는 데가 연봉을 많이 주겠습니까? 10만 명 있는 데가 많이 주겠어요?
상식적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돈벌이로 나서는 거예요.
제사장이든 뭐든 모두가 다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겁니다.

지금 이것이 신명기 18장 6~8절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에요.
제가 이 얘기를 말씀드린 이유는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나 목사들이 성경을 해석할 때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해요.
‘복을 받으면 천국 가면 된다’라는... 무조건 그런 방식이에요.
‘아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으니까 하나님 뜻대로 내가 했지 않았느냐’
이게 복이 아니에요. 이게 저주입니다. 저주.

‘그러면 왜 율법을 위반했고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집안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레위 사람을 자기 집안에 제사장으로 세웠는데 이렇게 복을 주십니까?’라고 하면
그것은 ‘그들이 저주받았다’라는 것을 확정하기 위한 주님의 조치예요.

우리는 ‘율법대로라고 하면 율법을 어겼으면 축복을 안 줘야 되지 않습니까?’라는 논리를 갖잖아요.
주님은 그런 인간의 논리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런 룰을 만들면 하나님께서는 그 룰을 깨버려요.

자 그러면서 지금 이 신명기 18장에 나오는 말씀을 어디에서 하나님께서 깨어버리느냐? 하면요.
사무엘 상에 나옵니다. 사무엘 상은 우리가 잘 아시다시피 엘리 가문이 엉망진창이죠.
그 엘리 가문의 심판에 앞서서 엘가나 집안이 먼저 엉망진창이 된 거예요.

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따라 축복과 저주를 내린다라고 하니까
브닌나의 입장에서는 자녀가 있으니까 자녀가 없는 한나는 저주받은 자가 되죠.
그래서 저주받은 한나에 대해서 굉장히 멸시하는 겁니다.
오늘날 대형 교회에 가면 가난하면
‘너 저주받았지’ 이런 말을 노골적으로 하잖아요. 교회에서 똑같은 거예요.

그러면 한나가 저주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저주받은 것은 사실인데
문제는 저주받은 자에 대해서 그 타인이 어떻게 평가를 하느냐? 가 중요한 거예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린다면 긍휼을 베풀어야 되는데
‘너 저주받았지?’ 라고 초롱을 하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나가 이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잖아요.
기도를 할 때 이 한나가 ‘자식을 주신다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라고 기도를 해요.

지금 엘가나가 어떤 집안인가? 하면요. 레위 지파입니다. 레위 족속인데
이 엘가나는 제사장 계열이 아니에요. 이스할의 후손입니다.
아론의 계열이 아니에요.

그러니 신명기 18장에 나오는 이 말씀을
이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실제로 말씀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만드시는데
만드시는 방식은 사무엘이 원하는 게 아니었죠. 간절히 원한 게 아니에요.
그 엄마가 원한 겁니다.
엄마가 원해서 율법대로 사무엘이 에봇을 입게 됩니다. 제사장이 아닌데.
성전에 올라가서 이 에봇을 입게 되고,

사무엘이 에봇을 입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엘가, 제사장 집안이 만군의 여호와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 그러한 사태가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말씀을 이렇게 성취해 나가는 거예요.

인간이 율법을 지킬 수가 없어요.
인간이 말씀을 보면서 율법을 지키는 방법은 자기가 복 받는 방식밖에 없어요.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대항하고 위반한 자들 속에서
‘이 말씀이 실제로 이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따라서 신명기 18장 6절에서 8절에 나오는 이 말씀의 실제는 사무엘이 되죠.
사무엘의 등장은 이스라엘의 심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잖아요.
누구의 반차를 따라오셨다고 하죠?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라 왔다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그렇지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라왔으니까 당연하지’ 라고 생각하는데

‘멜기세댁의 반차’라는 것이 본래는 약속에 없어요. 약속에는 없잖아요.
대제사장은 레위 계통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종말 때 대제사장은요. 돈 주고 샀어요.
자기 마음대로 대제사장이 된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마음대로 하시는가?
레위 계통을 따라오는 게 아니라
마음대로는 하시는데 말씀을 따라서,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라오셔서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겁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는 것은, ‘나무에 달렸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라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서 모든 인간이 저주받은 자로 확정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그분이 심판주가 되셔서
그 피로 자기 백성을 새롭게 만드는 일에 나서는 겁니다.
십자가가 이 땅에서 세워졌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것은
어떤 인간도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라는 거예요.
모두가 다 지옥 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천국 가는 자들이 만들어지는가?
그 피를 자랑케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새로운 피조물로, 자기의 피로 만드시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인간이 율법에 대한 해석을 함에 있어서
자기 축복이 우선임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알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다 이루셨다라는 것은
인간이 하는 모든 생각과 성경 해석이 악마적이라는 사실을 확정하시고
주님의 피로만,
그 피를 자랑케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오늘도 말씀을 들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인생이 십자가의 피만을 자랑하는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