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9-11 22:24
출애굽기 110강 출 23:23-24 하나님의 사자의 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  
https://youtu.be/l4322kFQ6i0

관리자 21-09-1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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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10  여호와의 사자의 일

하나님 말씀, 출애굽기 23장 23절에서 24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출23:23~24)
23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24 너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소위를 본받지 말며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을 타파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를 이스라엘 백성 앞에 보내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기로 하신 약속의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겠다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곳으로 인도하시는 최종 목적지에 살고 있는 히브리 사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들을 끊어버리겠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약속의 땅에 살고 있는 족속들을 다 멸절하시겠다’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누가?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 앞서 가서.
여호와의 사자가 하는 일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이시기 때문에
‘약속의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을 멸절시키겠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경우에
그곳에는 그곳의 족속들이, 본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남아 있겠느냐라고 할 때는
남아 있지 않죠. 이 말씀에 의하면. 그런데 24절 말씀을 보면

(출23:24) 너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소위를 본받지 말며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을 타파하고

뭔가 앞뒤가 안 맞아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사자를 앞장서 보내셔서 그들을 진멸해 버리면 멸절해버리면
그들의 신을 숭배하는, 뭔가 본 게 있어야 그들의 신을 숭배할까 봐.
그리고 그들이 이방 풍습을 따라서 살아가는 그 풍습을 눈으로 목격하고 경험할 때
그들의 행위를 따라 할 거 아니에요.
무슨 얘기인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사자를 앞장서 보내셔서
약속의 땅에 거하고 있는 그 민족들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멸망시켰다‘라고 해버리면
24절 말씀이 필요 없어진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면서 여호와의 사자를 앞장서 보내셔서
그들을 멸절하시겠다라고 하셔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면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고 섬기지 말며 그들의 소유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훼파하고 그 주상들을 다 타파하라.

그러면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교인들은 목사들은.
흔히 개혁주의에서 이런 얘기를 해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시는 것이 100%고 인간의 행위가 100%다‘.
그 말을 들어보면 맞는 말 같거든요.
성경을 읽어봐도 맞는 말 같은데 완전히 엉터리예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눈에 안 보이죠.
인간이 하는 일은 눈에 보이거든요.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은 결국은 행위를 주장하고 싶은 겁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사람을 통해서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약속의 땅에 가는 그 민족들을 멸절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 들어가서 이 일에 참여해야 된다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그들의 풍속을 쫓지 말고 우상과 주상을 완전히 박살내 버려라.
이렇게 명하셨으니까, 하나님의 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집어넣어서 이 일을 성사시키겠다.
약속을 이루시겠다라는 그런 뜻으로 이 말씀을 사람들은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합니까?
우상을 타파합니까? 그들의 풍속을 따르지 않습니까? 더 많은 우상을 만들어버리죠.
원래 살고 있던 그 땅에 있는 우상에서 플러스 하나, 여호와 하나
여호와라는 우상까지 거기에 추가를 시켜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풍습을 그대로 본 받아서 살아가는 겁니다.
그게 사사 시대거든요.

지금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사자를 앞장서 보내셔서 그들을 멸절한다고 하셨죠.
그럼 그들을 멸절을 한다라고 하셨으면, 멸절을 해야 되죠. 하나님의 약속이잖아요.
창세기 15장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이 어떤 내용인가 하면
’사대만의 약속의 땅으로 너의 자손이 돌아올 것이다’ 그 말씀을 하셨거든요.
여기에 보면 16절에 보면

(창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의 사대손이 약속의 땅에 돌아오는 이유는
아모리 자손의 죄악이 관영했기 때문에 그때 돌아온다는 거예요.
지금은 죄악이 관영하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을 심판하는
심판의 어떤 기능으로서의 이 약속의 땅에 돌아오는 그 내용을 담고 있다라는 내용이에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한다’라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간단합니다. 종말이죠
종말이라는 것은 ‘죄가 관영했다’라는 거고,
‘죄가 가득 찼다’라는 것은 ‘심판 때가 되었다’라는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심판받은 이유가 죄가 관영했기 때문이고
노아 홍수 심판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죄가 관영하다라는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느냐? 주님이 정하세요.
우리가 보기에 죄가 관영하다, 안 하다. 그건 정할 수가 없고요.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이미 ‘죄가 관영했다’라는 거고 ‘세상이 끝났다’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불심판하러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지금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대 만에 돌아오는데
그들이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될 때
지금 여호와의 사자가 앞장서 가서 그들을 진멸한다 했잖아요.
그들을 진멸하시는 그 바탕이 뭐냐?라고 할 때는 그들의 죄가 관영했기 때문이죠.

