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2-18 23:13
20240218 이사야 강해 33강 사 9:13-21 거짓 선지자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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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2-1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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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8 이사야 강해 33강 사 9:13-21 거짓 선지자

하나님 말씀, 이사야 9장 13절에서 21절까지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사9:13~21)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대저 악행은 불 태우는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서 그들을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나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게 지난주 말씀이죠.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면 돌아와야 되는데 안 돌아와요.
애들 같은 경우에는 때리면 돌아올 것 같은데, 때려서 돌아올 것 같으면 다 때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때리면 때릴수록 더 여호와를 버린다라는 거예요.
왜 그러냐? 라고 하면 그들을 인도하는 장로들과 선지자들 때문에 그래요.

이 흥미로운 점이거든요.
장로의 위치, 귀족이다 칩시다. 아니면 선지자의 위치.
이들이 가난할까요? 잘 살까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 사는 사람은 잘 살아요. 그 지도급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께 어떤 한국의 어떤 조사가 나왔는데
상위 20%와 하위 20%, 월급 차이를 이렇게 표시를 했는데 20배인가 몇 배 나왔다 하죠.
하위는 연봉이 240만 원. 상상이 안 가죠. 2400이 아니라 연봉이 240인가?
노인층들 빈곤층들이 그만큼 많다라는 거예요.
나라에서 이렇게 주는 걸 얻어먹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고, 그게 틀릴 수도 있는데
2400 받으면 대구에 가면 작은 중소기업 연봉입니다. 상상이 안 가죠? 서울이랑.
3천만 원 정도 받으면 많이 받아요. 그렇게 세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든, 나라가 망한다. 그런 나라들이 지금 있잖아요.
‘가난하게 어렵다’ 할 때 윗대가리는 괜찮거든요.
어디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일본에 뭐 잡아먹히든 북한에 잡아먹히든 윗대가리는 잘 먹고 잘 살아요. 어디든지.

지금 여기에 왜 하나님이 치더라도 안 돌아오느냐? 하면
그 일종의 무게 중심을 잡은 자들, 장로와 이 선지자들, 이들은 뭐라고 가르치겠습니까?
장로들 같은 경우에는 선지자들에게 ‘제대로 된 예언을 하라’고 요청을 할 의무도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씀으로 이끌 그러한 의무들이 있는데
왜 말씀을 팽개치느냐? 이 얘기예요.

지금 상황이, 형국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렵거든요. 힘들잖아요.
힘들면 웬만하면 ‘우리가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가자’라고 외칠 만한데 안 외칩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의 자리 보존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야 되는 거예요.
돌아가버리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죠? 장로들 자리가 날아갈 것 아닙니까?
자기들이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못 지도했고
선지자들도 자기들이 거짓 선지자였음이 들통날 것 아닙니까?
끝까지 견제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말씀을 가르쳐야 되거든요.
생명을 가르쳐야 되고 율법을 가르치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해야 되는데,
지금 이들은 하나님께서 치심에도 불구하고 율법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기의 이권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그래요.

여기에 보면 머리, 꼬리, 종려나무, 갈대,
종려나무는 좀 귀한 것, 갈대는 흔한 것 이렇게 보시면 돼요. 그걸 통틀어서 이 장로와 선지자.
아무튼 이런 표현도 재밌습니다.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
왜 선지자를 꼬리라 합니까?
오늘날 목사들이라 생각하면 돼요. 쥐나 개나 다 목사잖아요.
목사들이 뭘 가르칩니까? ‘예수님을 잘 믿으면 복 받습니다. 제대로 믿어야 됩니다.’
그러한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 거죠.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위선을 떨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위에서 가르치는 자들이 엉터리로 가르치니까 밑에 있는 백성들도 엉터리를 좋아하죠.
우리 같으면 이 백성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거짓 선지자와 이 잘못된 장로들을 끌어내리면 되지 않느냐? 라고 말을 하지만

