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2-05 10:47
20231204 신명기 강해 8강 신 1:40-46 방자한 순종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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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3-12-0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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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4 신명기 강해 8강 신 1:40-46 방자한 순종

하나님 말씀, 신명기 1장 40절에서 46절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1:40~46)
“너희는 회정하여 홍해 길로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 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병기를 띠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내가 너희에게 고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고 천자히 산지로 올라가매 그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를 마주 나와서 벌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미친지라 너희가 돌아와서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 너희가 가데스에 여러날 동안 거하였었나니 곧 너희가 그곳에 거하던 날 수대로니라”

정탐꾼들의 불순종으로 인하여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모세의 종자 여호수아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고,
그리고 너희들이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자녀들, 그들이 그리로 들어갈 것이다.
선악을 분변치 못한 너희 자녀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이후에

오늘 본문에서
“너희는 회정하여 (방향을 돌려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이렇게 명하십니다.
우리 성경에는 ‘홍해 길’ 이렇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갈대 바다’죠.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어느 누가 이 말씀에 순종하고 싶겠습니까?
이미 정탐꾼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고 왔고 그러한 보고를 받았잖아요.
그리고 거의 13달 정도 광야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하기에 ‘다시 광야 길로 들어가라’는 이 명령은 듣기 싫은 거죠.
어느 누가 광야 길로 들어가고 싶겠습니까?

그러자 이들이 회개합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싸우라고 명하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전쟁에 나서겠다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각각 병기를 띠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러한 이들을 향해서
“올라가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올라가지도 말고 싸우지도 말라” 이렇게 명하시고
“내가 너희와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패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이들이 듣지 않습니다.

듣지 않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광야 길은 죽어도 가기 싫은 거예요.
“방향을 틀어서 광야 길로 들어가라.” 이 말씀에 순종하기 싫은 겁니다.
지금까지도 순종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보면 43절 하반절에 보면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고 천자히 산지로 올라가매”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고 천자히 산으로 올라갔다.
오만방자하게, 교만한 마음으로 듣지도 않고 산으로 올라가서 전쟁을 시작을 했는데,

“아모리 족속이 마주 나와서 벌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미친지라”
이 ‘치다’라는 것은 ‘박살 냈다’라는 거예요.
‘벌떼같이’ 그런 표현을 많이 하죠. 제가 어릴 때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인가 벌떼에 쏘여 봤거든요.
온 머리가 다 이렇게 쏘여봤는데
그 벌떼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스라엘 자손들을 쳐서 그들을 물리쳤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45절에
“너희가 돌아와서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
통곡합니다. 통곡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셨거든요.
파블로프의 개 같아요. 거꾸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거죠.

여기에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 이겁니다.
약속의 땅에는 누가 들어가느냐?
‘사로잡히리라’고 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녀들이에요.
이게 핵심입니다.

여분네의 아들의 순종, 여호와께 순종한 그 순종을 이들은 오해하고 있어요.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가? 하면
‘순종을 하면 약속을 땅을 얻을 것이라’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이 약속의 땅은 순종이라는 그 속에 포함이 되어 있는데
이들은 여분네의 아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이제서야 광야 길로 들어가기 싫으니까 순종을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넣어주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여분네의 아들의 순종을 선택으로 보는 거예요.
‘순종할지 말지를 내가 선택했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여분네의 아들이. 갈렙이.
이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니 광야 길로 돌아서 가라고 할 때 그들은 생각을 하는 거예요.
무엇이 선이냐? 무엇이 악이냐? 당연히 광야 길로 가는 것은 악이고요.
자기들이 보기에 안 좋은 길이잖아요.

약속의 땅이 지금 눈앞에 있는데 곧장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선이잖아요.
이 와중에서 그들은 선을 택하겠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회개하는 거예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할 때
“너희들이 예수 믿지 아니하면 지옥 간다”라고 할 때
사람들이 지옥 가기 싫어서, 천국 가고 싶어서 예수 믿는 것은 이들과 똑같은 거예요.

이들이 어떤 짓을 했느냐? 그 내용을 보면 선악을 분별한 겁니다.
약속의 땅은 선악을 분별하는 자는 못 들어가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와께 순종한 것은 선악을 분별한 게 아니에요.

노림수가 있기 때문에 범죄하였다라고 하면서
이제서야 우리가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올라가서 싸우겠다라고 하는 겁니다.
싸우라고 한 적도 없거든요.
자기들이 막 조장을 하는 겁니다.
‘땅을 줄 것이다’ 하니까 ‘싸워서 이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들의 죄악이 관영해서, 그들을 심판해서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다 경솔하다’
이 표현이 두 가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여지겠지만
악평을 들었을 때는 원망하면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여기에서 저들의 손에 죽이려고 인도하였다”
이렇게 하다가, 이제는 마음을 다잡은 겁니다.

회개하고 무기를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가려 할 때 여호와께서 가지 말라고 합니다.
가지 말라고 할 때 안 들어요.
이들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순종을 지금 몰라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순종은 이것이 좋기 때문에 행한 순종이 아니에요.
이들은 노림수가 있는 겁니다.
이들은 어른이죠. 선악을 분별합니다.

