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5-17 01:18
레위기 49강 레 12:1-5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시는 주님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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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Q79S0AXX4I

관리자 22-05-1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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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49강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시는 주님

하나님 말씀, 레위기 12장 1절에서 5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레12:1~5)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3 제 팔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4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 삼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5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 륙일을 지나야 하리라

오늘날 이 시대는 차별을 아주 싫어하는 시대죠.
어떤 나라들은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서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그러한 어떤 법적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에도 어떤 쪽에서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된다. 제정하라.’ 그렇게 요구하고 있죠.
반대하는 쪽도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그들 각자도 차별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신,
좋게 말하면 ‘구분하신다’ 이렇게 볼 수 있지만, 누가 봐도 차별이죠.
아들을 낳으면 40일간 부정하고 딸을 낳으면 80일간 부정하다라는 겁니다.
여기에서 산모들은 자녀를 낳았을 뿐인데 40일간 부정하고 80일간 부정해요.
그러면 그 남편들은 어떠합니까? 부정하지 않다는 이야기에요.

아이를 낳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여자의 후손과 관련되어 있고 아브라함의 약속과 연관되어 있잖아요.
자녀를 낳는 여자가 이렇게 40일간 아니면 80일간 부정하다라는 이러한 말씀이
상당히 불합리하게 들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들이 여기에서 그 이후에 합당한 이유를 찾아내려고 한다면 찾을 수가 없어요.
‘왜 여자는 딸을 낳으면 80일간 부정하고 아들을 낳으면 40일간 부정해야 됩니까?’
하나님께 그렇게 물을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율법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의사를 타진해서
내가 주는 율법이 너희들이 지킬 만하고 합리적으로 받을 만하니까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니까 주겠다. 이렇게 주셨습니까?

인간들의 신보가 아주 고약한 거거든요.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율법에 대해서 군말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이런 말씀들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이런 말씀들이 나오면요.
입이 튀어나오죠.
그래서 좀 배웠다라는 인간들은 이 구약 같은 경우에는 옛날 이야기니까
그 당시에 문화로서 남자와 여자를 차별했다. 그렇게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구약을 무시해버리고 신약은 그렇지 않다라고 주장을 펼치는데
신약은요 이것보다 더 심하게 말씀합니다.
신약은 남자 여자를 더 확실하게 차별해 버립니다.
디모데전서 2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신약 성경 338쪽입니다. 8절부터 보게 되면

(딤전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각처 각 지역, 아마 예배로 모이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뒤에 내용을 보게 되면
‘남자들은 분노와 다툼이 없이’ 분노가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난다, 주도권 싸움이겠죠.
남성성의 특징입니다. 대장이 되고 싶고
‘거룩한 손을 든다’는 것은 죄인이라는 말이지요.
그렇게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이게 남자들에게 하는 말씀이고요.
그다음 나오는 말씀이 길게 여자들에게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딤전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아담하다는 말은 단정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염치가 있어야 된다. 좀 부끄러움을 가져야 되고 공손해야 되고
                정절로 순결하고 성실하고 그러한 것으로 자기를 단장하고
                그러면서 이와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말씀하시는데)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늘날로 말하면 명품으로 치장하지 말고
명품 삔, 명품 귀걸이, 명품 목걸이, 명품 옷 명품 신발 양말 그러한 것으로 치장하지 말고

(딤전2: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지금 이 말씀을 듣는 여성분들은 어떤 마음이 생깁니까? 불쾌합니까? 감사합니까?
남자분들은 어떠세요?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그러했기 때문에
여자 같은 경우에는 그 당시에는 재산 가치로 취급했으니까 그 이하도 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이렇게 표현하는 겁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사도 바울의 권면으로 보려고 하거든요.
사도 바울이 쓴 글은요 성령에 의해서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주님이 친히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들어도 되고 말아도 되는 말씀이 아니에요.

