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2-25 15:58
20240225 이사야 강해 34강 사 10:1-4 고아와 과부와 심판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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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2-2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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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5 이사야 강해34강 사 10:1-4 고아와 과부와 소자

하나님 말씀, 이사야 10장 1절에서 4절까지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사10:1~4)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포로 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그 가장 윗자리에는 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그런데 율법을 바꿔버립니다.
여기에 보면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율법을 사람의 율법으로 다 바꿔버리는 거예요.
사람의 율법으로 바꾸게 된다면 결국은 이 법은 누구를 위한 법이 되느냐? 하면
가진 자를 위한 법이 돼요.

여기에 보면 이들이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한다.” 이렇게 나오거든요.
그 가련한 자가 누구냐? 하면 고아와 과부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하나님께서 왜 두시느냐? 이게 우리들이 궁금한데.
출애굽기 22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2장 21절부터 보면
21절에는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다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잊지 말라고 말씀하세요.

그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은
‘너희들이 어떻게 애굽에서 이 나그네로서 종으로서 구출을 받았고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그걸 기억하라는 거예요.

어려울 때를, 너희가 힘들 때를 기억하라. 뭐 그런 얘기를 우리들도 그렇게 하는데
지금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니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아, 말씀이 정말 묘하죠. 묘하다는 말씀을 알아들으셨죠. 무슨 말인지.
“고아와 과부를 해롭게 하지 말라”라고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여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죠.
인도하여 들어가셨을 때 고아와 과부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죠.
왜 있습니까? 광야에서 범죄한 자들이 있잖아요.
진멸당한 자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여호수아 전쟁을 통하여서 아간으로 인해서 죽임을 당한 자들도 있고.

중요한 것은 여기에 고아와 과부를 하나님께서 왜 만들었느냐? 라는 거예요.
어떻게 하여서 고아와 과부가 됩니까? 1번 재수가 없어서 2번 여호와께 범죄하여서.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에 고아와 과부가 된 거예요.

지금 이 당시에는 뒤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고아와 과부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겠다라는 거거든요.
이 고아와 과부의 부르짖음이라는 것은 그들이 가진 것조차 뺏깁니다.
이게 정말 희한해요. 이 세상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 같으면 많이 가진 사람 걸 많이 뺏는 게 좋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 정치라는 것은 많이 가진 사람 걸 많이 안 뺏는 구조예요.
물론 어느 유럽 쪽에 가면 세금을 수익의 한 40%를 이렇게 뺐는데
그들은 뺏어도 잘 먹고 잘 살아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뺏으면 난리 나잖아요.
지금 요즘 정책을 보면 있는 자에게는 안 뺐죠. 왜 안 뺐습니까?
안 뺏는 이유는 간단해요. 그들이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대체로 우리나라 언론이라든가 이런 그 언론사들이 건축과 관련된 업체를 갖고 있고
돈 많이 가진 자들이 후원을 할 거고
땅 많이 가진 사람들이 특히, 내 집 안에 양평에 땅이 있다면 특히 그 뭡니까?
녹지 보호 뭐라고 하죠? 그걸 그린벨트. 그런 걸 갖고 있다면 확 풀어버리겠어요.

근데 이런 것과 고아와 과부가 관련이 있을까요?
제가 지금 빗대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가난한 자들의 것을 뺏는 것은, 그 월급쟁이들을 뺏는 것에 대해서는 월급쟁이들은 말을 안 해요.
원천징수하면. 그냥 개인적으로 불만을 토하고 말죠. 그들이 돕는 것도 아니고

고아와 과부의 것을 뺏어도 어느 누구도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똑같아요.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나.
고아가 왜 되었는가?
고아를 보면, 과부를 보면 꼭 기억해야 되는 것이 자기들도 똑같이 어떤 자들이어야 해요.
고아와 과부여야 하거든요.

광야 40년 길을 지나와서 약속의 땅에 들어올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고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자기 자신들을 보게 되면 다 고아와 과부여야 돼요.
아니 고아와 과부 정도가 아니고 진멸당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들을 돌아보지 않아요? 왜 돌아보지 않느냐?

