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2-27 13:57
20240226 신명기 강해 43강 신 6:16-19 맛사에서와 같이 시험하지 말라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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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2-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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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6 신명기 강해 43강 신 6_16-19 맛사에서와 같이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 말씀, 신명기 6장 16절에서 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신6:16~19)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하신 것과 규례를 삼가 지키며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수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신 아름다운 땅을 들어가서 얻으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18절에 포함되어 있음)”아멘.

약속의 땅으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 이렇게 명하십니다.
명령과 증언과 규례를 지키라고 말씀을 하시죠.

맛사 사건은 출애굽기 17장에 나옵니다.
우리는 간단하게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이들에게
“맛사 때와 같이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고 하시니까
‘여호와를 시험치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죠.

그런데 맛사 사건을 보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을 수 있느냐? 라는 겁니다.
17장 1절에서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의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겠나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지금 물이 없습니다. 물이 없으면 어떡하겠어요?
목말라 죽겠는데 우리는 믿음이 좋아서 ‘그래. 죽으면 죽으리라’
말씀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겁니다.

이 르비딤 사건, 여호와를 시험한, 모세와 다투고 이렇게 한 이 사건. 이 맛사와 같은
7절에 나오거든요.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면 물 있는 곳으로 인도하셔야 되잖아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는데, 이 맛사와 같은 시험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오늘 본문이 조금 어려운 문제가 뭐냐? 하면
신명기 5장부터 6장 여기까지 계속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행할 일을 말씀하시거든요.

그런데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의 성취거든요.
그러면 그곳의 땅을 완벽하게 정복을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죄악이 아직 관영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대만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이들이 들어갈 그 시점은 그들의 죄악이 관영한 시점이에요.
그러면 들어가서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는 그 심판이 다 이루어져야 된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애매한 말씀을 하시는데
그 내용이 뭐냐? 하면 18절 19절에 나오죠.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수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완전히 대적을 모두 쫓아낸다라는 거죠.
본래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이 가나안 땅에 있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거든요.
그들의 죄악이 이렇게 관영했고 심판받을 만한 그 지점에 도달한 거예요.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그렇다면 그들을 다 진멸을 하셔야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에 너희들이 들어갔을 경우에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것같이 시험을 한다면
너희들 대적을 모두 쫓아내지 않겠다라는 말씀이 여기에 깔려 있어요. 그게 다시 볼게요. 18절 19절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수히 (대적을 모두)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신 아름다운 땅을 들어가서 얻으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
우리는 ‘지금, 현재,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그 순종을 한다면 대적을 완전히 쫓아낼 것이다. 모든 대적을 쫓아낼 것이다.’ 이렇게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지금 이 본문의 위치가 그런 내용이 아니에요.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실제로 하나님께서 사사기 3장에 보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순종하지 않습니다. 맛사 때와 같이 시험을 해요.

왜 시험을 하느냐? 하면 방금 출애굽기 17장을 살펴봤잖아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면 물 없는 곳으로 인도하면 안 되잖아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상황 자체를 그렇게 몰아가는 거예요.
놀랍게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을 때 흥미로운 점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다 진멸하지 않아요.
진멸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진멸하지 않는 거고요.
또 하나는 이들이 맛사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듯이 시험했기 때문에 진멸하지 않는 겁니다.

여호수아 9장부터 보겠습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를 보고 올게요.
여호수아 9장을 보면 유명한 사건이 나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아이성도 무너진 그 상황에서 9장 3절이죠.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의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꾀를 내어 자신의 모양을 꾸미되 헤어진 전대와 헤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발에는 낡아 기운 신을 신고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고, 그들이 길갈 진으로 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이 본문 보면 선교사들 같아요.
엄청나게 잘 사는데 꼭 한국에 돌아올 때는 헤어진 옷을 입고 헤어진 신발을 신고...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 같아요. 그래야 속지요.

지금 이 기브온 사람들은 히위 족속이에요. 6절 보겠습니다.
“그들이 길갈 진으로 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원방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은 이 사람들이 히위 사람인지 몰라요. 나중에 안 거예요. 며칠이 지나서.

“너희가 우리 중에 거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약조할 수 있으랴”
못하는 겁니다. 왜?
이 땅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위한 땅이기 때문에 이곳의 거주민은 다 진멸하라 하셨거든요.
말은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묻되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뇨.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심히 먼 지방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명성과 그의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또 그가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장로들과 우리나라의 모든 거민이 우리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맞아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이니 청컨대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하라 하였나이다. 우리의 이 떡은”
그러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먼 길을 왔는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따뜻한 떡을 갖고 출발했는데 곰팡이 핀 거예요. 신발도 새 신발을 신고 왔는데 다 헤어진 거고
옷도 새 옷을 입고 왔는데 그 노정에 옷이 다 헤어졌다 그런 이야기를 하죠.
그게 13절 그렇게 나옵니다. 14절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선물을 갖고 온 겁니다. 여호와께 묻지 않습니다.
이 맛사에서 시험하는 것과 똑같은 거거든요.
속였잖아요. 그러면 속였기 때문에 속임을 당한 것이 잘못은 아니다라고 생각하잖아요.
나중에 기브온 족속은 살려줍니다. 여호와께 맹세했기 때문에.

