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2-21 08:23
20240220 신명기 강해 41강 신 6:4-9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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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4-02-2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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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0 신명기 강해 41강 신 6:4-9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 말씀,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신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아멘.

엄청나게 유명한 말씀입니다.
오늘날 정통 이스라엘을 보면, 유대인들을 보면 여전히 그들의 팔에 이렇게 칭칭 감고 있죠.
그게 뭐냐 하면 이 말씀을 기록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라는 그러한 겁니다.
흔히 ‘테필린’이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과 함께 이마에 쪽두리 같은 걸, 네모난 상자를 차고 다니는 그러한 것을
유튜브를 통해서 다 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에 담은 성경 구절은 대체로 오늘 본문의 내용과
아니면 유월절 규례와 뭐 이런 것들을 기록해서 넣었는데요.

여기에서 보면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라는 말씀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시죠. 유일한 하나님.
신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어제 우리가 마태복음 15장 사건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하여서 지적을 하셨는데
‘하나님께 예물을 드림이 된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면제받을 것이다.’
그렇게 가르치는 부분에 대해서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폐한다라고 하셨잖아요.
그들도 율법사와 같아요.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까?” 그때 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그러자 이 율법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신명기 6장에 나오는 이 본문을 율법사가 알고 있고요.
그러나 여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율법사는, 율법사라고 하면요. 서기관입니다.
예수님의 책망을, 지적을 받은 그 서기관과 바리새인. 마찬가지죠.

이웃 사랑하라는 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에요.
레위기 19장에 나오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마태복음 15장에 나오는 그들, “예물이 하나님께 드림이 된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면제한다.”
표준 세번역이나 킹제임스 버전은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해놨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게 맞아요.

왜 그렇게 해석을 하느냐?
이웃 사랑을 배제하는 게 아닙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도 이웃 사랑을 하라고 알고 있어요.
부모 같은 경우에는 역시 이웃에 해당되죠.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당연히 사랑을 해야 된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 말씀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만 나와요.
‘하나님께서 이웃 사랑에 대한 것을 놓치셨느냐?’ 그거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안에 이웃 사랑이 들어있어요.

율법은 또 예언이 되잖아요. 육에 속한 사람들은 못 알아듣죠.
인간은요. 두 주인을 못 섬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어요.
율법의 의도가 그거예요.

그러니 나름대로 마태복음 15장에서 나오는 이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고심을 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물이 드림이 된다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얼마든지 면제받을 수 있다라는 거예요. 자신들도 아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계명’이라고 하죠.

왜 ‘사람의 계명’이 되느냐? 하면
율법 자체가 사람이 읽게 되면 다 사람의 계명으로 바뀌어져 버립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계명이 되려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받아야 돼요.
지금 그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지금 신명기 여기에서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렇게 명령을 아십니다.
이 누가복음 10장 27절을 보면 이 율법사의 대답을 보면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합니다.
율법사가 이렇게 말하죠.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목숨을 추가해요.
그 정도로 지금 예수님 당시에 남은 자 유대인들은 메시아 왕국에 대한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고 복을 주실 것이라는 이 약속에 대한 기대를
간절하게 하고 있다라는 장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습니다.
목숨을 추가했기 때문에 ‘너는 왜 율법대로 말하지 않느냐?’ 이렇게 말씀하지 않아요.
우리들은 ‘율법대로 해야 된다. 말씀대로 해야 된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 그 자체가 엉터리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여호와를 사랑하는 그 방식을 알려줍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려면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마음에 이 말씀을 새겨야 된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새긴다’라는 것은 예레미야 31장에 나오는 것과 다릅니다.
‘마음에 기억하라’는 거예요. 이 히브리어 단어는 그렇게 돼 있습니다.
‘외우라’는 거예요. 신천지가 하는 그 짓입니다.
그 짓을 유대인들이 다 했거든요. 외우는 겁니다.
오늘날 정통 유대인들도 이사야 같은 거 다 외워버리죠.
웬만한 중요한 것들은 다 외웁니다. 외우라는 거죠.

