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5-13 22:30
레위기 48강 레 12:1-8 출산과 속죄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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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fuZcKkt5P8

관리자 22-05-1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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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48강 출산과 속죄

하나님 말씀, 레위기 12장 1절에서 8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레12:1~8)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3 제 팔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4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 삼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5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 륙일을 지나야 하리라
6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년 된 어린 양을 취하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하여 회막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7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자녀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8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11장은 정결한 것과 부정하는 것 음식과 관련된 말씀을 하셨고요.
12장은 이 여인이 아들을 낳는다든가 아니면 딸을 낳았을 때
그 형편이 어떠한가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별 말씀을 다 하신다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자녀 생산이라는 것은 창세기부터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 하나님의 축복은 ‘생육하고 번성하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땅에 충만하라’ 그 말씀대로 되어졌다면 하나님의 형상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되겠죠.
낳은 아들이나 딸들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사람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범죄한 이후에 태어나는 아들과 딸들은 그와 전혀 다른 모양을 띠게 됩니다.
‘정녕 죽으리라’는 그 죽음의 지배 속에 있는 인간의 형국이 어떠한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신다는 겁니다.

왜 사람이 죽느냐?
육체적 죽음만 죽음이 아니라
그 육체적 죽음을 통하여서 영원한 불심판, 그 죽음은 영원히 죽지 않는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십자가 지신 주님의 심판은 상당히 특이하죠.
‘정녕 죽으리라’ 했으면 죽이시면 되는데 문제는 어떤 인간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 죽지 않느냐? 그것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주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육신이 죽어도 그 주님이 다시 살려서 영원한 지옥불에 집어넣어서 영원히 살게 합니다.

인간들은 간이 배 밖에 나왔기 때문에 ‘지옥 가봤냐?’ 이야기죠.
‘천국 가봤느냐?’ 이렇게 얘기를 하죠.
갔다 오신 분이 말씀해도 안 듣잖아요.
천국에서 오신 분이 말씀해도 듣지 않잖아요.
인간이라는 자체가 소경이기 때문에
‘말씀을 전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말씀을 하신다 하더라도
들을 귀도 없고 볼 눈도 없다라는 겁니다.

오늘 레위기 12장을 통하여서
‘정녕 죽으리라’라는 그 의미가 어떠한가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인이 자녀를 낳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이 세상에서 자녀를 낳는 것은 저주입니까? 축복입니까?
물론 원치 않는 자녀를 낳았을 경우에는 저주라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축복으로 여기죠.

오늘 뉴스를 보니까 인도에서 어떤 부모가 자기 아들에게 소송을 이렇게 했는데
8억을 부모에게 갚으라고 소송을 냈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결혼을 했는데 손자를 낳아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자식 뒷바라지한 목적이 자신의 대를 이을 손자를 낳아주기를 소원하고
그렇게 엄청난 돈을 아들에게 투자를 했다는 겁니다.

그들이 그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자녀 낳는 것의 의미는
자기의 영원성, 자기의 불멸성 뭐 이렇게 볼 수 있죠.
그것이 인간들이 생각하는 자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깜짝 놀랄 만한 말씀이 나오죠
‘아들을 낳으면 여인은 칠일 동안 부정하고요 그리고 팔일째는 아들을 할례를 행하고
그리고 다시 삼십 삼일이 지나야 깨끗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 중에는 성물도 만지지 못하고 그리고 이 성소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은 곧 이 사십일 동안은 아들을 낳은 여인은 부정하다라는 거예요.

그다음 말씀은 딸을 낳았을 경우에는 옛날 성경은 ‘이 칠일’ 이렇게 돼 있는데
십사일간 부정하고요. 그리고 이 그 기간은 그 경도할 때와 같다.
보통 경도는 칠만 하잖아요. 근데 십사일을 이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부정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육십 육일을 지나야 깨끗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딸의 경우에는 팔십일, 아들의 경우에는 사십일 동안 부정하다라는 겁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의미냐? 뒤에 보면
아들을 낳든지 딸들을 낳든지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면,
아들의 경우에는 사십일이 차면 딸의 경우에는 팔십일이 차면 그게 부정한 기간이잖아요.
’그 기간이 차면 어린 양을 번제로, 번제물로 그리고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이 속죄 제물로 드려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을 통하여서
’아들을 낳는다, 딸을 낳는다 그리고 아들을 잉태한다, 자녀를 잉태한다‘라는
그러한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 이 말씀을 통하여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이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아들을 낳으면 사십일 동안 부정하고 성물을 만지지 말고 성소에 들어가지 말고
이후에 어린 양을 번제물로,
가난한 자들은 여기 집 비둘기 새끼 둘이나 아니면 산비둘기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물로 드리면 된다.
그러면 ’법을 지켰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런데 시편 51편을 보게 되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한 이후에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을 때 쓴 시가 나옵니다. 5절을 보면요.