문제가 뭐냐? 하면요.
자기들도 그러한 것들을 탐한다라는 겁니다.
‘교육만 잘하면 안 그럴 거지?’ 그게 아니에요. 교육의 문제가 아니에요.
말씀을 제대로 안 가르치는 문제가 아니고 본성상 그걸 추구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치셔도 안 돌아와요.
결국은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이라 하셨는데
이 고아와 과부조차도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라는 거예요.
그 정도로 이 이스라엘 땅이 악하게 되었다라는 겁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땅의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복수하신다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위에서 가르치는 그 윗대가리들이 가르칠 때마다 이 고아와 과부들을 어떻게 가르친 겁니까?
그들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을 갖도록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니까 17절 끝에 보면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계속해서 심판을 내리는 겁니다”
이 심판의 끝자락이 종말이거든요.
희한하게 이 종말을 유대인들이 기다리는데, 남은 자 유대인들이 기다리는데
그 종말은 불타는 종말인데 그전에 이제 하시는 말씀이 18절에 보면

“대저 악행은 불 태우는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옛날에 우리 어릴 때 산불 난 걸 혹시 구경해 보셨나요?
요즘도또 산불 나는 걸 화면으로 보잖아요. 화면으로 보니까 현장과 달라요.
어마어마합니다. 그 불의 위세라는 게.

이 악이 그 정도로 불이 쫙~ 타고 올라가듯이
특히 겨울에 갈비 같은 종류, 갈비가 뭔지 알죠? 솔잎.
솔잎이 바싹 말한 것을 깔비라고 하는데 깔비가 사투리인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잘 타는지 몰라요.
이게 두께 쌓이면요. 이 불이 아래쪽이 시뻘겋게 이렇게 타 올라가는
그러한 어떤 형국의 악을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 정도로 이 악이라는 것이 이 불이 수풀을 살라서 연기를 뿜어내는 식으로
악이 순식간에 쫙 퍼지죠.
왜 그게 나를 위함이 되고 돈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 예수님을 살해할 때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삽시간에 합세하잖아요.
왜 합세합니까?
로마 제국이 와서 자기들을 쳐버리면 지금보다 더 악한 형국이 된다는 게
그 당시에 대중들, 민중들의 생각이죠.

윗대가리는 뭐예요? 자기들의 권력이 날아갈 수도 있고
자기의 현재 지금 갖고 있는 재산이나 그런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잖아요.
그게 두려운 거죠. 그러니 순식간에 이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됩니다.
본디오 빌라도도 마찬가지죠. 자기의 자리 보존을 해야 되잖아요.
‘아니 이성적으로 따지면 이거 사형이 아닌데...’
사람의 이성이 아무 노릇도 못합니다. 그 힘 앞에는.
상식 자체가 없다니까요. 권력 앞에는 모두가 다 굴복당하게 돼 있거든요.

자기의 권력, 자기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그 형벌을 내려야 되는 겁니다.
삽시간에 이렇게 퍼져가는 거예요. 순식간입니다.
스데반 집사님도 돌에 맞아 죽을 때 처음에는 그냥 논쟁 정도였어요.
논쟁 정도였는데 논쟁을 하는데 이기지를 못해요.
누가? 유대인들이. 논리가 딸리거든요.

논리가 딸리면 어떻게 합니까? ‘이 씨......’ 하죠.
이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게 논리가 딸리면 뭐가 나옵니까?
폭력이 나오죠. 폭력.

성경이 흥미로운 게 그런 거예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논리가 안 달려요.
논리로 이렇게 전하면 논리로 이겨버립니다. 당연히 이기죠.
왜? 저들은 한계성을 갖고, 자기들의 그 논리를 갖고 들어오기 때문에 복음을 어떻게 이깁니까?
복음은 그 모습을 다 바꿔버리는데...
모든 걸 죄라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이기겠어요?