신학교에서 교수들이 그 신학생들을 가르칠 때 바울서신이라 가르치면서
말로는 성경은 영감으로 되었다라고 해놓고
‘바울 서신’이라고 말하는 순간 바울이 쓴 편지가 되어버리고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내용들은 권면이 되어 버리고 권면이야 뭐 들어도 되고 말아도 되잖아요.
왜 자신감 있게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야기 못해요.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야기해버리면요. 세상이 뒤집어집니다. 교회가 운영이 안 돼요.

바울 서신에 나오는 모든 말씀들이 시내산에서 주신 그 말씀보다 더 엄중한 말씀이거든요.
그게 산상설교고 그 산상설교 안에 있는 내용이 다 이 내용이에요.
천국과 지옥을 보내시는 심판주 되시는 주님이 주신 말씀이에요.

이 말씀을 읽어보면 ‘야 이건 완전히 성차별이다.’ 성차별 맞아요.
왜 이렇게 차별하는가? 왜 구약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40일이 부정하고
딸을 낳으면 80일이 부정하냐? 왜 차별을 두느냐? 그 이유를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 보면 11절에 보면

(딤전2: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아마 여성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면 ‘내가 왜 조용히 배워야 돼?’
그러니까 지옥가도 마땅한 거예요.
‘나도 배울 만큼 배웠고 좋은 대학을 나왔고 나도 할 말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딤전2: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오늘날 여자에게 목사 안수를 주잖아요.
그걸 달라고 교단마다 난리죠. 왜 목사 안수를 받고자 합니까? 그거 보면 참 웃기지도 않아요.
목사가 뭔데요? 목사를 왜 세웠습니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원치 않는 길로 끌고 가기 위해서 세웠거든요.

그런데 목사가 되고자 하는 것은 그 권력이 탐나는 거예요.
주목받고 싶었고 자기의 말발을 내세우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여자가 목사가 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아주 악마적 발상이죠.

제가 지금 이렇게 설교하면 욕을 엄청 얻어 먹겠지만
지금 말씀이 뭘 이야기하는지를 못 알아먹어요.
그러니까 이 말씀을 여자 목사들은 뭐라고 설교하겠어요?
온갖 변명을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그때 당시에 사도 바울이 시대적 분위기에서 한 말이기 때문에
그때는 여자들이 종용해야 되지만 지금은 배울 만큼 배웠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얼마든지 목사를 할 수 있다.’

그 해석이 누구 해석입니까? 자기 해석이죠.
왜 그렇게 해석합니까? 그 해석의 결과가 뭐예요?
그렇게 해석해서 어디에 도달하려고 합니까?
’나 목사 되는 것이 정당해요.‘ 그 얘기하고 싶잖아요.

성경은요 십자가를 증거합니다. 정답을 말씀하는 게 아니에요.
’예배시에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다.
여성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 예의다‘ 그런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소리를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반발해서 똑같은 육적 이야기를 쏟아내는 겁니다.
주님은요 뒤끝 작열입니다. 여기에 보면

(딤전2: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왜 조용해야 되는가? 두 가지를 이야기해요. 첫 번째는

(딤전2:13) 이는 아담이 먼저 체험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여자가)
                이와가 그 후며

하와가 그 후죠.
하와라는 이름은 범죄한 이후에 지어진 이름인데요. 그것을 담아버립니다.
세상은 아담을 위해서 지어진 세상이거든요.
아담을 위해서 지어졌다는 것은 여자는 없다는 겁니다. 원래
이건 또 무슨 낯선 이야기냐? 예수님을 위해 지어진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자는 조용하라는 거예요. 사극에 나오는 대사체는 ’그 입 다물라.‘
궁극적으로는 이 여자 자리에 남자들이 다 들어갑니다. 또 한 가지는

(딤전2: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독특하게 표현하죠.
아담도 분명히 꾀임에 빠졌잖아요. 누구에게? 여자에게
그런데 주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은

(딤전2: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창세기 3장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래서 여자는 조용하라는 이야기예요.
남자를 가르치지 말라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남자의 자리는 남자의 기능은
궁극적으로 참 남자 되신, 남편 되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그게 뭐가 필요하냐? 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형제고 자매고‘
그 얘기를 왜 해요? 죄인 될 마음이 없는 겁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남자 여자를 차별해서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남자들 편에 위치에 서고 싶습니까? 여자 편에 서고 싶습니까?

