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7-29 23:38
레위기 81강 레 19:24-25 과목열매의 할례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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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2-07-3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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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81강 과목열매의 할례 

나님 말씀, 레위기 19장 23절에서 25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레19:23~25)
23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것이요
24 제 사년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25 제 오년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어떻게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죠.
할례라는 것은
창세기 17장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입니다. 9절부터 보면

(창17:9~11)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난 지 팔일 만에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모두가 다 할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 할례 언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 언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할례라는 것이 과목의 과실에도 있다’라는 것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죠.
성경을 잘 읽는 분들은 아마 과실의 할례라는 이 말씀을 읽어었겠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과실에 할례가 있다라는 것을 잘 모를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조차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
할례는 남자가 하는 이 표피를 베어내는 그 일이거든요.

그런데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그 땅에 들어가서 각종 과목을 심게 되면
그 열매는 아직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첫 번째 열매, 두 번째 열매
세 번째 해에 달리는 열매의 과실은 먹을 수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먹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죠.

이미 약속의 땅에 들어왔잖아요.
들어왔으면 그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거룩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독특한 말씀을 하십니다.
보리나 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죠.

그리고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원래 그곳에 있는 나무의 과실은 먹어도 된다라는 말씀이고요.
여기에 나오는 말씀의 조건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너희들이 이 과실나무를 심었을 경우에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이미 있는 포도 같은 경우에는 그냥 따먹어도 돼요.
물론 첫 소산물은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야 되고요.
그러나 새롭게 심는 각종 과목에 대해서는 그 나무의 열매가 첫해 열리고 둘째 해 열리고
셋째 해 열릴 때까지는 할례받지 못했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또 잔머리 굴리는 사람들이 있죠.
어차피 나무야 2년 되어야 묘목을 심더라도 2년째 열매를 맺는 것도 있고
3년째 열매를 맺는 것도 있으니까 원래 처음 맺을 때는 과실의 수량이 많지 않거든요.
나무도 작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배려하는 차원이다.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다 헛소리고요.

지금 여기에서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은 첫 번째 해에 열매가 맺히는 것
그리고 두 번째 해에 열매를 맺히는 것, 세 번째 해에 열매가 맺히는 것은
모두가 다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라고 하신 겁니다.
그 단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었을 경우에요.

그리고 네 번째 해에 열매가 맺힌다면 그 열매는 여호와께 찬송이 되는 열매가 돼요.
할례를 하고 잘라냈죠.
3년째 되는 그 열매조차 잘라내고 4년째 되는 열매가 여호와께 찬송이 된다라는 겁니다.

(레19:24)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렇게 번역을 해도 되고요.
‘여호와께 찬송이 된다.’ ‘찬송이 되는 열매다’ 이렇게 번역을 해도 됩니다.
그 열매 자체가 할례를 했기 때문에 드디어 여호와께 찬송이 되는 거예요.
그다음 5년째에 맺히는 이 각종 과목의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레위기 2장 의하면 첫 소산물은 여호와께 드리게 되어 있고요.
우리들 같으면 할례 못 받았다라는 것을 인정하겠다라고 하면서
그다음 4년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예상을 했지만 전혀 먹지 못해요.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됩니다.

그 각종 과목을 누가 심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었거든요.
그들이 돌보고 가꾸는 거예요. 그들이 돌보고 가꾸어도 첫해 맺히는 과일이나
둘째 해, 셋째 해에 맺히는 모든 과일이 할례를 받지 못한 과일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생각해야 되느냐?라는 겁니다.
실상 이 말씀 자체는 굉장히 어려운 말씀이에요.
사실 안 지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지킬 리가 없겠죠. 지킬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말씀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것보다 더 어려운 말씀이 나중에 신명기 10장 16절에 나오거든요.
(신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마음에 할례‘ 우리들이야 워낙 익숙하게 들었기 때문에
마음에 할례가 익숙하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몸의 할례만 아는 자들에게 이 과수나무의 그 열매에 그 할례, 무할례죠.
무할례에서 할례가 되는 이 내용, 그다음 나오는 내용이 마음의 할례거든요.
갈수록 태산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 레위기 19장에 나오는 이 과수나무의 할례는 지킬 수 있죠.
아마 지금 이스라엘의 키부츠는 아마 지키고도 남은 사람들일 겁니다.
그래야만 자신들에게 축복이 오기 때문이죠.
신약 성경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농민 중에 바리새인이 있었다면 이 말씀을 지켰겠죠.
사도 바울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라고 했으니까

그러나 마음에 할례는 신명기 30장 6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셨거든요.
(신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셔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을 섬기게 하시겠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인간들은 자기들이 마음이 할 일을 행했다라고 주장하면서
여호와 하나님 말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거죠.