자, 마음에 새기고 그 외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된다는 거예요.
자녀라는 이 대상을 사용했지만 모든 사람입니다.
자녀를 특별히 언급하는 이유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이 자녀들이 태어날 건데
어릴 때부터 이 율법을 부지런히 가르치는 겁니다.

부지런히 가르치는데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면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그러니까 잠자기 전 그리고 잠에서 깬 후 앉아 있을 때든지 길 갈 때든지
시도때도 없이 가르치라는 거예요.
그렇게 할 때 마음에 기록할 수 있는 겁니다.
성경을 그렇게 안 보고는 어떻게 말씀의 내용을 이렇게 기억합니까?

지금도 유대인들이 그 교육이 그러하잖아요. 어릴 때부터 완전히 외우는 거예요.
중국 교육도 보면 달달달달 외우거든요. 모든 게 외우는 거예요. 한국도 마찬가지죠. 그 외우는 교육 안 좋다 해놓고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다 외웁니다.
외우는 걸로 끝나니까 문제죠. 사고를 못하니까.
이들은 외우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해요.
마음에 기록하는 걸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여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문제는 어떤 게 문제냐? 하면
‘아이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까 지키면 되지 않느냐?’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왜 그것도 이것도 못 지키느냐?’
돈 벌기 바쁜데 언제 성경을 가르칩니까?
애가 일어나기 전에 출근해야 되고 애가 돌아오면 이미 애가 자는데 언제 성경을 가르쳐요?
본인도 성경 읽을 시간이 없는데요.

말씀이라는 자체를 우리들은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겁니다.
이 말씀은 확정적이고 고정적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지켜야 돼요.
그런데 약속의 땅에 들어가 보니까 탐나는 것들이 한둘입니까?
오늘 어떤 뉴스를 보니까 ‘삶의 만족도는 이 돈 많은 것과 상관이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비교 대상을 토착민들이 있잖아요. 그들과 비교를 해놨어요.
비교를 하려면 그들과 비교를 하면 안 되죠.
그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경제적 부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시간이 될 때 이렇게 말씀대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지
먹고 사는 문제, 그 문제도 심각하게 다가온다면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자녀에게 가르칠 시간이 없고요.

또 하나는 남들이 수천억을 갖고 있고 강남에 100평이 넘는 그러한 집들을, 아파트를 갖고 있는
그런 것들과 비교하면서 살아갈 때 말씀에 관심을 둘 시간이 없어요. 그게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들어가 보니까 한가하게 말씀을 이렇게 가르치는 것은 돈이 안 돼요. 힘을 가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또 한 가지가 이런 겁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방식이
“이 손에 (손목이죠.) 팔에 기호를 삼으라”
띠에 하나님의 율법을,
어떤 내용을 기록하라는 내용은 없어요. 이후에 유대인들이 기록해서 여기에 붙이는데요.
이런 내용들을 붙이는 겁니다.
저라면 10계명을 이렇게 기록하겠어요.

그런데 이들은 ‘이 말씀을 우리가 말씀대로 지킵니다’ 라고 스스로
자랑하는 투로 이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 말씀을 여기에 기록해놓는 거예요.
이마에 상자를 만들어서 경문이라 하죠. 마태복음 23장에 나옵니다. 이 경문을 미간에 붙이라
손목에 이렇게 기호를 삼는다는 것은 항상 내가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죠. 하나님의 율법을.
미간은 자기가 못 봅니다. 본인이 못 보죠.
오늘날이야 뭐 거울이 있기 때문에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당시에도 거울을 봤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미간에 붙인다는 것은 내 눈에 안 들어옵니다. 누구 눈에 들어와요?
물론 뭐 이렇게 있으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항상 눈앞에 있을 수도 있고...