왜 말씀을 듣지 않는가? 하면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자기들은 광야 길로 가야 되잖아요.
광야 길로 갈 바에는, 거기서 죽을 바에는 여기서 싸워서 죽자라는 거죠.
오늘날 교인들의 신앙이 이런 거예요.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하니까 예수님을 믿고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하니까 회개하고, 회개만 합니까? 순종까지 하거든요.
목사들이 이러한 악마적인,
악마적인 회개와 악마적인 순종을 교인들에게 교회에 오는 사람들에게 가르치죠.
그래서 그들을 성도라고 하지 않고 교인이라 할 수 있는 겁니다.
내가 판단을 하는 거예요.
‘너희들이 생각해 보고 판단해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들은 어른이잖아요.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못 들어가거든요.
선악을 내가 판단해서
‘천국 이게 좋겠다. 예수님 믿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회개하겠다. 내 과거의 삶을 다 돌이키겠다.’
그렇게 해서 천국 간다는 거는 그건 절간이잖아요. 연옥이잖아요.
교회가 모두 이러한 신앙을 가르치는 겁니다.

지금 이들의 어떤 과거, 40년 전의 행적을 이렇게 보여주시는 이유가 뭐냐? 라고 하면
이들은 이렇게 말씀을 해도 못 알아들어요.
자신들이 뭔가 선악을 분별해야 된다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다음 뭘 생각하겠어요? 40년 광야 생활을 지나면?
그다음에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 이들이 불순종하겠어요? 순종하겠어요?
당연히 순종하죠.
그러한 순종을 원치 않는 겁니다.

그래서 이 약속의 땅을 들어갈 때 언약궤를 앞장세워 버리는 겁니다.
그들의 힘과 능력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일곱째 날은 일곱 바퀴 돌면서 그 성을 무너뜨리는 거예요.
그들의 어떠한 행위가 개입되지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세리와 창기,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말씀하실 때
가장 분노를 내고 화가 나는 자들이 누구냐? 하면
말씀대로 살아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에요.
또한 성전에서 열심히 제사를 드리는 그 사두개인들, 제사장들 그들이 가장 화가 나는 거예요.

아는 게 그것밖에 없거든요.
말씀을 하셨으면 지켜야 되고 예수 믿으라고 했으면 믿으면 되는 거지,
순종하라고 했으면 순종하면 되는 거지 그러면 천국 갈 수 있지 않느냐?
그러한 논리를 갖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오늘날 교인들은 이런 설교를 듣기를 원치 않아요.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어엿한, 배울 만큼 배운, 선악을 분별할 어른이라는 거예요.
그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해요.
그래서 40절에 ‘너희는 방향을 돌이켜 갈대 바닷길로, 광야 길로 들어가라’라는 이 말씀은
그들이 ‘예 알겠습니다.’ 해서 지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불순종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박살 나게 만들어서
그곳에 머무르게 하시면서 방법이 없기에 방향을 돌이키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돌려서 광야 길로 몰아넣는 거예요.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또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방향을 돌려서 광야 길로 들어가라 하면 순종해야 된다’고 또 가르치는 거예요. 설교를 할 때.
소경이니까 도무지 깨닫지를 못해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라고 하면 감사함으로 받으면 되는데 그걸 못 받아요.
왜 못 받느냐? 하면
‘내가 선악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내 쪽에서 제시해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방법이 뭔가? 하면
회개해야 되고, 믿어야 되고, 순종해야 되고, 말씀대로 살아야 되고...
이런 논리들을 가득 채운 거예요.
선악과를 먹은 인간들은 자기 행위가 가미되지 아니하면 구원을 없다라고 생각하고
또 그러한 구원 외에는 아는 것이 없어요. 성령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지금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다면
모든 말씀들이 십자가 피를 증거하는 말씀인데
그렇게 안 보이는 거고, 무엇으로 보입니까? 행위로 보이는 거예요.
나의 열심과 나의 순종과 나의 애씀과...
그래서 이런 말씀들을 다 교훈으로 받는 겁니다.

우리 어릴 때 뭐 여름 성경학교나 이렇게 유년주일학교 공과 공부를 배울 때 다 교훈이잖아요.
교훈 아니면 다 행위예요.
믿어야 되고 순종해야 되고 어떻게 해야 되고...
그러면 ‘그거 말고 뭐가 있느냐?’라고 화를 내거든요.

지금 ‘그거 말고’를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그것밖에 못해요.
그러면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를 덮쳤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용서함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아들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그 피를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한 거예요.

우리가 볼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한 것 같죠.
관심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기 때문에 그래요.
언약의 땅은, 언약은 실패하지 않았잖아요.
그럼 언약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선악을 분별하는 그 분별력으로
그들의 회개와 그들의 순종과 그들의 열심을 다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올라가서 철저하게 박살 나면서 깨어지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되어지는 현장으로 인도함을 받는 겁니다.

성도의 삶이 이러한 거예요.
나를 중심에 놓고 성경을 보고
나를 중심에 놓고 십자가를 생각한다면 그런 자는 성도가 아니에요.

날마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십자가에 의해서 전복당하는 인생,
그 피를 증거하기 위한 죄인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이 바로 주께서 자기 피로 사신 성도들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언약대로 이루시기 위해서 인간의 악마성을 끝까지 들추어 내시면서
주님의 언약대로 이루심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이스라엘을 다루심을
저희들로 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다 이루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들을 말씀 속으로 날마다 이끌어 주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