그런 식으로 공부를 하니까 얼마나 두뇌가 좋겠어요.
공부를 할 때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공부를 해보세요.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 하면 얼마나 열심히 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기억해야 되는 것은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그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 되느냐? 이 문제입니다.

나무를 심을 거잖아요.
이 나무를 심는 것은 그 약속의 땅에 가서 오랫동안 거한다라는 거거든요.
거하는 기간 동안 이 나무를 심으면서 그들은 무할례에서 할례가 되는
이 과정을 눈으로 목격하면서 무엇을 기억해야 되느냐? 이 얘기입니다.
이 말씀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행할 말씀이잖아요.
그러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사건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5장을 보겠습니다.
여호수아 5장은 이 길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하는 사건이에요. 5장 1절부터 보면

(수5:1~9)
1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상당히 긴 본문이지만 제가 다 읽어드렸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 본문을 볼 때 우리들의 관심은 애굽에서 나온 이후에
그 출애굽한 세대들은 다 광야에서 멸망당했고
이제 할례받지 못한 자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들에게 할례를 행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겠다.
이런 의미로 이 본문을 볼 가능성이 높죠. 물론 그렇게 봐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레위기 19장과 연결해서 이 말씀을 한번 살펴보게 되면 이런 내용이 담기는 겁니다.
지금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나온 그 모든 사람들은 할례를 받은 자들이에요.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할례를 받았고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출을 받아 지금
광야 길을 건너서 약속의 땅, 이 문턱 앞에 지금 와 있는 거예요.
물론 그들은 다 오지 못했죠.
이 40년 과정에서 이 할례받은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로서 누구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느냐?라고 하면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멸절하셨습니다. 표현이 재미있는 게 이거예요. 6절 하반절에 보면

(수5:6)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그래서 이곳에서 그다음 세대들, 출애굽한 이후의 세대들,
할례받지 못한 세대들이 할례를 받은 이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습니다.

이 해석에 대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애굽의 수치가 뭐냐?라고 하면 그 애굽의 수치를 누가 끌고 왔습니까?
바로 출애굽한 할례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끌고 와서
광야 길까지 끌고 와서 그 수치를 보여준 거예요.
그 후손들이 지금 여기에서 할례를 행했다는 것은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했다’라는 거에요.
그 애굽의 수치를 방금 말씀드린 대로 누가 담고 있었어요?
출애굽한 세대,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가, 할례받은 자들이 애굽의 수치를 담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 길가에서의 할례는 그것을 끊어내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멸망당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들의 생각인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길갈에서의 할례 사건과
그다음 광야에서 할례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군사를 멸절하신 그 사건을 모아서
‘길갈에서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였다.’ 이 말씀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되는가?를
분명히 하시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약속의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다면
그곳에서 그들은 어떤 정신을 갖고 있어야 되느냐? 라고 하면
할례를 받았지만 애굽의 풍습과 사고 방식을 담고 있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여호와의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멸절시킨 것 같이
자신들도 약속의 땅에서 그러한 풍습이 있다면 멸절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할례라는 이 요소를 새로 심는 과목의 열매에 투입시켜 놓은 겁니다.

과목은 계속해서 새롭게 심겨지죠. 심겨지고 3년 동안 할례가 없겠죠.
할례 없는 열매니까 4년째는 여호와의 찬양이 되는 열매가 되고,
결국 이 자체가 할례 없는 열매로서의 그 나무, 할례를 받고
무할례에서 할례가 되어지는 나무가 되지 못하므로 그 약속의 땅은 불바다가 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설교를 끝내면 참 편할 것 같은데 이렇게 설교를 하게 되면
그러면 우리들은 ‘이 할례 언약을 기억하여서 십자가를 기억하여서
십자가 정신을 이 땅에서 구현하며 살아야 됩니다.’ 이렇게 설교를 하겠죠.
그건 거짓 복음입니다.

십자가 지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죠.
성령을 주셨다라는 것은 우리의 이 몸 속에서
이 몸을 통하여서 십자가 사건을 주님께서 친히 반복시키겠다는 거에요.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이예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는 사람은 십자가에서 주님이 다 이루심을 자랑하고 증거해요.
그러하기에 성도는 날마다 말씀 앞에서 죄인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무슨 수로 마음에 할례를 받습니까?
무슨 수로 이 말씀을 다 지켜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그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죠.
십자가 사랑을 부어주셨기에 성도가 자랑할 것은 십자가 뿐입니다.
십자가 뿐이라는 말은 성도가 하는 일이든지
그 외부에 무슨 일이든지 십자가의 원수로서 행하는 일뿐이라는 거예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저희들에게 그리스도의 할례를 당하게 하셔서
주님의 죽으심만을 자랑하는 주의 백성으로 삼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십자가의 피를 자랑케 하기 위한 주님의 조치임을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할례 속에 살아감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