그 정도로 악이 이 북이스라엘, 일차적으로는 북이스라엘이거든요. 2차적으로는 남유다.
3차적으로는 이 남은 자가 유대인이 되는데, 이제 거기까지 말씀이 진행이 됩니다.
진행이 되면 이제 악이 어떠한 모습인지 그 옷을 바꾸어 입어요.

지금 이 당시에는 우상을 숭배하고 율법 위반자로서 악을 행하면서 행세를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징조를 구하지도 않고 힘을 의지하지만,
예수님 당시로 오면, 예수님 때로 오면 이들은 ‘나 징조 믿어요.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고 믿어요.’
예수님 보고 ‘니가 하나님 아들 증거를 대라’ 하잖아요.

그걸 보여주면 믿겠다는 이야기가 우리는 누구가 아니다?
아하스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아하스가 아니라는 거예요. 보여주면 믿겠다라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무장이 돼 있는 거예요.

그런 모습이 이제 악에 사로잡힌, 악에 사로잡힌 그 최정점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죠.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위를 보면 흠이 없어요.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천국 갈 사람이에요.

꼭 기억하세요. 누가 봐도 천국 가는 사람은 반드시 지옥 가는 사람이다. 100%.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한쪽 편으로부터는 미움을 받게 돼 있고,
한쪽 편으로부터는 ‘아 저 사람이 정말 주님의 긍휼을 입었구나. 사랑을 입었구나.’
이것이 보이는 사람이거든요.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자’ 하는데,
빛이 되는 방식은 딱 하나예요. ‘너희들 다 마귀 새끼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게 빛이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되죠.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불같이 타오르니까 19절 하반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
백성들도 불심판 당한다는 거죠. 땅이 불에 타버리고.
‘불에 타는 섶나무’라는 것이 아까 갈비 이야기했는데 어릴 때 아궁이에 불을 때 본 사람들 알죠?
이 갈비만큼, 마른 솔잎(솔가리), 마르지 않는 것도 불이 붙으면 엄청 잘 타는데
불쏘시기로는 그게 이제 불이 붙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거고
이 솔갈비입니까? 솔가리라 해요? 솔잎 같은 건데.

아무튼 얼마나 잘 타는지 몰라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겠다라는 거예요. 불심판이죠.
“회개하라.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운다”라는
게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이런 구약의 바탕들이 깔려 있고요.

그런 상황에서 이제 19절 아까 죄악의 불꽃, 심판의 불꽃이 되고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이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 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 강하니까 열왕기하 6장에 나옵니다.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 의해 포위되었는데 기간이 오래되니까 먹을 게 없는 거예요.
먹을 게 없으니까 마지막에 누구를 잡아먹느냐? 하면 자식을 잡아먹자는 겁니다.

우리도 아마 여기에 갇혀서 두 달? 한 달만 되어도 누구 잡아먹습니다.
누구부터 잡아 먹을까요? 여기 우리 딸부터 잡아 먹겠죠.
끔찍하다가 아니고 그게 인간입니다.
예전에 1970몇 년도입니까? 영화에도 나왔죠.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비행기가 알프스산에 추락을 했는데
그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성적이에요. 이성적. ‘나 안 먹을래~’
짐승이 되는데요. 그 고기. 그 얼은 그 고기가 얼마나 맛있을까요?
이게 부조화죠. 부조화죠.  구역질은 나는데 맛은 있고... 배는 당기고...
그게, 그 현실이 그대로 하나님께서 진노로 내린 겁니다.

이것이 이제 신약으로 오면 어떻게 바뀌느냐? 하면
부모가 자식을 팔아먹고 자식이 부모를 팔아먹는, 복음 때문에
내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는 그 사태로 바뀌어져요. 하나님의 그 진노죠.

