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1-19 14:56
20231119 이사야 강해 20강 사 7:3-9 스알야숩과 아하스 왕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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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11-1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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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이사야 강해 20강 사 7:3-9 스알야숩과 아하스 왕

하나님 말씀, 이사야 7장 3절에서 9절까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사7:3~9)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찌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을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 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찌니라 (8절에 포함되어 있음)”

여호와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아하스 왕에게 보내어서
지금 일어난 상황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아하스 왕은 지난 시간에 우리들이 살펴봤듯이
그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우상숭배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한 왕에게 이사야를 보내어서 지금 일어난 이 사태,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의 연합군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할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독특한 대목은 이사야를 보내실 때 그냥 보내면 되는데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을 대동하여서 그 왕에게 가라고 하는 겁니다.
이 스알야숩은 왜 데리고 가느냐?
스알야숩의 뜻은 ‘남는 자가 돌아오리라’ 이름의 의미가 들어있죠. 이삭 같은 경우에도 ‘웃음’이고.

이사야가 이 스알야숩이라는 그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지으라 했을 수도 있는데, 이 아들을 데리고 가라는 거예요.
스알야숩을 데리고 가라는 것은 아하스 왕이 말을 듣는다는 말입니까, 안 듣는다는 말입니까?
‘들을 수도 있고 안 들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스알야숩을 데리고 가라라고 했다라는 것은 ‘안 듣는다’라는 것을 확정지어서 가라고 한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손을 들고 ‘왜 듣지도 않는 자에게 가라 하느냐?’
이사야 선지자가 죄 있는 백성들 가운데 거하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었을 때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다”라고 했잖아요.
그에게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가서 외치라고 이렇게 사명을 주셨을 때
뭐라고 외치라고 합니까?
귀를 닫히게 하고 눈을 감기게 하고 마음을 어둡게 하는 외침이라는 거예요.
스알야숩을 데리고 아하스 왕에게 가는 것은 그 말씀에 그대로 행하는 거예요.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질문이 나올 것 아닙니까. ‘그럴 것 같으면 왜 보냅니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느냐? 라고 하면
하나님이 보내었다면 그 보냄을 받은 자가 역할을 해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아니 ‘일평생 살았는데 헛되더라’ 그러면 우리는 뭐라고 반문하겠습니까?
‘왜 살게 했느냐?’ 이 얘기예요.

이건 ‘헛되다’라는 말이 불교에서 하는 그 헛됨과는 달라요.
똑같은 헛되다라는 용어를 사용하죠. 다 흙으로 돌아가잖아요.
살아온 그 발자취가 이 먼지길이었던 겁니다. 그 먼지 안에 죽은 시체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오늘도 우리가 시체들을 들이마시고 있는데,
좀 너무 잔인합니까? 먼지가 되어 날아다닐 거 아니에요.
우리도 안개처럼, 먼지처럼 그냥 사라지게 하시는데.

뭔가 성도라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달라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하는데
다르기는 커녕 똑같이 병 걸리고 똑같이 입술 터지고 똑같이 부부 사이가 안 좋고
어떤 사람은 엄마가 해준 떡 먹고 싶다 하는데 뭐 안 먹고 싶은 사람 어디 있습니까? 여기에.
그 죽은 사람 불러낼까요? 엄마를 왜 여기서 찾아요?

다 똑같은 마음이거든요. 그럼 복음을 알든 모르든.
그러면 다 헛된데, 누가 봐도 헛된데
그러면 이럴 것 같으면 어떻게 사는 게 좋아요? 폼나게 사는 게 좋잖아요.
제가 어제 결혼식을 성주로 간 게 아니고, 듣는 사람들이 자꾸 오해를...
내가 서울에 있으니까 저한테 부조금을 줘가지고
서울에 갔다 오라고 맛있는 밥 먹고 오라고 심부름 한 것뿐입니다. 역삼동 부근에.
그래서 처음으로 선릉? 중종 대왕릉 거기 구경하고 왔어요. 참 좋더라고요.