타인의 눈에 띈다라고 볼 수 있고
율법이 항상 내 눈앞에, 타인에게. 율법의 세계라는 거예요. 이스라엘 전체가.
그러한 명령을 여호와께서 내리는 겁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이러한 어떤 행위를 하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이제 누가복음 10장에서 어떤 율법사가 이 말씀대로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죠.
이 말씀의 목적이 영생을 얻는 비법이라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주신 목적이
이스라엘을 통하여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했잖아요.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라”
여호와를 증거하기 위한 율법이라는 거예요.
나를 위한 율법은 없고요. 이스라엘을 위한 여호와는 없어요.
여호와를 위한 이스라엘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을 보겠습니다.
여기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해서 외식한다고 하면서 화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23장 2절에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이야기를 해요.
진짜 어려운 말씀입니다.
말하는 바는 행하되 지키되 행위는 본받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 방금 신명기 6장에 보면 모든 것이 행위죠. 어떤 행위입니까?
자녀들을 집에 있을 때든지 길을 갈 때든지 자기 전이든지 아침에든지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거죠.
이거 다 행위거든요.
그리고 팔에 경문을 붙이는 것 이것도 다 행위예요. 말씀대로 한 겁니다.
이런 걸 하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23장 5절이죠.
“저희 모든 행위를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이렇게 나와요.
여기에 경문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지금 경문의 크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거든요.
여러분이라면 이 경문을 어느 정도 크기로 하겠어요? 조그맣게 하겠어요? 크게 하겠어요?

예수님 눈에는요. 어떻게 보더라도 큰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들은 그 아비가 마귀이기 때문에 이 신명기 말씀을
종말에 오게 되면 어떻게 적용하고 이 말씀에 대해서 순종을 하느냐? 라고 할 때는
그 목적이 있는 겁니다. 목적이.
앞서서는 영생의 목적이었죠. 그 영생이 목적이었는데
영생보다 더 우선시되는 게 또 있어요. 그게 바로 자랑이에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겁니다.
영광을 받고자 하는 겁니다. 그게 목적인 거예요.

지금 이들이 왜 이렇게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에 나오는 이 말씀대로 살아가느냐? 라고 하면
그렇게 살지 않아서 멸망을 당했고
지금 네 번째 짐승인 로마 제국 아래에 있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당연히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지금 경문을 크게 하여서 이렇게 표를 삼고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율법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에는 그것이 어떻게 보이느냐?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잖아요. 율법을 주신 분이잖아요.
율법을 주신 그분이 보기에 이 남은 자 유대인들이 하는 이 행위는,
율법대로 산다라고 하는 이 모든 행위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는 겁니다. 자기 영광을 받기 위해서.
로마서에 나오거든요.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 영광을 받기 위해서 이 말씀에 순종한다라는 겁니다.
이것이 율법의 취지예요.
죄 아래 가두게 하기 위함이에요.

오늘날도 어떤 사람들을 보면
테플린을 가르치면서 성경을 외워야 되고 말씀대로 살아야 되고... 이런 짓을 하고 있거든요.
그 짓을 지금 이들이 한 거예요.
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말씀대로 살아간, 율법의 의로서 흠이 없는 사울이 예수님을 핍박했잖아요.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 그럼 경문을 작게 하면 되겠네요?’ 기껏해야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작게 해도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겁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짓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거예요.
좀 더 노골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렇게 설교하는 것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거예요. 복음을 전하는 것도.
주님 앞에서는 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겁니다.

성령을 받지 못 않았으니까 죄를 몰라요. 십자가가 밝히 안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에 나오는 이 말씀에 사람들은 꽂혀가지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여호와를 사랑해야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말씀을 새겨야 됩니다’
그걸 그대로 예레미야 31장 31절에 나오는 새 언약으로 끌고 오잖아요.
14만 4천에 들어갔다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거예요. 자기가 영광받겠다는 겁니다.

그들만 그런 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 2천년 역사가 똑같아요.
유대교도 마찬가지였고요. 구약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
긍휼의 그릇으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이 십자가를 증거하는 자로 살려지는 거예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들어오지 않고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고 말씀을 믿고 붙들고
지키고자 하는 이러한 죄인을 불러서 십자가가 밝히 보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십자가로 율법을 완성하셨다라는 말씀 속으로 저희들을 합류시키셔서
모든 말씀 말씀 하나하나가 주님의 피 공로를 드러내는 말씀임을 알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마음껏 자랑하며 증거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