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9-15 06:52
출애굽기 112강 출 23:27-30 두려운 하나님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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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nJjGWkZx8tw

관리자 21-09-1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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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12  두려운 하나님

하나님 말씀, 출애굽기 23장 27절에서 30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출23:27~30)
27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너의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파하고
    너의 모든 원수로 너를 등지게 할 것이며
28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29 그러나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30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다’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말씀 속에 집어넣겠다’라는 말씀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항상 자기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조차도 자기 중심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너의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파하고‘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죠.
여기에 나오는 ’위엄‘이라는 이 단어의 뜻은 ’공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포
하나님의 두려움을 이스라엘 백성 앞서서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곳에 모든 백성을 파하고
’이스라엘의 모든 원수를 등을 지고 도망치게 하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출23:28)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왕벌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서서 보내신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들은 궁금한 게 있잖아요.
여호와의 공포라고 했을 때는 우리들이 상상하기에 어떤 공포일까?
애굽의 바로의 군대를 홍해 몰살한 그러한 공포, 그 정도는 약간 감이 올 수 있어요.

이와 달리 지금 왕벌이라고 하니까, 도대체 이 왕벌은 뭐냐?
그래서 성경이 찾아봐요. 찾아봐도 못 찾거든요.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며
그 말씀을 ’말씀대로 되어진다‘라고 생각하고 그 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을 찾아낼려고 해요.
오늘날 대표적인 자들이 세대주의자들이잖아요.
’예수님이 곧 오신다.‘
곧 오신다라는 겁을 주어서 무엇을 노리는 겁니까? 돈, 쓸데없는 돈 빨리 내놔라는 거거든요.

말씀이라는 것은 우리가 해석을 못해요.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죽일 수밖에 없었느냐라고 할 때는
다니엘이 예언한 칠십 이레를 자기들 나름대로 해석했기 때문에 그래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칠십 년이 칠십 이레로 바뀌었어. 칠십 이레가 이러하다다 저러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라고 물어보면? 준비하자는 거죠.
이미 성령 받은 사람은 준비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고 있는데 뭘 준비해요.

말씀을 주셨을 때는 말씀이 우리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그냥 공중에 떠다니는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속에 이렇게 함께하는 말씀이에요.
이 속에 들어가게 되면 이 말씀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게 되는가?
그것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그 속에서 여호와의 이름이 증거되어진다’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그 위험 공포 두려움을 보낸다라고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되게 신이 났을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친절하신가 하면
단숨에 그 약속의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시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하여
그 땅에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그들을 조금씩 조금씩 쫓아내시겠다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한꺼번에 다 죽여버리면 인구 수에 비해서 땅이 너무 넓어요.
그러면 그곳에 이 야생동물들이 너무 많이 살게 되잖아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그들을 다 쫓아낼 것이다.
이렇게 약속을 하셨어요. 상당히 신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당연히 믿겠죠.

민수기 13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하는 바란 광야, 가데스바네아라고 하는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꾼을 보내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여기에서는 지시를 내립니다.
모세에게 지시하셔서 ’정탐꾼을 보내어라.‘
’각 족속의 족장들을 대표로 뽑아서 정탐하게 하여라‘ 이렇게 명을 내리십니다.
약속을 하셨다면 곧장 돌격 앞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면 될 일을 왜 정탐꾼을 보내시는가?
이 정탐꾼들이 정탐하러 가기 전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을까요?
이들은 틀림없이 오늘 하신 그 약속 출애굽기 23장 27절에서 30절 사이에 나오는
그 뒷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마는 그 내용을 믿었다라는 사실이예요.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라고 하니까 다 예수님을 믿잖아요.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라고 하니까 다 믿잖아요.
교회 다니는 사람 지금 안 믿는 사람이 없어요.
오늘 조영기 목사가 죽었대요.
그 조용기 목사가 뉴스에도 나오는데 희망의 신화,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큰 별이 졌다. 이렇게 하는데 큰 별 맞죠. 악마의 별이 졌는데
그 목사 같은 경우에도 당연히 주님의 재림을 믿었을 거고 예수도 믿었을 거예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요.
말씀을 믿어요. 그 믿음으로 정탐하러 들어갔습니다.
들어갔을 때 이미 그 믿음 자체가 벌써 이 악마가 심어준 그 마음으로 인하여서
자기 중심으로 다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달리 말하면 말씀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그 말씀을 믿는 나를 믿는 믿음으로 모든 것이 바뀌어진 거예요.
막상 가보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맞긴 맞아요.
그런데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아낙 자손의 후손들 이예요.