왜? 여기에 보면 왜 똑같이 살게 하느냐? 이 얘기예요.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면 뭔가 달라야 되지 않느냐?라고 하는데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어요.
이스라엘 보면 누구보다도 먼저 진멸시켜버립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자체를 없애버려요.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70년에 완전히 마사다입니까? 어디예요? 거기에서 최후 항전을 벌이잖아요.
그 이후에 이스라엘 자체를 완전히 제거시켜 버렸어요.
저거끼리 이제 남아서 이스라엘을 만든 건데, 왜 그렇게 하시느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방 나라의 우상과 달라요.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듣지도 않을 것 같으면 답을 갖고 왜 갑니까?
이것은 누구와 관련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똑같이 이사야 선지자처럼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리라”하고 하셨거든요.
그럼 성도들이 살아가는 현장이 복음을 전하는 현장인데 사는 자체가 현장이라도 볼 수 있고요.

근데 그것이 언제 드러나는가?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건의 현장 속에서 드러나요.
그런데 복음을 전하면 이미 이 몸덩어리 자체가 확정적이잖아요.
여러분 몸이 확정적이잖아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몸이잖아요.
그럼 거기에서 나오는 복음도 확정적이잖아요.

그런데 그 복음을 전하는 당사자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확정 안 되었다’라고 자꾸 생각을 해요.
안 되었으니까 내가 전하니까 내 말을 들어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예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는 것은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겁니다.

지금 이 구약으로 들어가면, 그냥 구약 자체로 보면
사실 악마 종교밖에 안 나옵니다. 유대교밖에 안 나오기 때문에.
이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이사야 선지자들과 동일하게 복음을 전할 때 답을 갖고 전하는 거예요.

성령을 받았잖아요. 성령은 우리 말 안 듣죠.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분의 일이잖아요.
그분 일을 행세하게 하시도록 우리는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겁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갈 때 스알야숩을 대동하여서 가요. 함께 데리고 가자.
그 스알야숩은 뭔지도 몰라요.
꼭 우리 같아요. 뭔지도 모르고 따라갔는데 주님이 하신 일을 구경하는 겁니다.

어쨌든 데리고 갔는데 데리고 가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하스를 만나서 그에게 이르기를 (지시하죠.)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소란 떨지 마라.’
무엇 때문에? 이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의 그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가 연합군을 결성해서
이렇게 올 때 거기에 대해서 두려워 떨지 말라는 거예요.

이걸 좀 리얼하게 하면 우리 성도님 중에 한 분이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사업이 쫄딱 망했을 때 마음이 어땠습니까? 어때요? 어떤 사건을 당하면 어때요? 마음이.
참담하죠. (이제 참담해 보신 분이 지금 대답을 하셨는데...) 참담하거든요.

근데 거기에 대놓고 ‘너 지금 떨지 마’ 이 얘기하는 거예요. 이 말이 됩니까?
답을 갖고 갔다라는 것은 사실은 축복인데요.
지금 형편 자체가 온갖 요란 속에 들어가 있잖아요.
지금 대군이 쳐들어오는데 자기는 왕이고 그러면 이 사람은 이미 계산을 다 해놨어요.
머리를 굴려서 앗수르 왕에게 돈을 갖다 바치면, 황금덩어리를 갖다 바치면
도와줄 거라는 그러한 어떤 물밑 접촉이 다 있는 겁니다.
그것도 주님이 다 알아요.

아는데 그러면 왜 보내느냐? 이 얘기예요.
그 보내는 이유는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에요.
말씀을 하셨으니까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에요.
제가 금요일 밤에 신명기 1장을 시작을 했잖아요.
그 신명기 1장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을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신명’이라는 것은 두 번 다시 명한다라는 거에요.
‘두 번 다시, 거듭하여서, (어떤 사람은) 설명한다’ 이렇게 돼 있는데

율법을 두 번 이야기하는 것은 맞아요. 맞는데
한 번 민수기, 출애굽기에서 율법을 주셨잖아요. 레위기도 율법이고 그다음
민수기에서 율법과 사건이 공존하잖아요.
그러면서 사건 속에서 율법이 계속해서 추가가 됩니다.

