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9-10 23:26
출애굽기 109강 출 23:20-22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주의 사자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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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0Eh-a9zt-o

관리자 21-09-1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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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09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주의 사자

하나님 말씀, 출애굽기 23장 20절에서 22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출23:20~22)
2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21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22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나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앞장세워서 앞서서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신다.
그러시면서 그 길에서 이스라엘에 가는 길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는 그러한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21절에 보면 그렇게 하긴 하겠는데

(출23:21)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청종하라‘ ’청종하면, 나의 사자가 길에서 지킬 것이고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 허물을 여호와의 사자가 용서치 않는다‘ 그렇게 말씀하고 계세요.
그런 이유가 뭔가 하면
여호와의 이름이 그에게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시는 일이 그러하다라는 겁니다.

두 가지 요소가 나왔죠.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서서 인도하고 그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고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신 그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는 일이
여호와의 사자가 하는 일 중에 하나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허물이 있다면 허물을 사하지 않고 심판해 버리겠다는 겁니다.
그 심판하는 권세가 있는 분이 바로 지금 여호와의 사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만일에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면
나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이 말씀의 의미는 간단하죠.
’네가 만일에 그 말을 청종하지 않고 내가 말한 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의 원수가 되겠다‘라는 말씀을 지금 하고 계시고
’청종을 하면 니 대적에게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대적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애굽 땅 종되었던 곳에서 인도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시는 율법입니다.
명령이죠.
그러면 이 말씀을 듣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할 거냐?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데요.
우리가 앞부분의 내용들을 다 빼버리면 이 말씀을 독립적으로 있다면 그렇죠.
여호와의 사자를 앞장서서 보내시고 앞서 보내셔서 우리의 길 가운데 우리를 보호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곳까지 인도하시네요.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가 청종하면 인도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만일에 청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대적이 되셔서 우리를 치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 내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했느냐?가 중요하죠.
모세에 대해서 호의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바로와 그 집 안에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셨어요.
바로는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죠.

그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말을 들었느냐? 라고 할 때는 듣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출애굽기 8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네 번째 재앙, 피 개구리 이 파리 재앙,
파리 재앙을 내리실 때 고센 땅에는 내리지 아니하시고
나머지 바로의 집과 애굽 땅에 재앙을 내리시는데 거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 했기 때문에 재앙을 내리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지 않아요.

바로 같은 경우에는 재앙을 이렇게 당하는 것이 당연하죠.
여호와의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왔잖아요.
나온 이후에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그 길, 홍해 길이죠.
홍해가 앞에 가로막혀 있고 뒤쪽에서 바로의 부대가 이렇게 쫓아올 때 출애굽기 14장에 나오는데
쫓아올 때 이들이 원망을 합니다. 그 원망을 하면 이 불순종의 모습이거든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 바로의 군대처럼 심판을 하셔야 되는데
바로의 군대는 홍해 바다에 심판을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사람도 죽지 않았어요.

그 이후에 그들을 마라라는 곳으로 인도함을 받았을 때 그곳에 물이 있었어요.
그러자 이들이 또 원망을 했습니다. 원망을 한다는 것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불평이 가득한다는 겁니다. 불만이 가득하고
그러면 이들도 이 바로에게 내렸던 그런 제앙처럼 동일하게 내리셔야 되는데 안 내렸다라는 거예요.

방금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23장에 보면 출애굽기 23장 21절 22절에 보면
내 말을 잘 듣고 청종하면 내가 나의 대적이 여기 보면,
내가 니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이스라엘의 원수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데
듣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시고 원수가 된다고 말씀하시고 계시거든요.
그러하다면 그러한 모습으로 대적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야 되는데 나타나지 않았어요.

16장에서는 이 떡을 배불리 먹고 싶다라고 또 원망을 하거든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만나를 내려주시면서 법을 주시죠.
’내일 아침까지 남기지 마라‘ 그런데 남겼어요.
그런데 남겼을 때 그 남긴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심판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죽지 않았어요.

그러면 여기만 그러한가? 그 안식일 날은 거두지 말라 했거든요.
그런데 그 말도 안 들었어요.
청종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셔야 되는데 심판을 안 했습니다.
책망만 하죠.

17장에서는 르비딤에서도 물이 없다고 다투는 그러한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죽은 사람이 없어요.

자!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지금 하나님께서
’나의 사자를 너 앞서서 보낼 텐데 내가 예비한 곳으로 나의 사자가 너를 인도할 것인데
잘 청종하고 지켜라
만일에 청종하고 지키지 아니하면 그 나의 사자가 너의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러면서 ’내 말을 청종하지 않고 내 말을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의 대적이 되겠다‘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잖아요

이 말씀이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히겠느냐 이 얘기입니다.
앞서서 자신들이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들을 쳐버렸으면
심판하셨으면 약간이라도 두려움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래야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지켜야지 순종해야지 이런 생각을 가질지 모르지만
앞서서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이들을 치지 않았거든요.
왜 치시지 않았느냐? 그 이유는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 침을 당하지 않았다라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이 지금 그들 속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청종하지 아니하면 허물을 사하지 않는다‘ 했거든요.
허물을 사하지 않으신 내용이 그들을 인도하시는 과정속에 담겨 있다라는 얘기예요.
그런데 그들 눈에는 그게 안 보이죠.