싸움을 하면 백전백패, 자신들은 메뚜기 같고
그들은 아낙 자손의 후인으로서 네피림의 자손들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 이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어떻게 믿었는가가 보여집니다.
어떻게 믿었을까요? 이들은 육적으로 이해한 거죠.
’자!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까 하나님의 두려움이 앞장서 가서 그들을 먼저 파하시고
물리치실 것이고 왕벌을 보내셔서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라는 그런 기대감을 갖고 있는 거예요.
달리 표현하면 자기들도 함께 주님의 일에 동참을 하는데
자기들의 눈에 비치는 이 적들의 모습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적이어야 한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그렇지 않다라는 사실이죠.
그러니 원망을 합니다.
이 두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제대로 된 이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죠.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분이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는 거죠.
저들은 우리들의 밥이라는 겁니다.
우리들도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열 명의 족장의 말을 들었을 겁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이 죽기를 무서워하는 종노릇 하는 우리의 인생들을 구원하셔서
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하셨느냐?라는 거죠.
분명히 히브리서 2장에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거든요.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어 종 노릇하는 우리들을 놓아주려 하신다‘
전혀 이 말씀이 우리에게 와닿지 않는 겁니다.
그 이유는? 내가 믿기 때문에 그래요.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언약의 안목으로 그 상대를 볼 수 있었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민주 국가이기 때문에 다수결에 의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4장에 보면 14장 1절에 보면

(민14: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민14: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민14: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출애굽기 23장 27절에서 하나님의 공포, 하나님의 두려움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를 더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가나안 사람들을 더 두려워하고 있어요.
자신들과 동행하고 계신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하나님은 눈꼽만큼도 지금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안 죽이거든요.

우리 같으면 지금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여러 경험들을 했단 말입니다.
그러하다면 가난한 원주민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포를 두려워해야 돼죠?
두려워할 자를 마땅히 두려워해야 되는데
이들의 두려움은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에 보이는 가나한 땅 사람들이 두려웠던 겁니다.

공포에 사로잡히니까 온갖 원망을 쏟아내면서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차라리 좋았겠다‘ 그다음 하는 말이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라는 건가‘
우리를 죽이려고 칼에 도살당하게 하기 위해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느냐?
여호와의 칼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오늘 죽은 조용기 목사가 설교한 내용입니다.
그가 평생 설교한 내용이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그 심판주 되신 주님을 두려워하는지?
그렇지 아니하면 가난해서 병들어서 죽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는지?
그러니 병 고치고 축복받고 삼박자 구원을 그렇게 외쳤던 거예요.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면서 그것이 진짜 복음이라고 이렇게 믿고 따랐던 거 아닙니까?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했느냐라는 거예요?
가난하게 사는 것이 두려웠던 거죠. 질병 걸려서 죽는 것이 두려웠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하신 것에 대해서는 감사가 없어요.
그 십자가 지신 그분이 천국과 지옥을 확정했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보이지 않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죽어봐야 아는 거잖아요.

복음이라는 것은 좋긴 좋은데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내가 행복하게 살고 부자가 되는 것이고 가족들을 잃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그래서 오늘 죽었잖아요.
전도서를 그렇게 읽고 설교를 해도 그 ’헛되다‘라는 것이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지 아니하니까
아직도 ’헛되지 않다‘라는 그러한 외침을 발악을 하면서
진짜 두려워하는, 악마를 두려워하는 그 모습을 발악하면서 보여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되는데 언약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하심에 대해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요.
달리 말하면 약속의 땅에는 죽은 자만 들어가는 곳이거든요.
이들은 주님의 심판 속에서 죽은 자로서 인도함을 받고 있는데
자신들은 여전히 살았다라고 생각하면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니까
그것은 산자가 들어가서 살 땅입니다.
그러면 산자가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면
거기에 사는 상대들은 ’이 산자가 죽으면 안 되는 땅이란다‘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하는 거예요.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마르다가 나오잖아요.
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다 가르쳐 주시고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그런 말씀도 다 알아요.
아는데 그분이 나를 위한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그럼 무엇이 두려우냐라고 할 때는? 죽는 것이 두려운 거예요.

눈 앞에 심판주가 계신데 심판주는 안 두려워요.
뭐가 두렵습니까? 뭐가 공포입니까?
함께 오손도손 행복하게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잘 살다가
지금 병들어서 죽어버린 그 나사로가 죽는 것에 대해서 공포에 질린 겁니다.
그러니 그가 요구하는 게 뭘까요? 살려달라는 거예요.

진짜 두려워할 분이 누굽니까? 십자가지신 주님이에요.
십자가 앞에 복음을 전하면 인간들은 만만하게 여기죠.
교인들도 만만하게 여겨요. ’내 죄 용서했네. 나는 천국 넣어주시겠죠.‘

마땅히 두려워할 뿐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온 세상이 두려운 거예요.
공부 못하면 어떻게 하냐?
한국 가서 살 집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
나중에 늙어서 노후 대책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
’먹는 거 입는 걸로 족하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성령이 없기 때문에 진짜 두려워할 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사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게 하시고
두렵지 않은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이 되게 하셔서
나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 십자가의 피 공로만을 자랑하는 주의 백성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안에 거하기에 두려움 없는 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corded by 구 성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