여기 오늘 이사야 10장에도 나오지만
“이 가련한 자의 권리를...”
가련한 자의 권리가 뭐냐? 하면 성경에서 이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십일조 같은 경우에 이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돌아보라고 율법에서 명령하고 있어요.

그런데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게 돈이 돼요? 안 돼요? 돈이 안 되죠. 돈을 잃는 거거든요.
레위지파에게 왜 십일조를 안 합니까?
우리 같으면 십일조 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데 왜 안 할까요?
그것보다 돈 잘 버는 법을 보았고요.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쫓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아니 하나님을 믿으면 제대로 믿으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데 왜 우상을 섬기지?
가나안 땅에 한번 들어가 보세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면 여호와를 섬겨서 복을 받는 것보다
우상을 섬겨서 복 받는 게 훨씬 큰 부자가 되는 거예요.

사사기 17장에 나오는 그 미가 집안도 마찬가지죠.
약속의 땅에 들어갔는데 왜 여호와라는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마음대로 섬기고
그런 식으로 우상을 섬기느냐?
그 이유는 그 세계에 들어가 보니까 그게 훨씬 더 부자 되는 빠른 길입니다.

그러니 과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은 이 두 가지 시선이 있거든요.
너 고아와 과부 된 걸 보니까
지금 이게 이사야 10장 정도 오면 이미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한참 지났잖아요.
왜 과부가 됐습니까?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에.
범죄한 자가 고아와 과부가 됐거든요.

그러면 그런 자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죠.
하나님께서 인간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들의 것을 권리를 뺏어도 어느 누구도 도와줄 자가 없어요.

분명히 여호와께서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로서 그들에 대한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해서 응답을 하셔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복하신다라고 말씀을 하셔도 누가 겁을 냅니까? 누가.
누가 겁이 나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예수님이 겁납니까?
본디오 빌라도가 겁납니까?
간단하잖아요. 비유를 보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데 뭐가 겁이 나요?
본디오 빌라도는 살아있는 권력이잖아요. 그죠?
말 잘못하면 입을 막아버리고, 그날이 멀지 않았어요.
이번에 총선 때 꼭 국민의 힘이 한 200석 얻어가지고...
김정은보다 더 할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아니 아니 이 국민의힘이 되면 안 돼요.
자유통일당 자유통일당이 돼야 되지 그 사람들은 적개심을 갖고 있으니까 다 죽여야 돼요.
아마 저것도 죽임을 당할 겁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힘을 갈구하느냐? 할 때는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아무 힘없이 제거당하는 그러한 분에 대해서 원치 않아요. 그러한 분을.
힘을 원하죠.

이들도 고아와 과부에 대해서 이렇게 더 뺏습니다.
원래 그 힘없는 자 뺏는 게 기분 좋은 거거든요.
힘 있는 자 걸 뺏으려 해보세요.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맞죠?
대기업 돈 뺏기는 힘들어요. 주식해서. 개인들 돈 뺏는 게 제일 쉬워요. 공매도해서.
해본 사람 같은데 저는 그걸 몰라가지고...
대기업들은 웬만해서 안 뺏기거든요. 주식 같은 경우에

“고아의 것을 약탈한다”
힘에 미친 겁니다. 약속의 땅이라는 곳이 들어가 보니까 힘보다 중요한 게 없어요.
말씀은 말씀 자체는 오히려 나의 힘을 뺏는 겁니다. 잃어버리는 거예요.
뼈 빠지게 돈을 벌어서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를 돌아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오늘날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그런 부분은.
어제도 텔레비 보니까 봉사자들이 가득 나와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집에 청소를 해주고 봉사해주고
화장실 고쳐주고 벽지 발라주고 그렇게 하는 그것도 힘이 되기 때문이에요.
힘이 안 되면 그런 짓 안 합니다.
그렇게 딱 하면서 자기도 그 사람보다 더 가난하게 산다면 그 일을 안 해요.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겠다는 겁니다. (사10:3)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보통 이제 이게 북이스라엘이라면 앗수르 제국이죠. 남유다도 마찬가지고.