자 그러면 레위기로 다시 돌아와서 여자를 딸을 낳으면 80일 부정하고요
아들을 낳으면 40일을 부정한다 했을 때 아들을 낳고 싶습니까? 딸을 낳고 싶습니까?
여자가 되고 싶습니까? 남자가 되고 싶습니까? 인간의 선택은요 자기가 유리한 쪽을 선택합니다.
어느 누구도 부정한 기간이 긴,
자식을 낳은 이유만으로 40일 80일 동안 부정케 되는 그런 위치에 가기를 원치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것을 차별적으로 이렇게 대하시느냐?
왜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담은 꾀임을 보지 않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다는 이 말씀으로 몰아가느냐?
교회라는 것은 십자가의 피 공로를 증거하고 자랑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누가 더 십자가의 피를 자랑하겠습니까?
많이 용서받은 자, 많이 용서받았다는 것은 죄가 그만큼 깊다라는 거거든요.
죄가 그만큼 깊고 그만큼 용서받았으니까
사랑이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를 지금 이 말씀을 통하여 하시는 거예요.

이것을 남자 편에서 여자 편에서 이 비교 대상이 십자가가 아니라
여성 남성이 되면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성령의 말씀이라는 거예요.

남자들은 이걸 보면서요. ’와, 여성들이 부러워라‘고 해야 돼요.
여성들은 오히려 이 말씀을 보면서 ’와, 정말 십자가 사랑이 너무 깊고 놀랍네.‘ 이렇게 가야 돼요.
물론 최종적으로는 남자가 되었든 여자가 되었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때문에
이 말씀 속으로 모두 다 한몰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냥 끝내서 될 문제가 아니에요.
엄연히 남성과 여성이 존재하고요. 차별이 있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 차별을 없애버리려고 하죠.

복음을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죄인데 뭐 죄에 뭐 경중이 뭐가 있느냐?’
성경에는 이것을 차별적으로 보신다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이 바울 서신이나 산상설교도 마찬가지지만
죄의 깊이를 촘촘히,
도무지 빠져나가지 못할 그물망으로 만들어서 죄의 깊이를 다 뽑아내는 겁니다.

‘니 죄랑 내 죄랑 뭐가 다르냐?’ 이런 자들은요. 용서함을 받지 못한 자예요.
이런 자들은 로마서 5장 20절에 나오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을
말씀을 완전히 무시하죠.
(롬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씀의 의미는 죄라는 것들이 계속해서 더해진다는 거예요.
그럼 죄의 깊이가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거예요.

‘왜 우리를 차별되게 대우합니까?‘라는 이 악마성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보지 못하는 그 마귀의 자식들이죠.

오늘날 십자가 복음을 제거해 버리는 자리에는 누구만 남느냐? 할 때는
나의 권리만 남고요. 인간 권리만 남는 겁니다.
자기가 주가 되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 주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얼마나 이 말씀을 오묘하게 하셨어요.
육에 속한 자들은 다 지옥 가야 됩니다. 그게 십자가의 능력이에요.

그래서 이 말씀을 보고 불쾌하면서 오히려 누구를 공격합니까?
성령 받은 사도 바울을 공격하면서 자기를 변명하고 자기를 높이려는
그러한 죄성들을 인간들이 뿜어내는 겁니다.
차별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를 알아가게 하시는 겁니다.

성도들이 다 다르죠.
건강한 것도 다르고 돈 가진 것도 다르고요. 학력도 다르고요.
다 차별하셨습니다. 은사도 다 차별하셨어요.
십자가 피만 자랑하라고 우리를 차별되게 선물을 주신 겁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십자가의 사랑의 깊이를 더 깊이 알게 하시기 위해서
차등되게 저희들에게 은사를 주시고 죄의 깊이를 알아가게 하셔서
우리 성도들의 입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침을 고백하며
십자가의 사랑의 깊이를 알아가는 주의 백성으로 삼아 주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