지금 여기에서는 이사야에서는 이들이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셔도 심판을 하셔도 돌아오지 않으니까
죄악이 불꽃같이 타오르니까
‘그래 너희들의 죄가 불꽃같이 타오르면 나의 심판도 너희의 그 불꽃에 응하여서 (시적이잖아요.)
똑같이 불꽃처럼 너희들을 살라버리겠다.’
그 살라버리는 현장이 불에 타 죽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자식 잡아먹는 겁니다.
이웃도 잡아먹고 나중에는 자식도 잡아먹고.

오죽하면 “오른팔 뜯어먹고 왼팔 뜯어먹고” 이거 번역을 그렇게 해놨는데
오른쪽에 있는 인육 왼쪽에 있는 인육.
왜냐하면 뒤에 보면 ‘므나셋은 에브라임을 먹을 것이고 에브라임은 므나셋을 먹을 것이라’는 내용이
지금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정도로 인간은요. 마귀한테 사로잡혀서 못 빠져나온다는 겁니다.
못 빠져나오는데 나중에 예수님이 등장을 하니까
이들은 이런 말씀에 대해서 완전히 마음의 태도를 바꾸어서 율법대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불심판을 없애려고 하는 겁니다.

누가 봐도 이들은 천국 백성이에요.
누가 봐도 메시야 왕국에서 일인자는 왕이니까
2인자 3인자를 차지할 그러한 어떤 모습을 이들이 보이는 겁니다.

그들 앞에 예수님이 등장을 하죠. 예수님이 어떻게 등장했습니까?
도끼 갖고 등장했잖아요. 근데 도끼의 모습이 너무 시시하다라는 게 문제예요. 도끼의 모습이.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영생이 없다”라는 게 도끼라는 겁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 말씀의 의미를 알고요.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구라치고 있다라고 보는 거예요.
복음이라는 것이 심판 속에서의 구원이거든요.
불심판 속에서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인데
사람들은 이 복음이 그렇게 들리지가 않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계속해서 복음은 전파되고 있습니다.
복음은 전파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들 마음속에 근본적으로 누구를 원하느냐? 하면요.
양의 탈을 쓴 이리를 원해요.

양의 탈을 쓴 이리의 대표자들이 누군가? 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심판주 되는 거거든요.
인간들이 왜 양의 탈을 쓴 자를 원하느냐? 하면 자기가 그 자리가 탐이 나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에 양의 탈을 쓴 자를 용납하는 목적이 뭐냐? 하면

피가 들어오면,
(피만 믿으면 안 됩니까? 지금 이 얘기가 아니라)
피가 들어온다는 것은 ‘너는 죽어 마땅하다’라는 거예요.
‘너는 이 세상에서 얻을 게 없다’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피를 이용하는 자들, 양의 탈을 쓴 자들이죠.
요즘 양의 탈은 어떻게 쓰느냐? 하면
십자가 피도 이야기하고 그 피를 바탕으로 하여서 누구의 사상을 거기에 접목시키느냐? 하면
유대교가 기다린 메시야 사상을 접목시키는 게 이 양의 탈을 쓴 사람들의 특징이에요.

광화문에 가면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이 찬송 얼마나 많이 부르는지 몰라요.
십자가의 피를 얼마나 자랑하는지 모른다고요.
근데 그렇게 해서 그들이 뭘 노리느냐? 라는 겁니다. 노리는 바가 뭐냐?
자기들의 영광이에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안개처럼 사라졌다라는 이 사실에 대해서
‘당신은 사라졌지만, 나는 안개처럼 사라지면 안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의 피를 이용하여서 자기의 영광을 받기를 원하는 거예요.

결국은 그 밑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그 위에 있는 자들은 무엇을 탐하느냐? 권력을 탐하는 겁니다.
이 거짓 선지자나 장로들처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복음을 아무리 전파하여도 듣지 않는 이유는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두 귀를 막고 나의 영광과 나의 왕 됨을 뽐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저희들을 불러서 십자가의 피로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긍휼과 사랑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삼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루하루를 죄악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곳에서
주님의 십자가만 끊임없이 자랑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