추가가 되면서 마지막에 슬로브핫의 그 딸들의 기업 문제를 다루는 이유가 뭐냐? 하면
‘말씀이 먼저고 말씀대로 되어진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말씀이 먼저입니까. 이스라엘이 먼저입니까? 이스라엘이 먼저죠.
그래서 설교를 할 때 제가 이런 말씀드렸잖아요.
사건이 먼저냐? 율법이 먼저냐?
이 차후 선후관계를 따지면 율법은 뒤에 주어진 건데 놀랍게도 이게 뒤바뀌어버립니다.
뒤바뀌어버려서
신명기에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들을 주시게 되면
‘이스라엘은 말씀대로 되어진다’라는 것을 지금 선언하는 게 신명기예요.

그러면 말씀대로 되어지니까 그러면 또 어떻게 해석하죠?
‘그럴 것 같으면, 그러면 되는지 보자’ 할 것 아닙니까.
인간은 ‘보자’라고 안 돼요.
말씀을 안 보는 사람은 ‘보자’라고 하겠지만
말씀을 보게 되면 관람할 수가 없고
우리의 몸 자체가 이 주님께서 조성하시는 환경 속에 살기 때문에 말씀대로 되어지도록 몰아붙여요.
그게 바로 지금까지 출애굽기에서 민수기까지 보여준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언약을 위해서 그들을 환경 속으로 몰아낸 거예요.

여기도 마찬가지죠.
이사야 선지자를 스알야숩을 데리고 “남는 자는 돌아오리라.”
“남는 자는 돌아오리라”가 어디로까지 가버렸습니까?
우리는 이미 남은 자가 누군지 알죠.
남은 자가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뿐이잖아요.

그러면 “남는 자는 돌아오리라”라고 하여 갔으면
반드시 어떤 사태가 벌어져야 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 저 두 왕은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에 불과하다.”
요즘 애들은 부지깽이 모르죠? 알아요? 모르죠. 요즘 할머니 댁에 군불 땝니까?
김 집사님이 웃으시는데 ‘군불 때는 집이 어딨냐?’ 이러는데.
제 지분이 없는 고향집에는 아직 그 아궁이가 있거든요.
이게 불을 땔 때 그 막대기 아무거나 주워가지고 불 많이 때봤잖아요. 그죠?
갈비(솔가리), 요즘 같은 초겨울에는 갈비가 이 불쏘시개로 가장 잘...
갈비가 뭔지 또 모르지? 솔잎. 솔잎 떨어진 거, 그 바싹 마른 거 있잖아요. 그 불 정말 잘 타거든요.

그 부지깽이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 부지깽이가 계속 이렇게 사용하면 앞이 시커멓게 되거든요. 도무지 살아날 수가 없어요.
물론 4월달에는 부지깽이 쓰다가 꼽아놔도 싹이 난다라고 하지만
지금 이 말씀은 그런 얘기가 아니라

상대가 어때요? 팔팔하잖아요.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잖아요.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는데
“저들은 연기하는 두 부지깽이에 불과하다.” 그게 들리겠습니까? 예?
어제 또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 해줄게요. 그분이 이제 얘기를 하는데 친척이 여러 친척이 있는데
이모가 꽤 많거든요. 자기 형제 간에 많은데 꼭 한 사람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그 한 사람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뭔가? 하면
그 한 사람의 맏아들이 서울대를 나와가지고 게임을 개발해가지고
지금 한 100억 대 이상의 부자가 됐거든요. 한 15년 전에 50억을 벌었으니까
앉아 있으면 돈이 나올 거 아니에요. 그 게임이 말만 하면 여러분 다 아는 게임이에요.
근데 그 엄마를 되게 칭찬하는 거예요.
그럼 나중에 분석해 보니까 돈인 거예요 돈. 돈이 안 되는 사람은 별로 관계도 없어.
그 돈을 100억 200억을 갖고 있는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데
“아 이 사람이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에 불과해.” 이렇게 하면
우리 성도님들은 아멘 하겠죠.
근데 오늘 불을 피울 연탄조차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좀 말 되는 이야기를 해야 될 거 아닙니까.
이미 아하스는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가 아니라 저들은 굉장히 강력한 힘을 소유하였는데
저들을 물리칠 방법은 저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100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1조를 갖고 있는 사람을 불러와야 될 거 아닙니까.
그 노림수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연기하는 두 부지깽이에 불과하다라고 하면서
지금 남유다의 상황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지금 남유다 아하스 왕이 여호와 하나님 안 믿을까요?
믿고 있죠. 믿고 있는데 지금 모양이 이 모양 이 꼴이에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하스 왕이 안 믿었지 않습니까?’
안 믿은 게 아니에요. 지금 다윗의 등불이 살아있어요.
아하스 왕이 우리라 생각하면 돼요. 아하스 왕이 특별히 악해서 그런 게 아니고.