인간들은 여기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거기에 여호와의 이름이 있다 했거든요.
그러면 여호와의 사자가 하시는 일은 딱 한 가지예요.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일뿐입니다.
그 여호와의 이름은 죄 있는 자는 심판하고 죄 없는 자는 구원하는 그러한 일을 하는 거예요.
그 여호와의 이름이 이 여호와의 사자 위에 있다라는 것은
이 여호와의 사자가 하는 일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와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자손이잖아요.
이스라엘의 자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자신들에게 이룰 것이라는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어요.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은 그 약속을 우리에게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되는 겁니다.
들어보면 좀 맞는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그 약속이라는 것이 누구를 위해 있느냐?라고 할 때는
이스라엘의 자손이 자신들을 위해서 있다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결국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여호와의 사자가
이들의 허무를 사합니까? 사하지 않습니까? 사하지 않죠.
신명기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다 여호와의 하나님이 손으로 다 진멸해 버립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이스라엘이지 이스라엘을 위한 여호와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여호와의 사자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느냐 하면
내가 예수님을 믿었으니까 죄를 용서받았으니까 나는 구원받았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스라엘도 지금 마찬가지입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았을 때 그들은 자기들이 불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자신들을 구원했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 여호와의 이름이 자신을 위한 이름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 말씀 자체가 ’청종하라, 허물을 보지 않는다, 너의 대적이 나의 대적이 될 것이다‘
아니면 ’내가 너의 대적이 될 것이다‘ 이런 말씀들이 장난으로밖에 안 들리는 겁니다.
어차피 구원했잖아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했다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그 구원이 나를 위한 구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성경을 읽어도
’어떻게 하면 나를 위로하고 나에게 복을 줄까?‘ 그런 식으로 읽어 대죠.
십자가가 밝혀 보이는 죄인으로 말씀을 보지 않습니다.
교회에 가도 설교를 그런 설교를 듣기를 원치 않죠.

오늘 하루도 내가 시간을 내서 왔는데
일주일 동안 돈 번다고 고생했는데 위로를 해주고 치료를 해 주시고
그리고 나의 믿음을 더욱더 확고하게 해주셔서 이 돈 벌러 갔을 때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내게 해달라고
어려움 속에 사는 자체가 축복인데 성도는 이 십자가 자체를 자기 구원용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라는 겁니다.

똑같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당했다라고 읽어도
오늘날 교인들은’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구원했으니까
이제 우리는 구원받았으니까 괜찮아요‘ 이래 가는 거예요.
괜찮다는 거 말은 맞아요. 주님이 구원했으면.

근데 그 구원이 주의 이름을 위한 구원이거든요.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신 그 주의 이름,
주의 이름을 위한 구원이라면 이 구원받은 인생은 어떻게 살 거냐라는 겁니다.
’그 어떻게 살 거냐‘를 지금 오늘 본문에서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예요.
시편 23편을 한번 보겠습니다. 아주 유명한 부문인데 다윗의 시예요.

(시23: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아주 듣기 좋은 이야기잖아요. 그러면 이게 언제를 이야기하는 겁니까?
언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았어요?
사울에게 쫓기고 나중에는 왕이 되어서 잠시 한가하게 놀다가
죄를 범하여서 이 나단 선지자로부터 지적받고 아들로부터 모반 당하고
아무튼 뭐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심을 인도함 받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없어요.
그 자체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내용이에요.
푸른 초장으로 누이시는 내용이라는 겁니다.

주님의 희생이 자기를 덮친 거예요. 주님의 은혜가 자기를 덮친 겁니다.
그것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할 게 뭐가 있어요? 주님의 용서함이 자기를 덮쳐버려는데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갑니까?

(시23:2하)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방식이
사물엘에 대해서 기름 부음을 받은 이후에
사울왕으로부터 미움받고 쫓기고 쫓겨서 왕의 자리에 오르지만, 그것도 간단하지 않죠.
곧장 자기가 모든 군권을 장악하지 못합니다.
요압이라는 장군, 그가 완전히 권력을 또 장악하고 있고
그 이후에는 아들로부터 모반 당하고
그러한 어떤 모습 자체가 무엇인가라고 할 때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는 모습이예요. 여호와의 이름이죠.

여호와의 이름에는 심판이 있고
놀랍게도 다윗에게는 그 심판을 대신 받은 희생 제물이 있어요.
그 희생 제물로 인하여서 다윗은 용서함받은 자로서
은혜를 입은 자로서의 모습이 바로 의의 길로 인도함을 받는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 살아가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거예요.
그러면 성도가 당하는 모든 일들은 주의 이름을 위한 일입니다.
달리 말하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을 증거하는 삶이라는 거예요.
나를 위한 구원 자체가 없어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그 피만을 자랑케 하기 위해서 우리의 인생을 십자가만 밖이 보이도록
우리의 삶을 죄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거예요.
그러하기에 성도는 십자가만을 자랑하죠.

그러하기에 어떤 일을 당하느냐?라고 할 때는
다윗처럼 쫓기고 미움 당하고 어려움 당하고
외로운 그러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나의 이름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위한 성도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진 일을 증거하기 위한 인생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의 이름을 저희 위에 덮으시고 그러하기에
우리의 인생을 주 이름만을 증거하는 자랑하는 인생으로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십자가가 밝히고 보이게 하시고
주께서 의의 길로 인도하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corded by 구 성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