일차적으로는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고
그리고 나중에는 이제 남유다 같은 경우에는 북이스라엘을 통해서 심판을 하시는데
“그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이들이 누구를, 무엇을 의지하느냐? 할 때는 아하스 왕이 나왔잖아요.
뭘 의지합니까? 힘을 의지하거든요.

힘을 의지하는 자에게 더 강력한 힘으로 그들을 쳐버리면
그들은 도대체 누구를 붙들겠느냐? 이 얘기예요.
이 흥미로운 것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는데
그들은 그 강한 힘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굴복을 하라고 하니까 그들이 또 이 저울을 갖고 재거든요.
‘애굽이 더 강할 것이다.’ 그 애굽을 또 의지하고서 도망을 가거든요.

근데 하나님께서는 그 피할 길을 안 줍니다. 애굽도 박살 내버리죠.
“너희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돈을 갖고 권력을 갖고 영광을 차지하는 것을 어느 곳에 두려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면서.

“포로 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포로들이 잡혀가잖아요.
포로들이 잡혀가면 층층이 쌓여서 가고 죽은 자 밑에 죽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더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이건 확정적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주시니까 그 율법에 대한 해석으로 그들은 자기 중심으로 해석을 하게 되고
자기 중심으로 해석을 하게 되니까 고아와 과부를 돌아볼 리가 없고
그들의 것을 약탈하는 자로 등장을 해요.

마태복음 10장 42절을 보겠습니다.
지금 제가 설교가 이렇게 끝나버리면 이 유대교가 되고요.
이건 뭐 ‘훌륭한 사람이다’ 이렇게 나오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자신의 피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만든 그 피조물, 새 피조물들은 이 땅에서 어떤 자로 사라지는가?
이 땅의 사람들 앞에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가? 10장 42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제자의 이름으로 그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거 아니에요.
복음을 전하는데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다.
별로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에서 소자라고 하잖아요. 소자.
소자는 예수님을 믿는 소자고요. 이 소자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할 때
어느 누구도 그분을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저주받는 것이고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는 가장 악한 죄인이 처형당하는 곳이잖아요.

그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 십자가 복음을 성령을 받은 자들이 전하는 거예요.
성령을 받은 자들이 전하니까 사람들이 뭔가 그럴 듯한 것 같잖아요.
그럴 듯 안 해요. 설교 이렇게 하니까 그럴 듯하지.

저 같은 사람이 우리 대학원 동기들 모임에 가보세요.
뭐 복음 관심 없어요. 목사들은. 목사들의 관심은 복음에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도 똑같잖아요. 여러분 모임에 가는지 모르지만.
친구들 모임이나 동창 모임이나 어떤 사람들 모임 가면
복음이라는 것이 여러분한테 뭐 뭔가 그럴듯하게 보입니까?
오히려 멸시당하고 무시당하잖아요.

누가 이렇게 고개를 빳빳이 세웁니까? 목사들 세계에는 큰 교회, 교인 수 많은 교회.
모였을 때 차가 무슨 차냐? 이 그걸로 압도하거든요.
무슨 차냐? 몇 평에 사느냐? 어느 동네에 사느냐? 뭐 이런 것들로...

그건 목사만 그래요. 여러분들도 안 그래요.
명절이 되면 이렇게 친척들 모였을 때 누가 압도합니까? 그 동네에. 여러분 집안에.
‘복음 이야기는 제발 하지 마라.’
이 가정을 깨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거예요.

소자이기 때문에 그래요.
소자에게 사람들이 냉수 한 그릇 대접 안 합니다.
한 그릇 대접하긴 하죠. 퍼부어 버립니다.
‘복음 이야기하지 말라.’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게 될 때 그러한 일을 실제로 당하거든요.
그러면 누가 이 소자를 영접하느냐? 라고 하면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만이 이들을 영접하게 돼 있어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물질적 힘의 세계 갇혀 있는 인간들이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을 조롱하고 제거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저희들이 받았기에 이 땅에서 똑같이 고아처럼 과부처럼 당할 수밖에 없는
이 세계 속에서 오히려 이런 자들만이 진정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받은 자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