“연기하는 두 부지깽이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그 말을 듣겠습니까?
여기에 보면 4절 하반절
“아람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아니 낙심하게 해놓고 두려움 가득 해놓고 “두려워 말라 낙심치 말라.”
아니 돈 하나도 없는데 이제 내일 굶어 죽어야 되는데 “걱정하지 말라” 하면 뭐라 하겠어요?

그리고 이 믿는 구석은 따로 있거든요.
‘내일 되면 100억 가진 그 집 안에서 나에게 1억은 아니더라도 100만 원은 줄 거다’ 그 기대를,
약조를 받았으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그렇게 들리는 게 아니죠?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다 내 두려워하지 않겠다.’
그래 그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믿는 구석이 따로 있다라는 거예요.
지금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는 완전히 불가능성밖에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말씀을 주세요.

5절 “아람과 에브라임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중에 세워 왕을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 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65년 이후에 이 나라를 멸망시키겠다라는 건데 이게 왜 어려우냐? 라고 하면
멸망시키겠다는 것을 듣고 믿는 것은 쉬운데
현실이 어떠냐?는 거예요. 현실. 현실.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그럼 이 말씀은 ‘너희들은 믿지 않을 거고 결국은 너희들은, 남유다 너희들도 멸망당할 것이다.’
이런 쪽으로 지금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이겁니다. 조금만 더 할게요. 피곤하시겠지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가, 이들의 도모가 섭니까, 못 섭니까?
그들이 연합군을 결성해서 남유다를 칩니까, 못 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오묘하냐? 라고 하면
이 말씀은 말씀대로 이루어져요.
그 방식은 이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을 이용해서 그들을 쳐부수는 겁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면서 여호와는 철저하게 어떻게 돼요?
우습게 여겨지게 돼요.

‘스알야숩을 데리고 갔다’라는 것은 아하스 왕은 듣지 않는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듣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안 들어야만
스알야숩의 의미가, 그 취지가 살아나게 되는 겁니다.
말씀은 우리를 위함이 아니에요. 이스라엘을 위함이 아니에요.

결국 스알야숩, 예수님이 남은 자로 이 땅에 오셨잖아요.
그분을 위한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말씀에 순종하면 안 됩니다.
그 대표 주자들이 이스라엘이어야 하고요 남은 자들이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 자체가 이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분의 주되심을 위한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분을 위한다면 이 말씀대로 지금도 똑같이 이루어져 가야 돼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라는 그 말씀이 계속해서 현재화되려면
우리는 어떤 자로 드러나야 되느냐? 라고 하면
진짜 기쁜 소식이 이 아하스 왕 같은 자가 되어야 돼요.

아마 제가 이렇게 설교를 하면 목사들이나 뭐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성도들이나
저한테 다 이렇게 막 공격을 하겠죠.
‘그러면 공격하는 당신이 지금 뭘 기도합니까?’ 물어봅시다.
‘뭘 기도해요?’ 뭘 기도하는지 얘기해 보라고요.
분명히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는 이방인들이 구하잖아요. 지옥 갈 자들이 구하잖아요.
그러면 그들에게 이게 복음이 되어야 되잖아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이미 성령을 주신 이후에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을 쏟아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나는 아니오’를 계속해서 쏟아져나오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만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아가게 함을
감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