그러면 이 약속을 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사자를 앞장서 보내셔서
그들을 지금 약속의 땅에 살고 있는 민족들, 원주민들을 멸절하신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창세기 15장 16절에 나오는 이 말씀에 근거하면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되죠.

약속대로 이루어지려면 약속대로 하셔야 되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 들어가서 그들이 믿는 우상을 섬기든지
아니면 그들이 살던 그 풍습대로 살아가든지, 주상을 만들든지 안 그러면 우상을 만들든지
그들이 어떻게 행위를 하느냐와 관련없이 관계없이
이 약속의 땅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멸절하셔야 되죠?
그게 지금 창세기 15장 16절 말씀이잖아요.

그러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식으로 듣겠느냐 이 얘기입니다.
너무 어렵죠. 앞부분을 좀 기억하고 있어야 어떻게 됐는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들이 지금 이 본문을 볼 때 이 말씀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이 얘기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말씀을 보면 항상 자기가 이해한 바, 이해하여서 해석을 하죠.
그럼 해석을 하고 난 뒤에 어떻게 하는가 하면 적용을 합니다.
삶에 적용을 하든지, 적용을 하게 되면 그 결과가 나올 거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말씀을 대하는데

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을 접하였을 때 신이 낫겠죠.
왜 신이 났느냐? 어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기들은 불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출를 받았거든요.
약속을 따라서 구원을 받은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신다고 하셨으니까
뒤에 나오는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내야 될 일들,
이 일들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을 멸절하셔서
자신들을 약속의 땅에 넣어줄 것이라는 그런 기대를 품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까?
가난한 땅에 살고 있는 약속의 땅에서 살고 있는
그들을 여호와의 사자가 다 멸절하셨습니까? 멸절하지 않아요.
이 뒷부분에도 나오거든요. 남겨 둔다고
‘여호수아의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서 남겨둔다‘ 이런 표현도 나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빗나갔죠.
우리들은 지금까지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으면 약속대로 이룬다고 들었잖아요.
일반적으로 신학교에서 그 정도는 가르치고요.
좀 괜찮게 가르치는 인간들은 다
’하나님은 언약대로 이루십니다. 약속대로 이루십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막상 성경을 꼼꼼히 한번 살펴보세요. 약속대로 안 이루어요.

그들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거예요.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루니까, 우리가 그 약속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시다.
여호와를 믿습시다. 그러면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한 사고 방식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고 방식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들의 사고 방식인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왜 이 말씀대로 다 멸절하지 않았는가?
멸절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죠. 사대 만에 돌아와야 되잖아요.
그 돌아온 자들이 심판할 자격 요건이 갖추어져야 돼요.
부분적으로만 갖춰졌죠?
’부분적으로 갖춰졌다’ 이 말은 ‘부분적이 완전하지 않다’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완전하게 갖추어진 것은 언약궤를 앞장세워서 전쟁을 한 것은 완전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하지 못하다라는 얘기입니다.
완벽한 멸절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든요

그럼 완벽한 멸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 말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문제가 있다라는 얘기다.
달리 표현하면 지금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죠.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일이 발생해야 되느냐라고 하면
지금 앞서서 어제 우리가 살펴본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너의 대적이 나의 대적이 되지만
내 말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너희들이 나의 대적이 될 것이다’ 지금 그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대로,
이 약속의 땅에 있는 원주민들이 멸절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멸절을 해야 되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멸절 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예수님 때가 되면 이들 모두 다가 어떠한 인간이 되는가 하면
멸절 당할 인간으로 판명나버리죠.
그 어느 누구도 주님의, 십자가 지신 주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그런 자들로 판명이 납니다.