문제는 뭐냐? 하면
이런 식인 거예요. 이런 식.
이익이 되기 때문에 이들을 살려주겠다라고 화친하면서 여호와께 맹세하는 겁니다.
이익이 안 되면 이렇게 하겠습니까?
이후의 전쟁도 마찬가지죠. 여호와 전쟁은 자신의 힘과 군사력으로 전쟁을 하는 게 아니었거든요.
근데 두려워서 진멸하지 않고 또는 이익이 되니까.

복음을 들으면 사람들이 돌아갈 이 다리를 다 불살라버려야 되는데
이익이 되는 것들을 계~속 남겨두죠.
‘언젠가는 돌아가고야 말 거야.’ 그런 식인 겁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맛사에서 시험한 것처럼 시험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환경 자체가 그런 겁니다.

그러면 중요한 게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이런 말씀을 대하면서 신명기 6장 16절~19절 말씀을 대하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되느냐? 하면 계속해서 제가 강조합니다마는
‘하나님의 맹세를 위한 이스라엘’
달리 말하면 그 맹세는 이 말씀을 통해서 드러나거든요.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말씀에 말씀을 위한 이스라엘이 되도록 조치하기 위해서 이 명령을 주신 거예요.

그러면 어떤 말씀이 남게 되느냐? 하면 다시 신명기 6장 16절부터 보면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 때 시험을 해요.
시험을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험한 것 같이 시험하지 말라”는 이 말씀은
계속해서 미루어집니다.
이 말씀의 성취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로 성취를 해요.

그 뒤에 보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하신 것과 규례를 삼가 지키며”
안 지켜요.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완전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신 아름다운 땅을 들어가서 얻으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
못 쫓아내요.
물론 나중에 다윗왕에 의해서 이제 이 정복 전쟁이,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이 끝이 나는데
그것도 잠시뿐입니다.
이 말씀을 위한 거예요.
말씀대로 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주신 거예요.

사사기 3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1절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두신 열국은 블레셋 다섯 방백과 가나안 모든 사람과 시돈 사람과 바알 헤르몬산에서부터~” 쭉 나오죠.
그 4절 끝에 보면
“그들의 열두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여호와의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 전쟁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열조, 모세를 통해서 명하신 그 말씀을
청종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완전히 진멸 전쟁을 하지 못하게 하신 거예요.

이런 말씀도 되게 어렵죠.
그들이 순종을 하지 않아서 진멸전쟁을 안 한 것도 있고요.
이렇게 안 한 것을 두고 여호와께서 여호와 전쟁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남겨두셨다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순종하는지 안 하는지.
그러니까 우리 쪽에서는 이 말씀을 골라 잡을 수 없습니다.

마치 사도행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대로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거든요.
그런데 인간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을 살해했거든요.
이 두 요소가 같이 공존하는 거예요. 인간은 이것을 못 잡습니다.
말씀을 위한 세상이지 인간의 구원을 위한 세상이 아니에요.

여기서도 마찬가지죠.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무엇이 계속해서 남겨지기를 원했냐? 하면
여호와의 전쟁이에요. 대적들을 다 제거하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대적의 끝자리는 누가 되느냐? 하면 남은 자 유대인이 돼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대적이거든요.
그들을 모두 진멸해버립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모두가 다 대적이 되고 모두 다 진멸당해야 돼요.
그 진멸 속에서 구원을 얻는 자들이 성도예요. 여기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인데요.
지금 전쟁이, 이 가나안 전쟁이 이미 승리의 전쟁으로 완료가 되잖아요.
완료가 되는데 왜 그 전쟁을 계속하는 전쟁으로 남겨두시느냐는 거예요.
이 그림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를 하셨잖아요. 그죠?
승리를 하셨다면 마귀가 더 이상 활동을 못해야 되는데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들어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아요.
그리고 성도는 피 흘리기까지 싸움을 하는 전쟁에 참여한 자가 됩니다.

아니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다 끝냈으면
왜 아직 이 전쟁이 미완료된 것처럼 우리에게 그 전쟁에 참여하게 하시는가?
사람들은 그게 궁금하잖아요. 왜 그게 궁금하냐? 라고 하면
사람들의 관심은 자기 구원에 있거든요.

주님이 십자가로 승리했으면 다 끝났으면 나 천국 갔어. 나 이제 복만 받으면 돼.
나는 이미 천국 백성으로서 무엇을 해도 지옥 가지 않아.
그런 해석을 하게 되는데 주님께서는요. 그런 해석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한 구원을 베풀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그 전쟁에 성도들이 참예케 되면
참예된 성도들은 미완료 전쟁을 하는 거예요.
이미 완료가 되었는데 완료되지 않는 전쟁 같은 전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으면
우리에게 평안과 제대로 된 이 땅에서의 안식을 주시고 행복을 가져다 주셔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들은 그러한 꿈을 꾸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심판주가 되신 그분이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성도는 이 땅에서 피 흘리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 싸움으로 내몰리는 거예요.
내몰려야만, 내몰려야만 십자가가 나오고요. 그 피만 자랑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 구원을 위한 십자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성령을 받게 되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잖아요.
나의 증인이 아닙니다.
피 흘리신 주님의 증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미 승리하신 그 전쟁에 참예한 자로서
피 흘리는 전쟁에 감사함으로 이렇게 참예하게 된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기에 저희들에게 승리한 그 전쟁에 참예케 하셔서
십자가 피만을 자랑할 수밖에 없는 현장으로 인도하심을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