(시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다윗이 무슨 짓을 했는가?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그 이전까지 10장까지는 다윗이 여호와의 대적과 싸우는 전쟁의 최전선에 서서 전쟁을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이제 모압과의 전쟁도 거의 마지막 막바지에 다달았고
물론 배반했고 다시 그런 과정인데요. 이 랍바성만 남았어요.

그래서 다윗 왕은 그 정도는 요압 장군이나 다른 자신의 신복들이 가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언약궤와 함께 전쟁에 투입시키고 자신은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우연히 목욕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었고 그 여인에 대한 욕망이 일어나
알아보니 그 여인은 전쟁 중에 있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왕의 자리에 있고요 욕망이 있으니까 이 욕망을 멈출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보면 ’그걸 멈춰야 된다 절제해야 된다‘ 이런 소리를 하는데
그건 지금 레위기 12장을 몰라서 그래요. 시편 51편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게 인간의 본 모습입니다.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가진 권력으로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거죠.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 밧세바가 잉태를 한 거예요.
이 간음한 것도 이 십계명을 범한 죄거든요.
그런데 이 간음한 죄를 뭐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자신과 부하만 아는 그런 어떤 관계인데
신하들만 아는 그런 상황인데 누구에게 지금 숨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숨길려고 그 우리아를 불러서 그 아내와 동참하게 하여서 완전 범죄를 꿈꾸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우리아가 헷사람이라는 것은 이 진멸당할 백성이거든요.
이 우리아가 여호와의 언약궤가 전쟁 중에 있기 때문에 자신은 비록 몸은 예루살렘에 있지만
여호와의 언약궤와 함께하고 있는 모습을 보임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계획이 실패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요압을 시켜 랍바성 전투 중 가장 치열한 곳에 우리아를 앞장세워서
그곳에는 그 암몬의 용사들이 즐비하고요.
그러면서 뒤쪽으로 물러나면서 우리아가 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합니다.
그것이 성공했을 때 이제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서
다윗의 죄를 지적할 때 나온 내용이 시편 51편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율법들이 나오죠.
레위기에 나오는 율법이나 아니면 출애굽기에 나오는 율법들이 나오는데
다윗의 죄가 무엇이냐?라고 이렇게 질문을 하면 간음을 한 죄가 있고 살인한 죄가 있죠.
그게 다윗이 지금까지 생각한 죄였습니다.

그러면 그 전에 여호와의 전쟁에 앞장선 것은 죄가 아니냐? 죄를 나눈 거예요.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어서 간음을 한 것은 죄가 되고 살인을 한 것은 죄가 되고
하나님의 일에 힘쓰는 것은 죄가 아니고 이렇게 나누었던 겁니다.

그런데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을 때 다윗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자신이 죄악 중에 출생하였고 그리고 모친이 죄중의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엄마 자체가 죄덩어리고 그 죄덩어리가 죄덩어리를 품었다가 죄덩어리를 밖으로 내어 놓는 겁니다.

지금 레위기 12장에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바로 이 내용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스라엘 너희들은 어떤 자들이냐?
자식을 낳고 자식을 낳고 계속해서 낳을 때 그들은 어떤 자들이냐? 죄 덩어리라는 겁니다.
죄를 짓고 안 짓고 이런 개념이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그게 다음에 살펴볼 문둥병자와 관련돼 있거든요.

그런데 인간들은요 자기가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선악을 나눕니다.
’죄를 지을 수 있다. 짓지 못한다‘ 이걸 나눌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이 말씀을 보면서
’무엇은 거룩하고 무엇은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 나누려고 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은 그걸 나눈 자체가 죄덩어리라는 겁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죄라는 이야기에요.
달리 말하면 이 성도가 살아가는 이 삶 자체가 무엇을 하든 어떠한 일을 하든
십자가의 피를 증거하기 위한 죄를 짓는 인생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요.
레위기 설교를 이 목사들이 하는 걸 들어보면요.
성화론을 대부분 주장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게 살아야 되는가?를 주장을 해요.
그들은 나름대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다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성령을 따라서 기도하고 성령을 따라서 헌금을 하고
성령을 따라서 전도를 하고 성령을 따라서 설교를 했다. 칩시다
이게 죄입니까? 죄가 아닙니까?
그들은 말하기를 이것은 성령의 일이기 때문에 죄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다윗의 사고방식, 나단 선지자가 찾아오기 전의 사고방식과 똑같은 겁니다.
그게 바로 바리새인들의 사고방식이에요.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한 몸입니다. 어떤 몸? 죄의 몸.
주님이 주시는 은사조차도 주님의 십자가의 피를 증거하기 위한 죄가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의 피를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의 몸을 다루시고요.
이 죄인을 갖고 십자가의 피를 자랑하고 증거하라고 하루하루를 살게 하시고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가장 은사를, 선물을 주신 겁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신이 되고 싶기에 주님이 주신 은사를 나의 소유로 받아서
나의 의로움을 돋보이고자 하는 그런 악마성을 저희들에게 알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십자가 안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 피를 자랑하고 증가하기 위한 죄인임을
날마다 저희들에게 깨우쳐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