다시 구약으로 돌아가서 이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멸절당하지 않았고 동시에 또 이 가나안 땅에 있는 그들도 멸절 당하지 않았어요.
참 오묘한 내용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너희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곳으로 완성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을 보여주기 위한 약속이기 때문에
약속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은 거고요.

또한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가나한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이 믿는 신을 섬기고
그들이 믿는 주상을 따라서 절을 하고
그들이 우상 숭배의 삶을 살아가는 그 풍속을 그대로 본받아 살아간다면
그들은 지금 어떤 상황에 도달했다는 겁니까?
애굽에서 나왔는데 나와서 광야 생활을 거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갔는데
들어갔을 때 그들이 그 약속의 땅에 있는 살고 있는 멸절 당해야 되는
그들과 한 통 속으로 살아간다면 그들을 하나님께서 멸망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이거 달리 말하면 광야 생활을 거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갔는데
그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하면?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했던 그 모습과 똑같다라는 거예요.
그러한 자들이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느냐?라고 하면 약속때문이예요.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 언약을 증거하기 위한 증인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비록 그들이 죄악의 관영함 속에 들어가서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하시면서 심판도 하시고 심판 속에 죄를 용서하시면서
그들을 완전히 진멸하지는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언약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떤 말씀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진멸하지 않으셨구나’ 이래 간단 말이에요.
그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 오늘 23절 24절 말씀을 동시에 둔 이유는
23절 말씀의 내용이 일차적으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지만,
동시에 이 말씀이 24절에 말씀하신 대로 그들의 우상을 타파하지 않고 그들의 우상을 섬기고
그들이 살아가는 그러한 풍속대로 살아간다면
‘너희들도 이 말씀에 입각하여서 언약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아 넣어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한 장면이 아니라 두 장면을 동시에 보여주죠.
가나한 땅에 있는 자들이 진멸당하는 모습과 그러한 죄악이 관영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심, 언약궤의 그 피로 인하여서 용서하신
그 은혜가 덮쳐진 그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자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겁니다.

오늘날 성도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모습이죠.
십자가의 피로 용서받았기에 어떠한 삶을 살게 되느냐?라고 할 때는
오늘날 그 교인들은 이런 태도를 취합니다.
󰊝용서받았기 때문에 이제 말씀은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이런 쪽이 있고요.
󰊞또 한쪽은 십자가의 피로 용서받았기 때문에 말씀이 필요해.
어떻게 필요하냐라고 할 때는? 나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필요해.
이런 식으로 말씀을 대해요.

그러나 이 말씀을 방금 우리들이 살펴보았잖아요.
주님의 죽으심 속에 우리를 집어넣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집어넣느냐? 실제 삶 속으로 집어 넣어버리죠.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한 땅 안으로 집어 넣어버리잖아요.
우리가 지금 그러한 세상 속에 살고 있잖아요.

집어 넣어버리니까 우리가 저주받아 마땅한 인생이 되고
우리가 또 어떤 인간이 됩니까?
저주받아 마땅하고 지옥가도 마땅한데
주님의 피로 용서함 받은 자로 계속해서 살려지는 인생으로 드러난다라는 사실이에요.
그러한 인생을 주께서 살게 하시는 겁니다.

나를 위한 인생은 없어요.
말씀 앞에 우리는 무참히 뭉개져야 되고 부정당해야 되고
조각조각 나야 되고 박살나야 됩니다.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주의 백성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세상 속으로 던져넣으신 겁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의 피로 용서하신 은혜를 마음껏 맛보라고
우리를 세상 속으로 계속해서 내몰아주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corded by 구 성모)
관리자 21-09-12 08:36
답변 삭제  
1.그래서 오늘 본문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약속의 땅에 &&&&가는&&&& 그 민족들을 멸절하시는데

------------->그래서 오늘 본문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약속의 땅에
&&&&거하는&&&& 그 민족들을 멸절하시는데

2. 원래 살고 있던 그 땅에 있는 우상에서 플러스 하나, ***여호와 하나***
여호와라는 우상까지 거기에 추가를 시켜버립니다.

---->원래 살고 있던 그 땅에 있는 우상에서 플러스 하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라는 우상까지 거기에 추가를 시켜버립니다.
김기대 21-09-1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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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려요 장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